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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행

by 박지영 Mar 08. 2025

 친한 동생이 오랜만에 놀러 왔다. 미국 요양원에 계시던 엄마가 하늘나라 가신지 꼭 1년이 되는데 아직도 엄마의 휴대폰을 해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의 치매증세가 조금씩 더 악화되어 가는 상황에서도 매일 한 차례 “엄마, 사랑해” 로 통화를 마무리하던 폰... "엄마, 사랑해"로 가득한 카톡 문자들... 폰이 해지되는 순간 늘 옆에 계신 것 같은 엄마도 함께 사라져 버릴 것 같다고 했다. 30년 넘게 그녀의 엄마가 읽으셨다던 너덜너덜한 성경책 가죽 커버와 형광펜으로 도배된 성경 구절들을 폰 사진으로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책상 한편에 놓여있는 엄마의 유일한 유산인 낡은 성경책 한 권과 휴대폰 한 대...

돌아가신 분의 휴대폰이 해지되지 않으면 마치 그분이 다시 살아 돌아오셔서 언젠가 한 번쯤은 통화음이 울릴까 싶은 희망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아직 엄마를 보내드리지 못하고 있는 그녀에게 이젠 그만 폰을 해지하고 놓아드리라고 말해주었다. '열린 방문 틈 사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성경책과 휴대폰이 그녀를 잠 못 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었다. 묵묵히 듣고 있었지만 아마도 그녀는 엄마의 폰을 해지하지 못한 채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I cannot carry this body with me. It is too heavy. It will be like an old abandoned shell.

There is nothing sad about old shells... “


​떠나온 별로 돌아가려는 어린 왕자가 그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주인공에게 하는 말이다.

돌아가기엔 몸이 너무 무겁고 육체는 버려진 껍질과 같아. 낡은 껍데기 때문에 슬퍼할 이유는 없어 “

안 보이던 문장에 눈이 꽂혔다. 어린 왕자가 이런 말도 했던가? 어린 왕자의 담백한 이 말로 인해 내심 무의식 속에서 떠돌고 있던 죽음에 대한 무게가 편안한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아, 껍데기와 같은 육신,,, 언젠가는 벗어던져야 할 껍데기 때문에 울고불고 생난리를 치는 지구의 슬픈 이야기들...’

살면서 죽음에 관해 자주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껍데기'만 벗은 것뿐인 존재의 실체를 생각해 보았다. 낡은 껍데기 때문에 슬퍼할 이유가 없으니, 자유롭고 평안해진 영혼이 별이 되어 빛나리라는 상상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나에게는 팔순을 훌쩍 넘기신 엄마가 계시다. 엄마와의 이별을 먼저 경험한 동생이 ”엄마 돌아기시기 전에 잘해드려 “ 하는 말에 ‘곰살 맞은 딸이 돼봐야지’ 싶지만 본래 성격을 버릴 수가 있겠는가.

노력은 해보겠지만 자신은 없다. 다만 한 가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뇐다. 언젠가 엄마가 육체의 껍질을 벗으시는 날, 어린 왕자의 말을 떠올리면서 심하게 절망하지 않기로 말이다. 생각만 해도 두려운 미래의 아픔을 위해 스스로를 미리 단련시키고자 하는 이기심이다. 내 껍데기도 나와 이별하는 날 나의 딸이 많이 힘들어할까 봐 요즘 미리미리 훈련시키고 있다.

”이다음에 엄마가 없더라도 혼자 잘 이겨낼 수 있지? 슬퍼하면 안 돼. 엄마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껍데기만 사라진 거야. 엄마는 별이 되어서 늘 너와 함께 있는 거야 “

내리사랑이라 그런가? 내 엄마와의 이별보다는 나와의 이별을 힘들어할 딸 생각에 가슴 아픈 불안에 휩싸일 때가 있다. 하지만 '낡은 껍데기' 때문에 슬퍼할 이유가 없으니 곧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는다.

삶이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든  그것은 하나의 놀이이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때로 그로 인해 고통이 따른다 해도 그로 인해 성장해 가는 숭고한 놀이. 그렇다면 죽음 또한 살아가는 일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존엄한 놀이인 것이다.

입고 있던 껍데기를 벗어던지는 날, 여행 떠나온 별나라로 돌아가는 것!


 


그날까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살면 그만인 놀이...


이왕 나온 놀이, 행복하게 놀다가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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