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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갑은 어디쯤에서 사라졌을까

사라진 것들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는 역설

by 그냥 하윤 Mar 01. 2025

인적 드문 거리, 가로수 아래 덩그러니 놓인 장갑 한 짝을 본다. 누군가의 손을 보호하던 장갑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되어 있다. 쌍을 이루던 것들이 홀로 남겨졌을 때의 그 기묘함이란. 그 장갑의 주인은 언제쯤 그것이 사라진 걸 알았을까? 혹은, 아예 모른 채 지나쳐 버렸을까?


몇주 전, 나 역시 그런 상실의 당사자가 되었다. 강아지 산책 중에 날아든 스마트폰 메시지에 답하기 위해 오른손 장갑을 벗었다. 한 손으로 애써 단어들을 조합하는 동안 그 장갑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손이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야 그것이 나에게 없음을 깨달았고, 돌아가서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남은 한 짝의 장갑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 장갑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럼에도 쉽게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이.


장갑은 한 쌍일 때만 온전히 기능한다. 마치 오래 함께한 연인처럼 말이다. 한 짝을 잃어버리는 순간, 남은 장갑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라졌기에, 오히려 더욱 뚜렷이 남는 것들이 있다. 그 장갑에는 내가 그것을 선물 받았던 순간과, 겨울날 손에 끼고 거리를 걸으며 입김을 불었던 순간들이 남아 있다. 서랍을 열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그 한 짝의 장갑은 이제 손을 데우는 도구가 아닌, 기억을 재생하는 단서가 되었다. 마치 실용성은 죽고 상징성이 태어나는 것 같았다.




사물은 기억을 품는다. 우리는 어떤 물건을 보며 특정한 날의 감각을 떠올린다. 낡은 머그잔 하나에는 햇살이 깃들었던 어느 날의 아침이, 깃털처럼 가벼웠던 웃음소리가 담긴다. 마치 눈밭에 찍힌 발자국처럼, 사라진 것의 형상이 더 선명하게 각인되는 역설이다.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 떠난 후에 남겨진 흔적들은 오히려 그 부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관계가 단절된 후에 남은 흔적들—하나뿐인 사진, 목소리가 담긴 음성 메시지, 읽다 만 메시지—이 오히려 그 사람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상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상실을 통해 오히려 기억을 더욱 강하게 붙잡는다. 사진, 편지, 선물 같은 물건이 단순한 소유를 넘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한 조각이 되는 이유다. 그리고 때로는,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단순한 미련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을 간직하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때때로 잃어버린 것들을 통해서만 우리가 무엇을 가졌었는지 깨닫는다. 사라진 후에야, 그것이 얼마나 선명했는지를 알게 된다.




오늘 아침, 서랍을 정리하다 다시 그 한 짝 장갑을 발견했다. 손끝으로 천을 만지작거리다 멈춰 섰다.

내가 서랍 속에 보관하는 것은 사실 장갑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겨울날의 온기와 서두름, 발밑에서 느껴지던 눈의 촉감, 그리고 잠시 공존했던 온전함의 감각이다. 장갑을 버린다고 그 기억까지 증발하지는 않을 텐데, 그럼에도 그것이 사라지면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통해서만 우리가 무엇을 가졌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온전히 있었던 것들은 그렇게까지 선명하게 각인되지 않는다. 존재는 흐릿해지고, 부재는 선명해진다. 어쩌면 상실이란, 우리가 한때 무언가를 온전히 가졌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서랍을 닫으며 생각했다. 이 한 짝 장갑은 어쩌면 언젠가 버려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것은 더 이상 손을 감싸는 물건이 아니라, 내 기억을 감싸는 그릇이 되었으니까.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사라진 것들의 그림자는 우리 안에 남는다. 비록 남은 것은 한 짝뿐이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시간은 온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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