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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하지만 죽지 말고,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말라?

손자가 말하는 인생의 오묘한 진리, 중용(中庸)

by 독자J

p.214~228

『손자병법』, 글항아리,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손자는 장수의 다섯 가지 허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장수가 용맹이 지나쳐) 반드시 죽으려고 한다면 죽게 될 수 있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사로잡히게 되며, 분을 이기지 못하여 빨리 행동하면 모욕을 당할 수 있고, 성품이 지나치게 깨끗하면 치욕을 당할 수 있으며, 백성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번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p.214)



이 대목은 매우 미묘하다. 반드시 죽으려고 한다면 죽게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살려고 하면 사로잡힌다는 말까지 붙여보면 약간 이상하다. 이 말은 임전무퇴(臨戰無退), 즉 전쟁에 나갔으면 물러서지 말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라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두 문장이 상호 모순적인 것처럼 보인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되 진짜 목숨은 걸지 말라?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말했던 ‘사즉생(死卽生) 생즉사(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말과 배치된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적에 비해 완벽하게 열세인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필사의 각오로 항전할 것을 독려하기 위해 이 말을 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오히려 살 수 있으니 나를 따르라고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손자는 “진짜 죽으려고 하면 죽음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모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는 현명한 장수는 상황에 따라 필사(必死)와 필생(必生)의 양 극단이 아닌 적절한 지점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전쟁에 나갔으면 기본적으로는 살고자 하면 안 되지만,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목숨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목숨은 한 개뿐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전쟁은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좋고, 전쟁을 개시하기도 전에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육박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며 그 상황에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으로, 지도자의 냉철한 판단력과 유연한 사고를 강조한 것이다. 전쟁은 무조건 돌격하거나 무조건 몸을 사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승리를 최우선으로 하되, 손실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는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되, 정말로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무섭게 몰아치고 매진할 줄 알아야 한다. 목숨은 하나이므로 잘 지키는 것이 우선이지만,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기꺼이 걸 줄 아는 승부사적 기질도 인생에서는 필요한 법이다. 결국 유연함과 냉철함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이순신 장군은 그런 측면에서 현명한 지도자의 전형이었다. <한산>처럼 신중하고 치밀한 면모도 있는 반면, <명량>과 <노량>처럼 거침없이 돌격하여 적군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적선(敵船) 한 척이라도 더 깨기 위해 분투하는 면모도 갖추고 있다. 지장(智將)이자 덕장(德璋)이자 용장(勇將)이자, 문무(文武)를 겸비한 리더였다. 실로 완벽한 리더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장수가 성품이 지나치게 깨끗해서도, 백성들을 지나치게 사랑해서도 안 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지나치다’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역시 리더는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유연성과 합리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리더는 어느 정도 냉혹함 또는 잔인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리더에게 잔인함과 냉혹함은 필요악인가? 이건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질문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어느 정도 냉혹한 면모가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누군가는 그에게 강한 성적 끌림을 느끼기도 하고, 그를 존숭(尊崇) 하기도 하며, 그를 광적으로 지지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실제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마조히스트인걸까? 독이 든 성배인 것을 알고도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위험한 것을 알지만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니 인간은 참 알다가도 모를 생물인 것 같다. 그렇기에 인생이 쉽지 않은 것이고, 따라서 인간은 고정된 신념, 고정관념, 편견, 극단적 생각들을 모두 배제하고 매사에 유연함과 합리성을 지녀야 한다고 손자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훨씬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인생이 조금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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