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시스템과 전략적 유연함의 중요성
p.126~133
『손자병법』, 글항아리,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형(形)’의 관점에서, 손자는 완전한 승리를 위한 5가지 원칙을 제시했는데, 도(度), 량(量), 수(數), 칭(稱), 승(勝)이 그것이다. 도(度)는 영토의 크기, 량(量)은 군대를 먹이고 입히기 위한 보급과 생산 능력으로서의 경제력, 수(數)는 병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 동원 가능한 인구수이다. 이 세 가지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측정가능한 요소들이며, 이 세 가지 요소들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칭(稱)이고, 그를 바탕으로 승리의 가능성을 점치는 것이 승(勝)이다. 손자는 이렇듯 전쟁을 하기 전 철저한 사전 준비와 객관적 비교를 중시했으며, 경제력을 매우 중시했다. 그는, 승리하는 것은 마치 “천 길의 계곡에 가두어놓은 물을 터뜨리는 것과 같으며, 이것이 형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큰 힘으로 아주 쉽게 승리하는 것과 같은 것이 형(形)이며, 기본적으로 잘 갖추어지면 승률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것이 형(形) 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평소에 도(道)와 법(法)을 비롯해서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갖추어야 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군사 작전을 위한 4가지 원칙도 함께 제시했는데, 바로 분수(分數), 형명(形名), 기정(奇正), 허실(虛實)이다. 분수(分數)는 부대의 편제를 의미하며, 형명(形名)은 부대를 효과적으로 운영·통솔하기 위한 지휘 계통과 운영 체계를 의미하며, 기정(奇正)은 정공법과 권모술수를 합한, 전쟁에서 우위를 가져오기 위한 모든 유형의 전술을 의미하며, 허실(虛實)은 부대의 효율적인 운영과 준비 태세를 의미하기도 하고, 적의 약점과 아군의 강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허(虛)는 어떤 것이 부족하거나 없는 상태를 의미하며, 실(實)은 어떤 것이 잘 갖춰져 있거나 정비되어 있거나 준비되어 있거나 충분히 모여있는 상태를 말한다. 허실(虛實)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병력의 규모, 준비 태세의 정도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분수와 정명은 기정과 허실의 토대가 된다. 즉, 기본적으로 부대는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잘 조직되고 정비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평소 합리적인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시스템은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고 느끼기 어렵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앞서 말한 4가지 요소 중 손자는 특히 기정(奇正)과 허실(虛實)을 강조하는데, 모두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허실은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는 말도 있듯 자신의 본모습을 잘 숨기고 포장하라는 의미도 들어있다. 이와 같은 전략적 유연성의 사례는 이 책에서 진(秦) 나라의 공격으로부터 조국 한(韓)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상당군(上党郡) 땅을 제3 국 조(趙) 나라에 바친 풍정(馮亭)의 현명함이나 『안자춘추』에서 초(楚) 영왕이 작고 왜소한 본인의 체격을 놀리기 위해 세운 계책을 허허실실(虛虛實實)의 태도로 웃으며 모두 논파하는 안영의 영리함에서 느낄 수 있다. 그중 한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영왕이 안영에게
제나라에는 그리도 인재가 없는가. 어째서 당신같이 키 작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냈소? (p.134)
라며 인신공격을 하자, 안영은 태연한 말투로 대답했다.
대왕,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많습니다. 다만 한 가지 규칙은 현명한 나라에는 현명한 자를 파견하고, 대국에는 키 큰 사람을 파견하고, 소국에는 키 작은 사람을 파견합니다. 아쉽게도 저는 무능하고 현명하지도 못하기에 초나라로 파견될 수밖에 없었으니 대왕께서는 이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