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니지 5
'처음이야 내가 ... 사랑에 빠져버렸어~'
카페가 눈을 돌리면 어디에도 있는 지금처럼, 그전에 PC방이 그랬다. 또 그전에, 누구나 약속을 잡고 2차, 3차로 노래방이 필수 조건인 듯 그 시절의 뒤풀이 문화를 노래방이 바꾼 적이 있었다. 지금도 카페, PC방, 노래방은 남아있으니 놀이 문화를 바꾼 게 맞긴 한가보다. 그때 한 창 우리는 노래방에 가서 목이 찢어져라 부르고 불러도 성에 차지 않던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우리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다섯 손가락 모두 열정적으로 뒤적여봐도 100원짜리 하나 손에 닿지 않던 시절이었다. 우린 겨우 언니의 월급날, 그 작은 체구로 회계 사무소에서 밤 낮 없이 일하면서 지금의 최저임금의 수준을 상상도 할 수 없이 밑도는 돈을 손에 쥐고 환하게 웃고 있는 언니의 월급날, 우리는 가끔 대학가 앞 레스토랑에서 저녁도 먹고 노래방도 갈 수 있었다.
'처음이야 내가 ... 사랑에 빠져버렸어~'
가수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은 결혼 전 연애하던 그 시절에 남편의 애정곡이었다. 나에게 바치는 헌정곡이자 구애의 목소리였다. 처음인 건 모르겠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빠져있었다.
아름다운 구속은 정말 그를 잘 대변했다.
'혼자인 게 좋아~ 나를 사랑했던 나에게. 또 다른 내가 온 거야~ 내 앞에 니가 온 거야~'
나는 그렇게 그에게 왔었나 보다.
그는 우리가 함께 속한 모임의 리더이고 나의 한 기수 선배였다. 무엇보다 우리 기수 이하 후배들은 그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의지했고 배우고 싶어 했다. 그런 우리에게 그는 자신의 버스비까지 털어서 모임 날 늘 분식을 사주고 힘든 일이 있는 후배들은 따로 만나 위로하고 자신의 시간과 가진 돈을 아낌없이 주는 것으로 돌보았다. 그 덕에 우리는 모임이 끝나고 떡볶이를 먹으면서 일주일 간의 재미난 이야기, 슬펐던 이야기, 우스갯소리, 그리고 갑자기 이어지는 노랫소리... 그렇게 마음껏 울음을 토해낼 수도 세상 걱정 없다는 듯 신날 수 있었다. 여러 기수들이 한데 모이는 토요일 오후를 모두가 기다렸다. 삼삼오오 모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나누고 배꼽 빠져라 웃고 노래하고 그 모든 일들이 각자 힘든 고된 십 대를 보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휴식이었다. 그런 우리들이 돌아가고 나면 걸어서, 3시간이 넘어 걸리는 그의 선배의 자취방까지 걸어갔다. 그게 듣기에는 낭만 같을지 모르지만, 사계절을 그렇게 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잘 먹지 못해서 그나마 남은 아까운 소금기마저 땀으로 나와 셔츠를 젖게 하고는 결국 퀴퀴한 냄새만 남기던 여름에도, 누구나 오리털 잠퍼를 입고 다니던 시절에 얇은 티 하나에 얇은 솜 점퍼를 입고서 칼 같은 겨울의 거리를 몇 시간씩 걸려 남의 자취방으로 가던 그 계절에도 그는 그렇게 걸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가진 것 중에 가장 공짜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몸을 어느 계절에도 잘 활용했다. 그런 그는 참 멋있었다. 그의 힘듦 정도는 우리의 그를 향한 영웅담으로 퉁쳤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몰랐던 나는 그 영웅담을 주고받는 말들로 실을 꿰어 엉퀴 어진 입술들이 말할수록 팽팽해져 늘어진 천처럼 변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없었다.
내 기억 속에 그는 그 시절 내내 그렇게 살았다. 그저 웃고 좋다고만 했고, 좋다고만 했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21살이 되던 해에 사귀어보기로 했다. 그러다 결혼도 해보기로 했다.
실제로 너무 사귀고 싶을 정도로 서로 좋아하진 않았고, 그저 그의 삶의 지표와 지향점이 같아서 좋았다. 그 삶을 정말 그와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또 다른 나의 자랑처럼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의 겉멋은 그게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땐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을거라 의심없이 믿었다.나는 그는, "우리 각자가 삶고 싶어 하는 방향이 똑같아. 그리고 좋은 사람인건 틀림없는 것 같고. 그래서 한 번 사귀어 보기로 했어. 그리고 큰 이변이 없으면 결혼도 하기로 했어."라고 친구들과 언니에게 말했다. 손가락으로 뱅뱅 돌려 주머니를 뒤집어서 먼지도 안 나올 때 이야기다. 그저 꿈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꿈은 언제나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로 이용되었지만, 우리도 흔쾌히 내어주었다. 그것만이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이었기에 그랬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을 새새히 맞출 순 없어도 삶의 큰 틀 안에서 당연히 그렇게 살 것이라고, 그 결말은 사과나무의 사과의 양은 해마다 달라도 그 열매가 어김없이 달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와 내가 생각하는 삶의 열매라는 것이 참 달랐다.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며칠을 내내 기다렸다.
그가 바쁘다며 전화할게. 했던 말이 벌써 5일이, 일주일이, 2주가 지났다. 그는 동기들과 함께 MT를 갔고, 여름 겨울 캠프 준비 모임을 며칠간 갔고, 캠프를 2주 3주 갔다. 대학생의 긴 방학들이 우리에겐 짧은 만남도 허락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의 일이었으므로 괜찮았다. 그런데, 중간에 전화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잘 지내냐고 뭐 하냐고 보고 싶다고 전화하지 않았고, 돌아와서 물어보면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에 끝내고 숨을 돌리다 보면 시간이 너무 늦어서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맞다. 나는 사실이지만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있다. 만들 수 있지. 점심시간도 있고 잠시 쉴 때도 있고 화장실 갈 때도 있고 차 마실 때도 있다. 지금처럼 휴대폰은 없었지만, 삐삐가 있었고, 시그널은 남길 수 있었다. 참 이상한 건, 이 사실을 나는 그때에 몰랐다는 거지.
그때의 나는 억수같이 쏟아붓는 빗줄기에 잡은 운전대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손끝으로 보내고 와이퍼의 움직음과 닦이는 빗물 사이로 뭐라도 보겠다고 눈이 튀어 날 올 듯이 목을 꺾어 거북목을 만들었던 폭우 속 운전하는 사람처럼, 사랑은 그저 사랑이기에 주변에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이 폭우부터 뚫어야 했기에. 그래도 좋았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지쳐갔고, 그런 그는 나를 잘 이해 못 했다. 가수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은 정말 그가 나를 향한 마음, 아니 그의 성격을 잘 말해줬다. 또 다른 그가 나이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지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그의 행보가, 그것이 매력이었고 존경스러웠던 그의 삶이 이제는 아니었다. 내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있는 철저히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는 나의 길, 이 길에 동행하기로 동의했잖아.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하기로 했잖아. 지금 와서 이렇게 말하는 건 왜야. 이런 힘든 것쯤 각오했던 거 아니야. 너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 '소리 없는 가시들이 내 머리에서 끝없이 생산되었다. 차라리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쉬웠을 것을, 그 소리는 나만 들을 수 있는 눈물이었다.
나는 그에게 갔다. 그가 살고 싶다던 삶에 발을 들였고 같이 꿈꾸고 이야기하고 기도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또 다른 자신이라고 여겼을까. 그의 한 발 한 발에 설명은 없었다. 바빠서 전화를 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히 내가 아는 것이었고, 다른 여자 동기가 자취하는 그에게 생일선물로 속옷을 사줄 때도 완전히 고마워 했어야 하고, 버스비까지 털어서 밥을 사주던 일들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가 버스비까지 털어 후배들 배를 채우고 보낸 뒤 우리는 2-3시간 걸어서 데이트를 해야 했지만, 내가 그에게 갔기에 감당해야 하는 당연한 것이었다. 동의했잖아. 결혼도 하고 그렇게 살기로 말이야.
'슬픔이 내게서 널 가져갈 수는 없어. 이미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하니까. 나에게 꿈이란 바로 그대인걸. 그걸 지울 순 없잖아.'
황인정 가수의 곡이다. 나는 늘 이 노래를 그가 부르는 '아름다운 구속'의 답가로 불렀다.
그에 생각대로 내가 간 게 맞다. 내가 놓지 못한 것도 맞다. 내 꿈은 분명히 있었는데, 그 꿈이 그로 바뀐 것도 맞다. 꿈이 그인 건 뭘까. 그것도 모른다. 그저 늘 내가 그의 사랑이기를 바랐던 것이 꿈이었을까. 바보. 꿈은 그저 꿈인데. 꿈은 참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품고 있을 때는 그것처럼 부풀게 만드는 것이 없다. 이미 내 안에 가득 차서 내 목소리마저도 들어갈 틈이 없다. 그래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보고 싶지도 않다. 마약이 이런 느낌일까. 하지만, 풍선도 그렇게 빵빵하게 부풀어있던 풍선도 어디에 찔리지 않아도 서서히 바람이 빠지고 어느새 주글주글한 고무덩이가 되어있다. 나도 그랬다.
나 자신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으로 내 꿈을 채운 나는 내게 혹독했다.
꽉 차 있던 그가 서서히 자리를 비워 가고 있다는 것, 아니 그 자리는 내가 채웠어야 할 내 자리였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랬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어떤 방법으로 설명해야 할지는 막막하다. 대표적으론, 그는 모든 사람에게 관대했고 정확한 것을 일러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도 똑같이 객관적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모임에서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느끼고 돌아온 날, 나는 그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는 그때 바로 얘기했어야 했다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계속 얘기했다. 나는 또 나를 변호하고 그는 또 이제는 누구였는지도 기억 못 하는 그들을 대변했다. 처음엔 그가 공정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점점 그 대상은 바뀌었지만, 그 시간은 늘 똑같은 대화를 채워갔다. 나는 점점 그 대화 상대 중 한 명이 나인 것 같았다. 여기는 모임이 아니고, 집인데도. 나는 그의 아내가 아니고 그의 모임원으로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난 그런 서러움이 폭발했다. 작정할 시간도 없이 채우다 채우다 터진 풍선처럼 굉음을 냈다.
'왜 내편은 들어주지 않아? 내가 그냥 토론자야? 여기가 모임이야? 집에서는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 줄 수 있잖아. 왜 늘 나만 못난 사람으로 느끼게 해? 나를 내 감정을 공감할 수는 없어? 공감이 안되면 아내로서 힘들어하는 내게 상대방을 변호하는 입만 다무는 게 안돼?...' 무수한 말들을 울음 섞인 소리로 뱉어냈다. 무슨 소리였을까. 그는 잘 알아들었을까. 모른다.
그저 그 뒤에 온 적막한 시간에 머릿속을 온통 울려대는 시계 초침이 지나가는 소리에 내 감정이 밀려나가고 그 자리에 공허함과 부끄러움이 채워졌던 것만 기억난다.
그때도, 그 뒤에도 그는 입을 닫았다.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동안 그의 입은 더 굳게 닫혔고 나는 괄약근이 서서히 풀려 오줌을 찔끔찔끔 싸다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콸콸 쏟아냈다. 그래도 한 마디도 안 했다.
내가 왔으니까. 내가 나로 채워야 할 꿈을 그로 채워서 왔으니까. 어쩌면 그는 할 이야기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그는 변한 적이 없다. 내가 변했지. 바람 빠진 그곳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아니 채우는 게 맞는지 몰랐다. 내가 질문을 몰랐으니까 그는 답을 할 수 없어 입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