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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 입문 : 옐리네크, 법사회학

법철학 입문의 모든 것

by 삼중전공생

근대의 법철학자 : 옐리네크


옐리네크(Georg Jellinek, 1851~1911년)는 신칸트주의 중 남서독일학파의 영향 아래 사실과 규범을 엄격하게 구분하며 '국가'라는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런 그가 보기에 국가는 사실적 차원에서는 사회적 조직체이지만, 규범적 차원에서는 법적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자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을 사회적 국가학(Soziale Staatslehre)으로, 후자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을 국법학(Staatsrechtslehre)으로 구분했고, 이 중 독일국법학을 연구하여 끝내 완성시키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옐리네크과 관련해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은 '사실적인 것의 규범력(Normative Kraft des Faktischen)'일 것입니다. 5·18 사건에서 검찰이 신군부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리면서 사실상 이 개념을 원용하여 정당화 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적인 것의 규범력' 개념은 오스틴류의 실력설적 법실증주와 비슷한 맥락인 것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하지만 옐리네크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소 오해의 소치일 수 있습니다. 옐리네크가 국민주권론이 아닌 국가주권론을 주장하기는 했습니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 그 자체에 있고, 모든 권리와 의무의 최종적인 원천은 국가라는 것입니다. 국민은 이러한 국가의 '지배'를 받는 객체로서 이 지배만으로 완성된 '사실'을 만들어 내고, 이 사실이 국민들의 습관적 행동에 의해 '승인'된다면 그것은 성립과정이나 내용상의 옳고 그름을 따질 것 없이 규범적 효력을 가진다는 것이 옐리네크의 이론입니다.


이는 언뜻 보면 소위 '악법도 법이다'를 외치는 평범하고도 얄팍한 법실증주의인 것 같지만, 그렇게 여기기 전에 옐리네크의 이론에서 이 '승인'이 차지하는 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옐리네크를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 사실적인 것이 규범력을 가질 수는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민들의 '승인'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나회를 통해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것과 같이 아무리 '사실적인 것'이 현실적으로 강력하게 자리 잡았다고 할지라도, 국민들이 그것을 '의식적으로 거부'한다면 그때에는 사실은 그저 사실로서, 옐리네크를 좇는다고 할지라도 과거의 검찰처럼 곧바로 규범력이 생긴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법규범은 도덕규범, 종교규범, 관습규범 등과 적어도 내용상으로는 같을 수 있습니다. 이들도 수범자의 '승인'을 통해 실질적인 효력을 갖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그 승인의 대상은 우연히 동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규범은 국가가 가진 '실력'에 의해 강제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여하간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표어로 강조되는 옐리네크의 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한 유명한 입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편 옐리네크는 현대의 국민주권론과 조화된다고 보기는 어렵겠으나 그럼에도 언급하고 넘어갈 만큼의 의의가 있는 헌법학에 대한 업적도 남겼습니다. 그는 법철학에 관한 그의 주저인 ≪일반 국가학(Allgemeine Staatslehre)≫에서 국가는 원칙적으로 그 자신의 주권을 제한할 필요는 없으나, 도덕적·정책적 이유로 스스로를 법규(Rechtssatz)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국가의 자기제한설입니다.


이 맥락과 관련해서 옐리네크는 헌법상 기본권을 '주관적 공권'으로 이해했습니다. 그의 지위이론에 따르면 국민은 국가에 대해 의무를 부담하는 수동적 지위와 국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능동적 지위, 국가의 부작위를 요구하는 소극적 지위와 국가의 작위를 요구하는 적극적 지위를 갖는데 능동적 지위로부터 참정권이, 소극적 지위로부터 자유권이, 적극적 지위로부터 수익권이 도출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국가의 '자기 제한'의 반사 이익의 형태로서 보장되는 국민의 지위와 그에 따른 기본권들은 각 국민 개인으로서의 당사자에게 귀속된다는 점에서 주관적이고, 사인 간 효력이 없이 오직 국가에 대해 갖는 권리라는 점에서 공권(公權)이 됩니다. 현대에는 국민주권론을 강조하는 취지에서 기본권에 대한 이해가 다소 변화되었기 때문에 옐리네크의 주관적 공권론이 여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유효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국민과 국가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후대 학자들의 연구의 밑바탕을 제공했다는 점은 법철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근대의 사회과학 : 법사회학


19세기말 당시 법철학계의 주류였던 개념법학 혹은 일반법학(옐리네크 등의 국법학을 포함)에 대한 반발은 예링의 목적법학(이후 이익법학으로 발전)과 함께 자유법론의 등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자유법론은 개념법학이 전제한 '법의 무흠결성'이란 허구임을 지적하며 법관에 의한 법창조를 인정하는 등 법관의 광범위한 재량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법의 흠결을 보충하기 위해 법관에게 재량이 허용되어야 함은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우에도 법관에게 '무제한적인' 자유를 허용할 수는 없어 보인다는 점이 당시 자유법론자들의 난점이었습니다.


이에 자유법론자들은 법관의 양심 등을 넘어 '객관적인' 판결의 가이드라인을 찾고자 시도하였고, 곧 법적 현실에서 법적 분쟁을 해결함에 있어서의 한계를 찾아야 한다는 아이디어에 도달했습니다. 즉 법관의 재량은 사회학적 연구 성과로 드러난 법사실(Tatsachen des Rechts)에 토대하여 그 한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를리히(Eugen Ehrlich, 1862~1922년)를 비롯한 당대 자유법론자들 중 일부가 법사회학의 시초를 여는 시류에 동참하게 된 배경 중 하나입니다.


당시 법사회학의 연구 성과들을 이 지면에서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법철학'을 소개하는 본 연재의 취지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법사회학의 연구 방향이 대략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만큼만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우선 법사회학자들은 대체로 법을 '사회적 연대(solidarité sociale)의 산물 혹은 기제'라고 파악합니다. 도덕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자연스레 규칙을 만들고 발전시킨 결과로 탄생한 것이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법사회학자이자 공법학자인 뒤귀(Léon Duguit, 1859~1928년)는 옐리네크가 완성한 국법학의 국가주권론과 국가의 자기제한설에 반대합니다. 국가는 공동생활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연대를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 목적과 무관하게 국가가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국가 주권 개념은 허구라는 것입니다. 또 이 사회적 연대를 지키고 증진하는 수단으로써의 법은 필요에 따라 피치자뿐만 아니라 통치자와 국가까지 구속할 수 있는 것으로서 법규를 국가의 자기제한이라는 맥락에서 보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외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년) 등이 전개한 법사회학적 연구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보다 상세한 내용은 차후 기회가 되면 다뤄보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법사회학이 발전되어 왔지만, 자연법론자들의 소망과 달리 법사회학도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으로서, 법 또한 사회 현상으로서 파악하고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려는 학문임을 상기한다면 이들은 '사실에서 당위'를 도출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볼 여지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A라는 행동을 한다'라는 사실을 사회학적으로 밝혀낸다고 한들, 그것이 법정에서 '사람이라면 A를 해야 한다'는 당위로 바뀔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제가 과거에 쓴 이 게시글에서 비교적 잘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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