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학 입문의 모든 것
근대의 철학 : 신칸트주의
이번에는 철학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습니다. 신칸트주의는 이후 많은 중요한 법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이번 본문에 등장할 슈타믈러(Rudolf Stammler, 1856~1938년) 뿐만 아니라 구스타프 라드부르흐(Gustav Radbruch, 1878~1949년)와 한스 켈젠(Hans Kelsen, 1881~1973년) 또한 신칸트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라드부흐르와 켈젠의 저서는 제가 [04화 법철학 입문 : 도서 추천]에서도 추천했었을 만큼 법철학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이정표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지면에서 신칸트주의의 전반을 살펴볼 수는 없습니다. 단지 이 사조가 가졌던 지적 기반이 이후 법철학자들에게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는지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서술해두고자 합니다. 철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이것도 난해하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등장할 주요 법철학자들의 사상적 기반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칸트의 법철학 파트에서 그의 인식론을 설명한 구절을 기억하실 겁니다. 따라서 칸트의 인식론은 그의 격언에 따라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 이 말뜻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고'는 '개념'과 판단에 관한 이성적 활동입니다. 감각자료를 '직관'으로 파악한 '내용'이 없는 사고 활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고 활동 없이 직관으로 포착된 '내용'만 머릿속에 떠다니는 것은 목적성 없는 감각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칸트를 '선험적 관념론자'이면서 '경험적 실재론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선험적(a priori)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경험에 논리적으로 선행한다는 것입니다. 직관의 행운으로 포착한 '감각 덩어리'에 선천적으로 주어진 우리의 '12가지 범주'를 통해 실질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는 세계를 비로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칸트는 그런 의미에서 관념론자입니다. 하지만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합니다. 직접 인식할 수는 없지만 '사물 자체(Ding an sich, thing-in-itself)'가 어쨌거나 존재는 해야 우리가 직관으로 캐치를 하든 말든 하는 것이고 실제로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에 칸트는 그런 의미에서 실재론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칸트는 유물론자가 아닙니다. 헤겔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과학적 유물론이 등장했을 때,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의식'의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그저 주어진 것으로 취급하는 한계를 지녔습니다. '경험'을 통해 인간이 사물에 대한 '의미'를 갖고 '사고'하는 일련의 '의식 활동'은 당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연 현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칸트는 이들의 등장 이전에 이들이 난관에 봉착한 문제에 대해 이미 해답을 주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진 범주들'이 인식의 본질이고, 인간의 인식이 인간의 지적 세계의 경계라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사물 자체'를 독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 전제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간의 의식마저 환원해 설명하려고 하는 유물론은 뿌리부터 틀렸던 것입니다.
한편 칸트는 헤겔주의적 의미의 객관적 관념론자가 아니기도 합니다. 그는 이성은 인간의 인식 활동에 작용하는 톱니바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봤지, 그것이 만물의 질서라거나 세계 그 자체라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칸트의 인식론 체계 안에서 인간은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만일 그런 것을 논한다면, 그건 경험에서 비롯된 논의들이 아니기 때문에 인식 활동이라기보다는 창작 활동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칸트가 가진 '경험적 실재론'적 측면이 주는 교훈을 망각한 철학적 태도일 것입니다.
신칸트주의자들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습니다. 1804년 칸트가 사망한 후 60년이 넘도록 독일에 칸트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파가 없다가, 1860년대에 들어 헤겔주의의 관념론이 쇠퇴하고 유물론이 부상하면서 관념론-유물론 간의 논쟁이 격화되던 시점에 신칸트주의가 시작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신칸트주의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헤르만 코헨(Hermann Cohen, 1842~1918년)이 ≪칸트의 경험 이론(Kants Theorie der Erfahrung)≫을 출간하며 활동한 것도 이 시점입니다. 코헨은 철학적 탐구의 본질은 '사물'로서의 뇌를 과학적으로 관찰하는 것도, 정신의 필연적 전개에 대한 초월적 연역도 아니라고 봤습니다. 칸트주의의 전통을 잇는 차원에서 그는 모든 인식과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규칙들을 설명하는 것이 철학적 탐구의 본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바로 앞으로 살펴볼 신칸트주의자를 자처하거나 그 영향을 받은 법철학자들에게서 뚜렷하게 관찰될 것이기에 유념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담으로 코헨은 또 참 여러 명의 동명이인들이 있습니다. G. A. 코헨 (Gerald Allan Cohen, 1941~2009년)은 분석마르크스주의자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현대 분석철학적 방법으로 재구성하려 시도한 인물입니다. 조슈아 코헨 (Joshua Cohen, 1951~)은 미국 정치학과 내 정치사상 수업 교과서의 바이블로 언급되는 ≪정치와 비전(Vision and Politics)≫을 저술한 인물로 존 롤스의 이론을 계승하고 있는 현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자입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사람으로 헷갈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근대의 법철학자 : 슈타믈러
신칸트주의는 마르부르크학파와 바델학파(혹은 남서독일학파)로 나뉘는데 슈타믈러(Rudolf Stam-mler, 1856~1938년)는 마르부르크학파의 학자로 칸트 철학의 취지를 당대 법철학 전통 내에서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법철학에 관해 남긴 저작 중에 특히 의미 있다고 여겨질 만한 것은 ≪정당한 법에 대한 학설(Die Lehre von dem richtigen Rechte)≫, 이른바 '정법론'입니다.
그는 비판적 자기성찰(Kritische Selbstbestimmung)을 강조했는데, 이에 따르면 어떤 대상에 대해 보편타당한 원리를 수립하려 할 때는 그 대상의 순수형식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보편타당한 정당한 법이 무엇인지 따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법의 순수형식을 알아야 합니다. 슈타믈러는 이 법의 순수형식은 우리의 법적 경험에 법의 소재(Stoff)와 함께 뒤섞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가령 미적으로 탁월하게 조각된 대리석 조각상을 떠올려 봅시다. 여기서 대리석이란 소재(Stoff)입니다. 하지만 예술품을 예술품이게끔 만드는 본질적 순수형식 또한 이 대리석 조각상에 '겹쳐져' 있습니다. 이 조각상을 정교하게 고찰하고 분석하여 경험적인 소재(Stoff)를 배제하고, 그것이 없으면 예술품으로 인정할 수 없게 하는 요소만을 찾아 들어간다면 모든 예술품의 구성원리인 미의 순수형식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슈타믈러에게는 법이 그러했습니다. 법에서 사실과 경험의 문제를 완전히 덜어내면, 보편적인 법의 본질이 드러나리라 본 것입니다. 즉 실정법에 관한 탐구와 별개로 '정당한 법에 대한 학설(정법론)'이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슈타믈러가 절대불변하는 자연법의 존재까지 주장했던 것은 아닙니다. 정법론의 개념들은 말 그대로 순수형식적 차원에 있기 때문에 보편타당할 수는 있지만 실질적 내용을 가질 순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칸트의 '12가지 범주'가 감각의 영역인 사물 자체에 대한 정보를 선취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슈타믈러의 정법론은 법철학이라기보다는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는 칸트의 방법이원론 차원에서 정당화가능한 법철학의 조건과 그 논리를 설명한 것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법가치의 영역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탐구의 한계를 형식주의적 차원에 머물게 하여 보편화 가능성 또한 포기하지 않은 법철학의 세계를 우리에게 열어보였다는 점에서 슈타믈러가 여전히 의미있는 법철학자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