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서는 큰소리 나지 않는다.
같이 퇴직을 하고 시간을 보내니 우리 부부는 오랜 친구가 되었다. 표정만 봐도 무엇을 말하는지 보이고, 마음속 갈등조차 쉽게 읽힌다. 서로 간에 흐르던 전기는 끊어진 지 오래지만, '사랑'을 말할 때 곁에 있어 주는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대신할 때가 많다.
우리 부부에게 '사랑'은 그저, 헤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가정을 지켜온 책임 또는 의리 같은 거다. 뜨거웠던 그 마음은 순전히 호르몬 덕분이었을까? 완경을 지나면서 뜨거움이 편안함으로 숙성되는 것이 신기하다. 시간이 흐르면 더 편안하고 익숙해질 것이다. 부디 그렇게 되길 바란다.
5년을 넘게 연애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32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우리 부부는 많은 부분이 닮지 않았다. 닮지 않다 못해 퍼즐 같다. 한쪽이 튀어나오면 한쪽이 들어가서 모양을 맞추게 되는 퍼즐.
퇴직 후,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우리 부부는 편안하고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협상이 끝도 없다. 사사건건 대장간 소리가 난다. 튀어나온 퍼즐 깎는 소리, 들어간 퍼즐 다듬는 소리. 그 많은 다름을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퇴직을 맞이하다니! 사소한 일상에서 내가 알던 그가 맞나? 싶을 때가 많다. 퇴직하기 전의 평온함은 다 무엇이었을까?
내가 나중에 할 건데, 지금 해야 하는 그.
나는 물건을 보이도록 배치하는데, 나와 있는 것을 못 보고 수납공간에 넣어야 하는 그.
나는 편리성을 추구하는데, 모양새를 생각하는 그.
나는 영양을 따지는데, 맛을 따지는 그.
나는 감정적으로 접근하는데, 팩트로 이해하는 그.
나는 애벌빨래하고 분리해서 세탁기에 넣는데, 한꺼번에 몽땅 세탁기에 넣는 그.
사소하고 지루한 열거를 끝없이 할 수 있다.
나는 똥손이고, 그는 금손이니 할 수 없이 나는 빨래하는 사람, 그는 빨래 개는 사람으로 합의 본다. 설거지를 할 때 청소기를 밀고, 채소를 손질할 때 커피를 내린다. 적당한 선에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서로 다른 것은 존중하고,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게, 착, 착, 맞춰간다.
그러다가 또, 냉전이 일기도 한다.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원인은 생각지도 않은 다른 곳에서 발생, 예전 같으면 중심이 흔들릴만한 일이건만, 둘 사이에 조용한 기류만 오간다.
그럴 땐 혼자 동네 한 바퀴 돌다 온다. 흥분되던 상황으로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머릿속으로 입장정리를 한다. 이 나이에, 뭐 굳이, 퇴직까지 한 마당에.
퇴직은 때로 나를 강하게 만든다. 천천히 정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거다.
1막을 정리하고 2막을 준비하는 시점에, 뭣이 중한디!
신기하게도 걸으며 생각하니 중요도 서열이 생긴다. 내 삶의 우선순위가 보인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맘이 편안하니 잠도 잘 온다.
다음 날 말없이 일어나 둘이서 식사 준비하고, 마주 앉아 아침을 먹는다. 예전 같으면 식사 준비를 하지 않거나 따로 동선을 피하며 다녔을 텐데 이젠 굳이 그러지 않는다.
소리 없이 건조한 기류는 느껴져도 말없이 밥은 먹는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건 다 하는 냉전, 체할 거 같은 불편함도 없다. 다 먹고 난 뒤, 정리한 입장 표현을 하며 할 말은 한다. 때로 식탁은 편안한 협상 자리가 돼 주기도 한다.
전은 이렇고, 후는 이러하니, 나는 이렇게 하겠다.
낮은 목소리로 던진 입장에 상황 판단한 남편이 답을 내놓는다.
"그러면 됐지... 잠깐 바람 불었다 생각한다. 맑은 날, 흐린 날, 바람 부는 날 있듯이 잠깐 바람 불었던 날이라 생각해. 우리 일상은 변함없어. "
그의 목소리도 잔잔하다.
매일의 루틴대로 운동할 거 하고,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보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약간의 균열이 있었을 뿐, 세상은 그대로다. 이어져야 하는 건 일상이다. 그저 일상을 해 가는 것,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가는 것, 우리의 삶이다.
운동하며 적당히 쉬고,
삼시세끼 정성껏 해 먹고,
꿈이라 여겼던 미래를 지금 오늘 실현하며,
따로 또 같이 우리의 삶을 산다.
때로 퇴직은 남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용기와 힘을 주기도 한다. 사회 속 나를 내려놓고, 내게 집중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잡다했던 군더더기를 가지치기 좋은 시기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서열정리해도 되는 것. 퇴직 후의 시간은 던져진 삶이 아닌 선택해야 되는 삶인 것이다.
이제 웬만해서는 큰소리가 나거나 젊은 날처럼 동선을 피하는 부부싸움은 없다. 서로 공격하지도 않는다.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말, 자신의 방식대로 강요하는 말은 싸움을 부르는 말이란 걸 안다. 젊을 때의 기싸움, 지금은 안 될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퇴직부부에게 '사랑'은 이미 증명되었다. 헤어지지 않고 가정을 지켜온 책임으로 사랑을 다한 셈이다. 사랑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구나 하는 건 친정엄마의 삶에서 배웠다.
친정아버지는 엄마와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일찍 돌아가셨다. 혼자 두고 가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친정엄마는 도망가지 않고, 팔 남매를 다 키우고 결혼시키셨다. 그것만 봐도 안다.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팔 남매나 낳으셨고, 당신이 먼저 갔어도 끝까지 자식을 돌보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엄마 살아계실 때, '사랑'이라는 낯설고 쑥스러운 단어로 정면돌직구한 딸의 물음에 엄마는 엷은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다.
엄마 기준에 남사스러운 그 말을 어찌 적나라하게 말하겠는가.
나는 안다. 아버지를 사랑하셨으니
우리 곁에 남았지.
아버지를 사랑하셨으니
당신과 이룬 가정에 책임을 다하셨지.
엄마는 '사랑'이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 없지만, 나는 그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가 만든 가정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든든하게 품어줄 커다란 나무를 키우겠다.
* 대문사진출처 : 픽사베이
*본문사진: 연애시절 하나씩 나눠가졌던 퍼즐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