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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 입문 : 푸흐타의 개념법학, 예링의 목적법학

법철학 입문의 모든 것

by 삼중전공생

근대의 법철학 : 푸흐타의 개념법학


푸흐타(Georg Friedrich Puchta, 1798~1846)는 사비니와 친분이 있었습니다. 처음 뮌헨 대학교 정교수로 부임했을 때도 사비니의 도움이 있었고, 이후 사비니가 입법부 장관이 되면서 사비니의 후임자로 베를린 대학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 맥락이 있기 때문에 푸흐타가 사비니의 역사법학에 강한 인상을 받고 그 핵심 테제를 계승하였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푸흐타를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선 사비니의 연구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비니가 살던 당시 독일 전역에서는 각 지방의 고유한 관습법과 함께 판덱텐(Pandectae; Digesta)에 기반한 로마법이 독일의 당시 여건에 맞춰 수정되어 산발적으로 적용되던 시기였습니다. 판덱텐이 무엇이냐면 고대 로마법을 당대 로마 법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정리한 '로마법 대전(Corpus Juris Civilis)'의 일부인 '학설휘찬(Pandectae; Digesta)'을 말합니다. 이 학설휘찬(學說彙纂)은 말 그대로 로마법 대전 중에서도 법학 학설을 정리해둔 문헌으로, Pandectae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Digesta는 '요약된'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입니다.


때문에 역사법학자인 사비니는 중세 시대부터 독일에 계수된 로마법 연구를 중시하는 로마니스텐이었습니다. 독일의 민족혼을 법학적으로 엄정한 체계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독일 민족에 오랜 기간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로마법을 근대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사비니가 보기에 법률가는 이중정향(Doppelorientierung)이 있어야 했습니다. 당대의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파악하는 감각과 동시에 각 법개념과 법원칙을 전체적인 체계와 정합적일 수 있도록 고찰하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차후에 다시 설명되겠지만, 이런 부분에서 사비니에게는 이미 개념법학적 요소들이 관찰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푸흐타는 민족정신(Volksgeist)의 구현인 법은 고도로 조직되어 형식적으로 모순이 없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사비니가 법이 시대 현실과 더불어 전체적인 체계와 정합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발전시킨 셈입니다. 그래서 푸흐타는 법학이란 무엇보다 법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그 개념들을 가지고 '계산'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 계산이란 피라미드처럼 위계를 이루는 개념의 조직도 위에서 상위 개념으로부터 구체화된 하위 개념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말로만 들으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가능한가 싶은데,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떠올려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선이란 폭이 없는 길이다' 같은 단순한 정의(Definitions)와 '서로 일치하는 것은 서로 같다' 같은 공리(Axioms)로부터 수많은 명제와 증명으로 나아갑니다. 스피노자 윤리학도 유클리드 기하학의 영향을 받아서 이런 식으로 저술되어 있습니다. 푸흐타의 개념법학 또한 법학의 체계성과 완결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이러한 기하학적 엄정성이 법학에서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역사법학은 처음에는 이성법적 자연법론의 추상성과 형식주의를 비판하면서 출발했지만, 푸흐타 이후에 개념법학적 요소가 크게 가미되면서 또 다른 형태의 형식주의인 판덱텐법학으로 발전해갔습니다. 판덱텐법학의 목표는 판덱텐에 기반하여 모순 없는 해석이 도출되는 완전한 실정법체계를 구성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완성한 것은 빈트샤이트(Bernhard Windscheid, 1817~1892년)의 ≪판덱텐법교과서(Lehrbuch des Pandektenrechts)≫를 통해서였습니다.


이런 역사적 맥락 위에서 작성된 독일민법전의 1차 초안은 '작은 빈트샤이트(kleiner Windscheid)'로 불릴만큼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우리가 독일의 민법을 판덱텐 체계라고 일컫는 이유도 이런 사정에 연유한 것입니다. 이 독일의 민법을 일본의 민법이 계수하였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의 민법에도 일본의 민법이 영향을 주었으니 우리나라 민법 또한 판덱텐체계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고 봐야겠습니다.




근대의 법철학 : 예링의 목적법학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1892년)은 초기에는 역사법학의 영향 아래 로마법을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후기에 접어들면서 역사법학의 그늘에서 차츰 벗어나 당대 진화론의 영향을 받으며 "목적은 모든 법의 창조자(Der Zweck ist der Schöpfer des ganzen Rechts)"라는 기치 아래 목적법학을 주창하게 됩니다. 이때 법의 목적이란 사람들의 권리를 잘 가려내 지켜주는 것을 말하는데, 예링에 따르면 권리란 법적으로 보호받는 '이익'을 말합니다. 결국 예링에게 법의 본질은 사람들의 이익을 잘 조화시키며 사회의 복지를 증진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점은 마치 벤담의 공리주의를 연상하게 하는데, 예링은 법률가가 '사회적 복지를 최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권리를 위한 투쟁(Der Kampf ums Recht)≫이라는 책 제목대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받기 위해 사회적인 투쟁을 벌이는데, 이것이 장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뤄진 맥락을 조망하건대 법이란 것이 마치 '사회적 복지 증진'이라는 목적을 향해 진화하는 듯이 보인다는 게 예링의 본래 의도와 더 맞는 독해입니다.


이러한 예링의 목적법학은 이후 이익법학과 평가법학까지 이어지면서 현대 법학과 실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다만 이익법학과 평가법학에 관한 내용은 분명 매우 중요하지만 근대의 법철학사를 다루는 맥락에는 다소 맞지 않고, 권리에 관한 현대적인 법철학적 논쟁들을 좀 더 소개해야 하는 난점도 있습니다. 따라서 차후에 '현대의 법철학' 파트로 넘어갔을 때 이들을 다시 소개하는 지면을 마련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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