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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사십도 못 살 인생

불면의 밤, 줄어드는 시간 속에서

by 예몽

인간이 희로애락을 느끼며 건강하게 사는 날은 얼마나 될까? 사철가에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도 못 사는 것이 인생이라 했는데.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늘고 있지만 건강나이로 병원신세 지지 않고 사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내가 결혼할 무렵, 농사도 지으시고 아이들도 돌봐주셨던 어머니가 이제 우리 도움을 받지 못하면 일상이 불편한 상황이 되셨다.


어머니는 소파에 그림처럼 앉아 있다. 빨래며 청소며 집안일하느라 왔다 갔다 하는 내 동선을 눈으로 따라가신다. 밥을 차려드려야 하고 식사 후 산책을 시켜드려야 한다. 혼자 길을 잃거나 못 들어오실까 봐 동행해야 한다.


인지력 개선에 도움이 될까 싶어 색칠하기, 글자 따라 쓰기, 동화책 소리 내어 읽기를 추천해 드렸지만,


"내가 이거 해서 머할끼고?"

부여할 동기 없는 활동은 진전이 없다.


"어머니, 뭐 드시고 싶으세요?"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없는 삶은 생기가 빠져나가 시간이 다 소모된 바스락 낙엽 같다.


80세까지 자식들이 여행 가는 데도 곧잘 따라나서고 맛있는 음식도 잘 드셨는데 그로부터 삼, 사 년이 지난 올해는 영 기운도 없으시고 의욕이 떨어지셨다. 단짝처럼 지내시던 큰어머니의 별세 이후로 고독감이 더하시다. 고독감과 무기력감은 생각보다 사람의 의욕을 빨리 떨어뜨리고 신체나이를 가속시킨다.


백살도 못 살 인생에,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의무를 다해야 할 60을 빼고 나면 팔십까지는 겨우 20년, 팔십을 넘기고 나면 할 수 있는 일도 제약이 많고 몸 여기저기도 고장 난다. 희로애락을 느꼈던 감정이나 오감도 둔해져서 집안을 벗어나기가 어렵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무기력함과 고독감, 둔해진 오감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삶은 자신의 시간을 다 쓰고 타인의 시간을 뺏아 살아가는 느낌이다.




자식들의 성장을 못 보고 가신 친정부모님을 보며 나는 인생이 유한함을 일찍부터 알았다.


주변에서 건강을 잃고 쓰러지는 사람들, 각종 사고들로 태어난 순서대로 가지 않는 삶의 끝을 보면서 내 앞에 놓인 시간이 무한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조바심이 났다.


견디며 이루고 싶은 것보다 누리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하고, 돈이 지출되는 것보다 시간이 소비되는 것을 아까워했다.


어쩌면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퇴직한 이유도 직장에서 내 남은 에너지를 다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생계유지에 어려움이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좀 더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찾지 못하고 퇴직했지만, 천직인 줄 알고 30년을 지냈던 직장에서 더 이상 보람과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날, 하던 대로 출근하고 관성대로 하루를 보내는 내가 보였다. 내 삶이 빛나는 날들은 아직 오직 않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잠들지 못하는 날에 질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 삶, 이대로 괜찮은가?

몸 여기저기 고장 나고 있는데, 기력이 떨어졌을 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는가?

나는 무엇으로 쓰이기 위해 이 세상에 던져졌는가?

내가 제대로 쓰이고, 제대로 꽃 피운 게 맞는가?


몸 기능이 살아 있을 때 체험하고 느끼며, 호기심이 생기는 곳에서 세상을 탐험하고 싶었다.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밤에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홍익인간을 떠올렸다.




나도 언젠가부터 내 시간이 줄고 있는 것을 느낀다.


깜박깜박하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

설명은 할 수 있으나 이름이나 낱말은 떠오르지 않는 것,

물건을 둔 곳이 생각나지 않아 찾아 헤매는 것이 다반사가 되어가는 일상,

2주마다 염색을 해야 하는 것,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돋보기를 써야 책을 읽을 수 있는 ,

뇌가 노화되고 있는 것을 비롯해서 신체기능이 눈에 띄게 줄었다.


어머니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녀와 다르지 않을 내 미래를 본다. 바스락거리며 하얗게 변해가시는 어머니처럼 나도 그렇게 변해갈 것이다.


무한히 살지 못할 우리는 시간을 소비하는 느낌이나 죽음을 인식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얼마 남지 않은 내 시간을 채울,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


멈추고 돌아보면서 내가 찾고 싶었던 그 일을 찾고 있다. 내가 찾고 싶었던 그 일은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거 같다.


환갑을 몇 년 앞두고 이제야 내가 누구인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찾으려고 하다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


내 인생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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