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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생각을 해!!

모든 건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라.

by 독자J

p.201~213

『손자병법』, 글항아리,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손자는 용병의 원칙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이 공격해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고 내가 대적할 방책을 믿으며, 적이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지 않고 적이 나를 공격할 수 없게 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p.211)


이는 유능한 장수는 수비를 적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에게서 구한다는 뜻이며, 공격 시에도 마찬가지이다. 최고의 수비는 적이 공격할 의지를 차단하는 것이며, 최고의 공격은 적이 예상치 못한 곳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를 통해 탄탄한 계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편, 이는 최고의 수비는 적이 공격해 올 때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적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과 환경을 적극적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손자는 이 구절을 통해 철저한 준비와 동시에 상황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설정하기 위한 적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다. 본인의 환경과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고 굴복하기보다 본인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본인이 원하는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세부 목표들을 계획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부딪히는 능동적인 사람이 훨씬 멋지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 그런 사람들을 멋지다고 느낀다. 손자는 이러한 적극성과 능동성을 가져야 한다고 독자에게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손자는 변화하는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능력을 매우 강조하는데, 그 대목은 다음과 같다.

길에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고, 군대에는 공격하지 말아야 할 군대가 있으며, 성에는 공략하지 말아야 할 성이 있고, 땅에는 쟁탈하지 말아야 할 땅이 있으며, 군주의 명령에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명령도 있다.(p.208)


여기서 군주의 명령조차 거부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는 아무리 명령에 살고 죽는 군인아라고 해도 기본적인 판단력과 유연한 사고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일어난 계엄 사태에서 ‘생각할 줄 아는 지휘관들’이 더 많았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편으로 계엄이 실패한 것은 ‘생각할 줄 아는 병사들과 국민들’이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키는 대로 했던 대부분의 지휘관들과 달리 병사들은 본인들의 판단 하에 소극적으로 저항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새 국회를 지켰던 수많은 국민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명령이 내려온다고, 상급자기 시킨다고 무비판적으로 행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우리는 조금 더 독립적이고 유연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손자는 나에게 이론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임기응변 능력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가능하다. 손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혜로운 자의 생각은 반드시 이해관계를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 (해로움을 생각할 때) 이로움을 함께 고려하면 더욱 믿을 수 있는 방향(전투 임무의 완성)으로 힘쓸 수 있으며, (이로움을 생각할 때) 해로움을 함께 고려하면 실로 근심을 풀 수 있다. (p.211)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성격만 가지고 있지 않고, 동전에도 앞뒤가 있고, 모든 일에도 장단점이 있듯 모든 것에는 다양한 면모가 있다.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하기 싫은 것, 나에게 해로워 보이는 것에도 이로운 점이 있을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이로워 보이는 것에도 해로운 점이 있을 수 있다. 현명한 의사 결정은 이렇게 다양한 면모를 고려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좋은 습관을 들이거나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것은 귀찮고 힘들며 당장은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꾸준히 할 수 있는 동기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어떤 힘든 일을 하게 됐을 때, 그 상황에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전환하여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계기로 삼아보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저 시간만 때우려고 하는 사람은 그 일을 대하는 태도부터 다를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군대를 가지만 모두가 똑같은 군생활을 하지 않고, 똑같이 힘들고 고된 일을 해도 누군가는 조금 더 웃으며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태도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역경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라는 말도 있듯 인생은 결국 태도와 생각을 어떻게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전부라는 것을 손자는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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