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부모 돌봄
홀로 사시는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우리 집에 모셔와 일주일 정도 지냈다. 우리 부부는 같이 며칠 지내면서 그동안 못다 한 효도를 했다.
'효도', 부모를 정성껏 섬기는 일 또는 도리(네이버 국어사전)라고 하는, 자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며칠 하고는 '갈등'을 느끼고 있다. 칡과 등나무가 얽힌 듯 정리가 되지 않고 마음이 복잡하다.
지금껏 내가 생각하는 효도는 부부싸움하지 않고 아이들 잘 키우며 용돈과 맛있는 것 사 들고 찾아뵈면 되는 줄 알았다. 자식이 애 먹이지 않고 자기 할 일 잘해주는 것만으로도 부모 입장에선 뿌듯함을 느낄 것이고, 그것으로 효도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지내 왔다. 그런데,
퇴직을 하고 나니 시어머니의 병원 순례는 우리 차지가 되었다. 다른 형제들은 생계를 위해 모두 일터에 있고, 우리가 어떤 일상을 보내는 지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퇴직하고 노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퇴직 1년 차에 닥치고 여행을 외치며 쉼을 누린 우리를 지켜보던 시댁가족들은 이제 그만 슬슬 연로하신 어머니 돌봄도 신경 써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평소에 귀가 잘 들리지 않던 어머니의 보청기 수리 및 구입, 팔순 넘은 어머니의 인지력이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염려되어 검사해 봐야 할 치매진단검사, 기운 없고 밥맛없는 원인을 찾는 각종 검사들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고 있다. 물론, 연락 담당은 혼자 지내시는 어머니의 안부를 매일 전화로 살피는 시누이다.
어머니의 병원 순례는 자연스럽게 단단했던 우리의 일상을 스톱시켰고, 우리는 7년 동안 재활로 인해 미뤄두었던 어머니를 다시 살폈다.
남편은 3남 1녀 중 장남인데, 사 남매 중에서 효자등수로 4등이다. 효도의 원탑은 당연히 누님이신 시누이고 2, 3등은 차례로 시동생들이다. 내 눈에는 남편도 찾아보기 힘든 효자이건만, 시댁에서 보이는 풍경으로는 4등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4등짜리 효자라도 울 엄니는 옛날 사람, 어머니 눈에는 장남이 최고다. 장남 옆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내게 각인시키셨다.
“아들 집이 내 집이지.”
당신의 미래가 불안할 때마다 언급하셨다.
“아들 있고, 며느리 있고, 내가 부러운 게 뭐가 있노?”
당신에게는 아들, 며느리, 자식이 전부임을 간접적으로 선언하셨다.
“든든한 큰며느리 있다 아이가!”
당신이 기대고 싶을 때 언제든지 언덕이 되어달라는 소리 있는 아우성이다.
나는 여러 면에서 어설프고 잘하는 것도 별로 없었지만, 묘하게 든든한 큰며느리가 되었고, 지금 생각해 보건대 그건 신혼 초부터 서서히 가스라이팅된 걸로 결론짓는 것이 맞겠다.
지난봄, 같은 동네에서 단짝처럼 의지하고 지내시던 시댁 큰어머니께서 구순 중반대의 연세로 별세하신 이후로, 팔십 대 초반까지 혼자 살기를 잘하시던 어머니께서 보기 드물게 말수가 줄고 기운이 없으셨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니 당연히 예상되는 바이기도 하다.
남편이 장남이었기에 어머니께서 연로하셔서 혼자 지내시기가 어려우면 언젠가는 함께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날이 가까워진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본인 재활하느라 7년 동안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한 효자 4등은 퇴직하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와의 시간에 좋은 추억도 남기고 후회 없이 효도할 계획을 맘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러려고 퇴직했지! 라면서.
4등 효자께서 규칙적으로 하던 본인 아침 운동을 멈추고, 어머니의 식사도 챙기고 식후 산책도 잊지 않고 같이 한다. 아들 손을 꼭 잡고 꽃이 핀 둑길을 걷는 어머니의 모습은 든든한 아빠 손을 잡고 걷는 애기 같다. 어떤 풍경보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도록 기운 없는 노년시절의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주지 않고 일찍 가신 친정 부모님을 떠올린다. 애기가 된 엄마 손을 내가 잡고 걷는다면 어떤 마음일까? 남편의 마음을 잠시 들여다본다. 부러움이 살짝 들어왔다가 이내 나간다. 누구나 당사자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이 사람 마음이니까. 어설프게 안다고 아는 척하지 말자. 내 마음도 남편의 마음도, 그냥 서로의 입장을 존중할 뿐이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효도를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하려는지 효자 4등은 어머니와의 추억 만들기 프로그램을 짜서 내게 공유한다. 추억 만들기라고 해 봐야 어머니를 모시고 드라이브하면서 좋은 풍경 보여드리고 밖에서 맛있는 음식 함께 먹는 정도다. 조금 더 수위 높은 프로그램은 한발 내 딛기 쉽지 않은 어머니의 체력에 무리가 된다.
이 순간을 남기고 싶어 나는 찍사를 하고, 남편은 애기가 된 어머니를 살핀다. 자식이었던 아들이 어머니의 아빠가 된 모습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난감하다.
아파트 현관문 여는 법을 몇 번을 가르쳐 드렸는데도 전자도어식이라 문 열기가 어려워 아파트 주변 산책도 못하시고, 함께 산책하러 나가면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신다.
내 손을 잡은 모습이나, 종종걸음으로 걷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의 돌봄은 퇴직한 우리 부부가 피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현실로 보인다.
하지만, 움직임의 속도와 생활의 온도가 다른 어머니와 우리 부부가 공존하는 것은 함께하고픈 우리 마음과 달리 쉽지만은 않은 일임을 체감한다.
어머니의 아침식사와 운동을 챙기려면 그동안 해 온 인라인 타기, 10km씩 트레킹 하는 우리의 아침운동은 접어야 한다.
산책을 할 때 속도가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에게 맞추어야 하니 어머니의 종종걸음에 나는 인내를 갖고 함께 걸어야 한다.
우리는 더운데 어머니는 춥다. 팔순이 되어보지 않은 나는 어머니의 컨디션을 낱낱이 알 수 없지만, 더운 날 내의를 입고 보일러를 켜고 주무시는 어머니의 온도를 맞춰드릴 수밖에 없다.
국 없이 간편하게 아침을 먹는 우리는 매끼마다 국을 끓이거나 데운다.
나들이하느라 같이 차를 타고 나섰다가 차량 에어컨을 켠 것으로 감기가 걸려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생각한 것보다 공존이 쉽지 않음을 알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내 마음속에는 칡과 등나무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이대로는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무리라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리며, 칡넝쿨은 등나무를 타고 더높이 오른다.
어머니의 일상 못지않게 우리의 일상도 지켜가는 것은 중요하다. 남편과 달리 '이러려고 퇴직했나?' 싶은 마음이 드는 나는 '이러려고 퇴직했지!'라는 만족감을 얻을 만한 일상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의 속도와 생활의 온도가 다른 어머니와 우리 부부는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부디 우리의 미래이기도 한 어머니의 모습을 지혜롭게 수용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