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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은 이제 한국을 자극할 수 없게 되었나

일본은 한국이 필요하다

by 삼중전공생

현재 상황 : 일본 정치권의 한일관계는 상하관계라는 인식이 깨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 사회에서 한국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2003년 '겨울연가'가 히트를 치긴 했지만 중장년 여성에 한해서 인기가 많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언론에 노출되는 한국이란 '이웃이긴 하지만 거리감 느껴지는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과거사 문제 등으로도 복잡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일본 정치권에서도 한국을 바라보는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나 아베 총리가 서슴지 않고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일본 정치인들이 "한국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국가", "만만한 국가"라는 인식이 저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국을 도발하더라도 지지받을지언정 국내에서 구설수에 오를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베 총리가 2019년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배제'라는 수출 통제 방식으로 압박했다는 사실은 이런 일본 정치권 내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일본은 한국보다 우위에 있고, 일본이 가진 경제력으로 한국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자각이 없으면 이런 수출 통제 카드는 꺼내지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진 일은 일본이 상황의 변화를 구조적으로 오판하고 있었음을 명백히 드러냈습니다. 한국은 일본의 경제적 압박을 극복하고 자체적인 기술력을 키우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치권이 한일관계를 상하관계로 인식했던 것과 달리, 현실은 한국의 산업력과 기술력이 일본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지난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한국을 얕잡아 보는 인식을 완전히 무색하게 만들 만큼 전격적이었습니다. 2020년대 들어 원래도 2010년대부터 차츰 인기을 얻어가던 K-POP에 더해 K-드라마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식문화를 비롯한 한국 전반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이 널리 퍼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제 일본 정치권은 2019년 수출 통제 이전과 비교해 한일관계 인식에 관해 다음 두 가지 다른 점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1) 한국은 경제력, 산업력 등 하드파워에서 일본이 굴복시킬 수 없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2) 한국이 가진 소프트파워가 일본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 탓에 한국을 함부로 도발하기엔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게 되었습니다.


즉 2019년 이전까지 일본 정치인들이 한일관계를 상하관계로 인식했던 것과 달리, 이제 일본은 한국을 동등한 관계로 인식하기를 강요받게 된 것입니다.




트럼프의 등장, 일본은 한국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일본의 언론과 정치권 등 사회 지도층의 한국에 대한 담론도 변화시키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전략적 우위나 결정적인 레버리지를 갖고 있지 않음이 명백해졌고, 한국의 국력 또한 동북아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이 한국의 존재를 일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일본에게 이득이 될지 다시 계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게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며 대중국 견제에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맡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이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본은 한국과 이 대중국 견제라는 부담을 '공동분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방위비 인상은 평화 헌법 제정 이래로 일본 사회에서 늘 논란이 많은 부담스러운 사안이었고, 일본 혼자서 중국의 대양 활동을 견제하기도 능력적으로 버겁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일본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사항은 이른바 대중국 견제에서 '독박'을 쓰는 것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한국을 동북아의 주요 플레이어로 간주하지도 않았겠지만, 일본의 주요 언론에서 한국의 계엄령 사태를 보도하면서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일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조로 기사를 싣는 것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 관심과 걱정이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걱정이라기보다는 일본의 '독박 중국 견제'에 대한 걱정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게 냉정한 현실 인식일 것입니다.


여하간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이 준 '대중국 견제' 미션을 '독박'쓰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한일관계를 긍정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킬 중요성이 커진 것입니다. 윤석열 정권의 대일외교가 굴종적이었단 비판이 있는 것과 별개로 일본 정치권 내에서 한국을 자극하는 망언이 부쩍 줄어든 것도 이런 필요가 작용한 영향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국은 일본의 요구에 부응할 것인가


그럼 이제 공은 한국으로 넘어갑니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요구에 부응해 일본과 대중국 견제 전선을 지탱하는데 협조할까요? 보수 정권이라면 윤석열 정부 때처럼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하지만 진보 정권이라면 어떨까요? 진보 정권의 지지자들은 한일 간의 안보적 협력이 강화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까요?


이제까지의 상황을 그대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그럴 것 같진 않습니다. 한미일 삼각공조에서 핵심은 미일동맹이고, 한국은 들러리로 권리 없이 의무만 잔뜩 짊어진다는 것이 진보 진영 인사와 지지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따라서 보수 정권 때만큼 한일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설 개연성은 적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19년을 기점으로 시대가 바뀐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이 달라졌습니다.


(1) 중국의 군사적 부상과 민족주의적 국내 압력이 커졌다 : 시진핑 정권에 들어 전개되어 온 중국의 '전랑 외교'는 중국의 공격적이고 대국의 힘을 과시하는 외교 화법을 지칭합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협상을 파투내거나 상대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어렵게 만든다는 면에서 외교적으로는 좋은 수단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외교 방식을 사용하는 건 "아편전쟁으로 상징되는 굴욕의 세기를 넘어 부흥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중국의 민족주의적 서사를 외부적으로 실현해 국내에서 시진핑 정권에 대한 지지를 높이고 다지는데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관세로 인한 무역 전쟁과 기타 중국의 내부 사정 때문에 현재 중국의 경제가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난 세기 동안 중국 공산당이 인민 대중을 억압적으로 관리해 왔음에도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건 폭발적인 경제 성장에 있었다는 게 중론인데, 이 경제 성장 동력이 꺼지면서 중국 공산당의 체제 유지에도 빨간불이 켜지게 되었습니다. 즉 시진핑 정권은 불안정한 국내 상황을 단속하기 위해 민족주의적 프로파간다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 줄어든 전랑 외교 또한 재현되거나 강화될 개연성이 없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의 진보 진영이라고 할지라도 꽤나 의미 있는 자극이 될 것입니다. 중국이 가만히 있는 한국에게 시비를 걸진 않겠으나, 특정한 사건이 트리거가 되어 중국이 한국을 공격적으로 몰아세우는 일이 생긴다면 한국에서도 정치인들의 친중 행보가 곱게 보일 리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진보 정권이라고 해도 일본과의 안보 협력에 전향적으로 나서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2) 일본은 한국을 타일러야 할 입장이 됐다 : 이전에는 애당초 일본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지도 않았지만 설령 있더라도 일본이 한국을 조종할 수 있는 레버리지가 많았고, 적어도 2019년까지는 일본 정치인들은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선 지금은 일본 정치권에서 한국을 '일본의 아래'에 있는 국가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팔목을 비틀 힘이 없고, 한국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오직 말로 잘 타일러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일본이 '독박 중국 견제'를 피하고 싶어 하는 정도만큼의 레버리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일본의 대중국 견제 부담을 일정하게 덜어주는 대가로 일본에게 반대급부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얻어낼 그 무언가가 한국이 대중국 견제 전선에 동참함으로써 잃는 것보다 작지 않다면 진보 정권이라고 할지라도 한일 안보 협력을 무조건 배척하진 않을 수 있습니다.


또 오직 말로 타일러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한일 안보 협력이 개시되거나 지속되는 동안에는 일본도 한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기를 자제할 것입니다. 물론 일본 사회에서 여전히 우익이 끼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그 수준이 한국 국민들이 납득가능한 수준으로 '자제'되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것은 일본이 한일 안보 협력의 틀을 깨지 않고 상황을 관리 가능한 수준에 머무르게 만들고자 할 의지가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는 진보 정권 입장에서도 한일관계를 2019년 이전과 같은 구조 속에서 파악하게 만들지는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점들 때문에 저는 보수 정권에서 뿐만 아니라 진보 정권에서도 한일 안보 협력을 지속시키는 구조적 압력이 작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 한일협력은 구조적 필연이다


한일협력은 결국 미중패권 경쟁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미중패권 경쟁은 그 누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닙니다. 이 통제할 할 수 없는 변수인 미중패권 경쟁이 중국 내 민족주의 감수성 고취를, 그것이 중국의 전랑 외교 재현을, 그것이 한국을 일본과의 안보 협력에 더욱 몰아넣을 개연성이 제가 보기엔 충분히 존재합니다. 결국 이런 프레임 속에서 보면 한일 안보 협력은 필연이라고 보아집니다.


그리고 그 한일 안보 협력이 꼭 한국에게 불이익이 될 지도 되돌아봐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이 한반도에만 머무르지 않는 대가로 일본에게 유익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면 한일협력은 의외로 지속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특히 2019년 이후 한일관계가 상하관계에서 대등한 관계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이 한일 안보 협력이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생길 개연성도 줄어들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이전에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안보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한다면 트럼프 시대의 동북아에서는, 일본도 한국을 그리고 한국도 일본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릅니다. 두 국가가 서로에게 이득을 줄 수 있다면 각자가 적절한 양보를 통해서 발전적인 양국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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