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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는 중국 경제를 침몰시킬까

트럼프의 관세는 결국 대만을 향한다

by 삼중전공생

현재 상황 : 디플레이션의 기로에 선 중국


지난 3월 말 이후부터 미-중 무역로의 일일 컨테이너 예약 건수가 전년 대비 4분의 1로 감소했습니다. 관세 효과가 본격적으로 실현되기 이전이지만 이미 무역업계에서는 그 여파가 드러난 것입니다. 수입업자들이 관세 부과를 예상하고 수입을 중단하거나 항만 등 창고에 재고로 박아두고 있기 때문인데, 관세가 지속된다면 이 파도가 제조업이나 고용 시장에도 들이닥치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미국의 상황이 이런데, 중국은 어떨까요? 중국도 수출 활로가 막혀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과잉생산된 상품들이 내수 경기로 흘러들어와 넘쳐나고 있는 데다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의 여파로 소비 심리도 좋지 않기 때문에 뚜렷한 디플레이션 신호가 감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의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5% 하락했는데, 이는 2월의 2.2% 하락과 경제학자들의 예상치인 2.3% 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디플레이션에 빠졌다는 것은 물가가 하락한다는 의미입니다. 물가가 하락하면 사람들은 앞으로도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해 소비를 줄입니다. 그렇게 소비가 줄어드는 한편 하락하는 시장 가격에 생산 단가를 맞추지 못하는 기업들이 차례대로 도산하기 때문에 임금이 줄거나 실업률이 올라갑니다. 서로 두 요인이 맞물려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줄이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게 디플레이션이 위험한 까닭입니다. 중국은 지금 이 디플레이션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중국 경제가 살아나려면 중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출처 : China’s 40-Year Boom Is Over. What Comes Next? | WSJ


미국이 매긴 관세로 인한 충격을 경제가 받아내기 위해서는 내수 경기 진작이 필요합니다. 이건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GDP에서 가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국가에 비해서 현저히 작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중국인들이 소비보다는 저축을 훨씬 더 많이 선호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저축 유인을 낮추고 자금 흐름을 소비로 돌릴 수만 있다면 내수 경기 부양이 미국의 관세 충격을 어느 정도 상쇄할 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꺼내볼 수 있는 정책은 복지 프로그램 강화입니다. 중국인들이 소비보다 저축을 선호하는 데는 중국의 부족한 사회 안전망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국민건강보험이나 실업급여 등의 제도를 손보고 과감하게 지원하면 중국인들의 저축을 소비로 돌리는데 주요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금리 인하도 디플레이션을 막는 정공법 중 하나입니다. 금리 인하를 통해 저축 유인을 낮추면 자연히 시장에 돈이 풀리게 됩니다. 지급준비율 인하나 양적 완화를 통한 통화량 증대도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통화량이 늘어나면 통화 가치가 떨어져서 자연히 물가도 오르게 되고, 환율이 올라가 수출 시장에 활로가 생길 여지도 커집니다. 하지만 문제는, 상황이 이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중국 경제가 살아나기 어려운 이유


중국 경제는 지금까지 부동산 경기 호황과 막대한 무역흑자로 굴러왔습니다. 이 중 부동산은 관련 산업을 포함할 경우 중국 GDP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큰데, 2022년 부동산 관련 투자증가율은 줄곧 전년 동기대비 마이너스를 찍어 왔습니다. 1990년 중국 정부의 시장 자유화 이후부터 성장한 중국의 부동산 시장은 국영은행의 의도적인 저금리 정책과 건설 경기 부양 정책에 힘입어 2016년을 기점으로 버블이 끼기 시작했는데, 중국 정부가 2021년부터 과도한 레버리지를 가진 개발업체의 신규 대출을 제한하기 시작하면서 부실기업들과 지방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맞은 탓입니다. 중국인들은 자산의 78%가 부동산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이 부동산 경기의 침체는 가계 소비 부진의 원인이 됩니다.


결국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가계 소비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부동산 시장에 다시금 버블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2018년 기준 중국 도시 지역의 아파트 중 5분의 1, 즉 1억 3천만 가구가 이미 공실이고 이용객이 없어 운용유지비를 대기도 어려운 공항과 고속철도도 많습니다. 중국 정부가 현재 부동산 경기 부양을 시도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경제학적으로는 이제 중국은 지난 20년 간의 호황과 달리 더 이상 부동산 산업으로 경제를 부양시킬 수는 없는 국면에 봉착했습니다.


그렇다면 소비 촉진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입니다. 당장 손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 가령 대규모 재정적자를 운용하며 '현금 살포' 정책을 실시하는 것도 중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는 이미 미국을 넘어선 수준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건강보험이나 실업급여 같은 소비 진작 복지 프로그램 확충도 마찬가지로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 : China’s 40-Year Boom Is Over. What Comes Next? | WSJ


중국의 기준 금리에 해당하는 LPR(Loan Prime Rate)을 인하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가능하겠지만 말 그대로 부분적입니다. 이미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LPR을 인하해 왔기 때문입니다. 현재 1년 만기 LPR은 3.1%, 5년 만기 LPR은 3.6%로 역사적으로 낮은 수치입니다. 때문에 이 이상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한다고 하더라도 의도한 정책효과가 충분히 발휘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출처 : https://news.nate.com/view/20240723n00084


지급준비율 인하나 양적 완화를 통해 통화량을 불려서 자산 가격을 부양해 부동산 침체를 막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위안화를 기축 통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런 식으로 정부의 정책 목표에 따라 환율이 널뛰기를 한다면 위안화에 대한 신뢰를 만들기 어려울 것입니다. 금리가 내려가고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자본유출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자본유출은 외화 차입 비용을 늘려 안 그래도 부동산 부실 채권을 떠안고 있어 불안한 중국의 금융시장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중국 정부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습니다. 부동산 시장은 구조적인 침체기를 맞아 가계 소비의 발목을 붙잡고 있고, 이에 맞서 공격적인 총수요 부양 정책을 쓰자니 정부부채가 부담스럽고, 금리나 지준율 인하도 모두 여러 번 써먹은 수단으로 약발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니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아 보입니다.




결론 : 향후 미중패권 갈등의 방향은?


중국이 미국의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수 경기를 진작하고 소비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경제학자들이 지적함에도, 시진핑은 국내 경제 문제보다 미중패권 갈등에 더 관심을 많이 갖는 모양새입니다. 총수요 증진을 위한 재정정책보다는 첨단 기술 개발 투자에 정부의 한정된 예산을 더 집중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관세로 인해 이제까지 중국이 겪어본 적 없는 경기 침체가 예상되지만 미중패권 갈등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입니다.


경기가 악화되고 있는데 정부가 뾰족한 대책이 없다면, 중국 내부에서 정권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지 않을까요? 그럴 수는 있습니다. 2024년 8월 기준 16~24세 청년 실업률은 18.8%였습니다. 중국 정부의 통계가 일반적으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심각한 수치입니다. 이렇게 높은 청년 실업률은 사회 불안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중국 정부는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다양한 첨단 기술을 이용해 사회 통제를 극도로 강화해 왔습니다. 이런 방식의 통제가 효율적이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과 별개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번질 가능성은 적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시진핑 정권이 사회 통제 강화만을 수단으로 통치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시진핑은 이미 임기 내내 민족주의 고취를 내부 결속을 다지고 지지 기반을 만드는데 활용해 왔습니다. 만일 시진핑이 불황으로 인해 증가한 내부의 사회 불만을 '외부의 적'에 전치시키는 방식으로 해소시키고자 한다면, 시진핑 주석이 연임하는 동안에는 양안갈등이나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중국이 평화적으로 양보할 수 있는 여지는 더욱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시진핑이 트럼프의 관세 위협에 맞관세와 핵심광물 수출통제로 대응하며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일 수 있습니다. 먼저 숙이고 들어가 평화롭게 타협해 실리를 챙기고 싶어도, 정권의 기반이 민족주의 강경파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요약하자면 미국의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는 중국 경제를 큰 침체기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로 인해 중국 내 사회 불만이 고조될 것이고, 시진핑 주석은 이 사회 불만을 외부로 전치시킬 방법을 궁리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로 인해 가장 위험해질 지역은 다름 아닌 대만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클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이 성공적으로 경제 정책을 잘 수립해서 디플레이션을 극복한다면 상황은 관리가능한 수준에 머물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고 말해둬야겠습니다.




참고 문헌


China to set up national venture capital guidance fund, state planner says | Reuters

China seen leading in chipmaking investment again in 2025, SEMI group says | Reuters

China’s 40-Year Boom Is Over. What Comes Next? | WSJ

Xi Jinping’s Ideological Ambition Challenges China’s Economic Prospects | WSJ

China’s Surveillance State Pushes Deeper Into Citizens’ Lives | WSJ

Trump’s Trade Broadside Puts Chinese Economy Under Heavy Pressure | WSJ

China Says It Started Year on Strong Economic Footing as Trump Tariffs Hit | WSJ

The Folly of China’s Real-Estate Boom Was Easy to See, but No One Wanted to Stop It | WSJ

China Expands Consumer Subsidies to Boost Spending as Tariff Risk Looms | WSJ

The U.S. and China Are Going to Economic War—and Everyone Will Suffer | WSJ

China’s Consumer Prices Continue to Signal Weakness | W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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