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 일

사...실 아니지 4

by 나길

"엄마, 약 먹으려면 일어나야 되는데, 일어날 수 있겠어? 우리가 옆에서 잡을 테니 천천히 일어나 봐"

"으 응 잠시만, 엄마가 일단 한 번 해볼게.

으 으...윽 음. 잠깐 잠시만, 다시 해볼게. 으...이..음 잡아줘! 천천히 어 천천히... 음.. 휴~"

"__야, 내가... 뭘 하면 될까... 나 때문에... "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일은 잠자던 나의 고질병을 일으켜 세웠다.

목디스크.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다.

최고의 자세는 서 있는 것.

하루 종일 서있을 수는 없어서, 잠시 잠깐 앉았다. 일어 서기를 반복한다. 그 마저도 앉거나 일어설 때 힘을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몸의 움직임에 나의 디스크는 힘차게 반응한다. 아니 거부한다. 통증으로.




나는 각진 턱을 가졌다. 어릴 때는 많이 먹지 못해 도드라졌고, 결혼하고는 살이 붙어 조금 그 각도가 숨겨졌다. 어린 시절 내 얼굴이 너무 싫어서 거울을 거부하던 나는 결혼과 출산을 통해서 살이 통통해진 나를 보는 것이 좋았다. 거울은 나를 웃음 짓게 하는 또 다른 나를 보게 도와주었다.

결혼이 나에게 첫 번째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던 건 맞다. 그것이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그때는 생각했지만, 아이를 갖고 생명의 움직임과 자라남을 눈으로 보는 10개월은 나에게 더 이상 체험할 수 없는 고귀한 순간이었다. 마지막 안식처라 생각했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나는, 신께 숨 쉬는 순간을 감사했고 남편과 나는 함께 하는 시간마다 기도했다. 우리같이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에게도 이 귀한 선물을 주심에 감사했다. 감사는 곧 책임으로 이어졌고, 그 책임감은 또 다른 것을 낳았다.


그 아이는 버릇이다.

이를 앙 다무는 버릇, 어떤 것도 떼어내지 못하는 버릇! 이 생겼다.

자는 동안에는 더 심했고, 무심코 멍하니 있는 순간을 '레드션!' 하고 깨어났을 때도 심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 특히 심했지만, 의식하는 순간에도 그 행동은 계속되어서 버릇이 되었다.

나는 그 버릇을 볼록 튀어나온 배와 함께 감싸 안았다. 좋았다. 진짜 좋았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 수없이 '네 잘못이야, 너가 더 잘하지 못해서 그렇게 산 거야, 그게 맞아. 아니 태어나지 말았어야지!!!' 끝없이 계속되었던 괴롭힘에 사과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 아기는 내 몸속에 있었고, 나의 일부였기에 나는 신께 세례를 받아 죄가 씻기어 내리 듯 나를, 내가 숨기고 있던 나의 죄를 아기를 감싸 안으므로 속죄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그 마음이 나타내는 강한 의지의 행동 '앙 다물기'는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계속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듯 '앙 다물기'는 나의 턱 선을 발달시켰다. 물론 태어나면서 가진에 아니기에 자연스러울 수 없는 그 아이는 대칭이란 걸 잊어버리고 자라났고 조금은 나 자신이 보기에 불편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거슬리지 않았다. 나를 거슬리게 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다.


내가 다닌 교회의 모임에서 기도 제목을 나누는 시간에 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내게 온 선물인 아이들을 정말 잘 키우고 싶어요. 신께서 주신 이 보물들을 내게 가진 것을 다 주고, 더 한 것을 내어 주어야 한대도 신께서 맡긴 이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를 가진 이후로 버릇이 한 가지 생겼어요. 턱을 앙무는 버릇이 생겼어요. 내가 감지하든 아니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실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해서 그런지 그런 버릇이 생겨버렸어요. 근데 그 버릇은 통증을 안겨줘요. 가끔 말이에요. 하지만 나쁘지 않아요 없애고 싶지도 않고요. 그게 사실 제가 잊어버릴 때마다, 일깨워 주거든요. 그게 좋아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동안 지치지 않고 바른 마음으로, 지혜롭게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한 사람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

그런 말을 한 내가 너무도 대견스러워서 그런 나를 인정받고 싶어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난 날아오는 칼 날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의 말과 눈이었다. " 뭘 그렇게까지 해. 그냥 키우면 되지. 옛말에도 있잖아. 아이들은 다 자기 밥그릇은 가지고 태어난다 잖아요."라 말하며 나를 별것도 아닌 것을 저렇게 터무니없게 기도제목으로 내놓다니라고 말하는 조롱의 눈빛이었다. 그 조롱은 깊었다. 그가 던졌기에 깊고 아팠다.

그는 내가 아이를 낳고, 남편의 직장이 있는 그 도시로 이사를 오면서 마음을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늘 도움을 받았고, 마음으로도 기대어 쉼을 주었던 사람이었다. 친 자매가 많았지만, 친자매보다 더 의지했다. 그런 그이 반응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웹툰에서 충격을 받았을 때 나오는 '뜨..어...헉!' 이란 지문과 실핏줄이 날로 선 눈 알이 튀어나오려 하는 인물의 표정을 떠올려보면, 그게 그 순간의 나였다. 사실 그 표현은 부족하다. 내 인생에 잊어버릴 수 없는 순간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의 조롱하며 비웃는 눈 빛이 나를 관통했다. 모임 내내 그런 나를 숨기려 모임이 마칠 때까지 내 목소리는 떨렸다. 나는 그 충격에 이후에는 그를 만날 때마다 힘들었다. 어쩔 수없이 만나야 하는데 늘 당당하며 똑똑한 그가 지신의 정의의 잣대로 나를 한 가닥씩 잘랐고 하나씩 하나씩 쟁반에 펼쳐놓았다.

나는 그럴수록 더 강하게 오래 앙물었다. 잠잘 때, 멍할 때뿐만 아니라 늘, 매 시간 나는 그의 비웃음을 짓니겨 가루로 만들어 날려 버리고 싶은 것처럼 계속 씹고 눌렀다. '난 니가 생각하는 그런 모자란 사람이 아니야. 너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도 할 수 있어. 너보다 잘 하진 못해도 최소한 최선을 다 할 수 있어. 잘할 거야! 잘할 수 있어!' 그렇게 턱을 놓치 않았었다.


그 버릇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나를 강화시켰다. 물론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인 부분 둘 다 말이다.

난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떤 가정이 우리를 더욱 안정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떤 교육이 참 교육이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교육의 방법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려면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어떤 먹거리를 선택할까, 어떤 책을 읽어줄까,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좋은 부모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이 될까,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가 맨 처음 사람의 본일 텐데 우리는 어떤 모습의 사람을 본으로 삼아야 할까,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이 사회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등...의 고민들은 나를 더욱 할 걸음씩 나아가게 했다. 그 과정들은 나를 조금씩 발전시켜 주었고,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그 삶은 참 나를 힘들게도 했다. 그 버릇은 날로 강화되어서 거울은 그만하라고 놓으라고 자꾸 말했다. 너무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만들어진 기암절벽처럼 쌓이고 깎이고 쌓이고 깎이는 동안 아팠다. 이를 앙물던 내 고집은 몸을 이리저리 전염시켰다. 몸은 디스크를 낳았고 심해졌다. 어쩌면 그것이 이미 나라서, 내가 조금 느슨해지려 할 때마다 통증으로 잡는 것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이제 그것은 나라서, 그동안 그렇게 필요해서 절대 놓지 않던 나라서, 겹겹이 쌓였지만 그 오랜 세월 단단해진 기암절벽처럼 내 안에 너무 단단한 그것이 이제는 한 겹 떼어 낼 때마다 그렇게 아쉬워하는 것일까 싶다. 그 아쉬움은 크나큰 통증과 한 움큼의 약으로 들어왔다.




"__야, 내가... 뭘 하면 될까... 나 때문에... "

목디스크의 통증을 견디며 일어나고 있는 내 옆에 선 남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엉거주춤 서있었다.

그는 내가 그 오랜 시간 만들어낸 내 통증 앞에서 죄인처럼 서서 어찌할 바 모르고 있었다.

그는 내 모든 순간을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모든 순간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내 통증의 고리로 자신을 꿰어 구멍을 내고 있었다.

그의 모든 순간들이, 그렇게 애쓰고 땀 흘렸던 매 시간을 뚫린 구멍 사이로 줄 줄 뱉어내고 있었다.

그의 눈물이 그 속으로 들어가 상처를, 그 생체기를 통증으로 가득 메웠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그의 잘 못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노력에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실패에는 한 가지의 원인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나는 네 스스로 상처를 더 내지 말라고, 멈추라 말하고 손을 끌어 약을 내어 발라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렇게 못 했다.


앙다무는 버릇이 내가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는 나의 받아 본 적 없는 어린 나의 몸부림이었음을 부정당할 때, 나는 말해야 했지만 나를 설명해야 했는데도 그 행동이 구차하게 느껴져서인지, 말해도 들을 귀가 없는 이에게 내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선택했다. 그를 그냥 네 안에서 그냥 비수로 꽂아두기로.

그것처럼, 난 남편의 날카로운 자책을 통증보다 깊은 그의 후회를 멈추지 않았다. 멈추어 줄 생각이 없었을까. 아니면 각자의 구멍을 메꾸는 것은 각자가 하는 것이길 바랐을까. 모르겠다.


내 턱을 앙무는 버릇이, 결국 내 온몸에 통증으로 지배당한 것처럼, 난 두렵다.

내가 말해 주지 못한, 어루만져주지 못한 그의 눈물로 얼룩진 구멍들이 스르르 모여 그의 가슴팍을 크게 뚤어버릴까봐. 더 이상 채우지 못하게 될까 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까 봐서 두렵다.


모든 것이 내 탓일까 봐,

그 소금기 가득한 구멍이 스믈스믈 내게 올까 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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