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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채는 어떻게 트럼프의 관세 폭주를 막았나

달러 패권마저 흔든 관세

by 삼중전공생

현재 상황


트럼프가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 대해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간 유예했습니다. 이에 따라 연일 대폭락을 계속하던 세계 증시는 급반전하여 기록적인 랠리를 이어갔습니다. 각각 미 증시 3대 지수인 다우존스는 7.87%, S&P 500은 9.52%, 나스닥은 12.16% 급등했는데, 모두들 사상 손에 꼽을 수준의 반등이었습니다.


이에 재무장관 베센트는 "이건 처음부터 트럼프의 전략이었다(This was his strategy all along.)"는 너스레를 떨었는데, 미국 증시 1경원을 공중분해시키는 것도 전략의 일환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만약 그것도 관세 부과국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는 전략의 일부였다면, 이미 트럼프가 미친 사람이라는 건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는데 그걸 또 1경원씩이나 써가면서 주지 시키는 게 진심으로 성공적이고 멋진 전략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록적인 반등이 있었다고 해도, 트럼프 취임 전 6000선이었던 S&P 500을 아직 다 만회한 것도 아닙니다. 2월 말부터 자동차 관세로 실랑이를 벌이며 주가를 깎아먹다가 4월 2일 '해방의 날'에 상호관세 폭탄까지 발표하면서 4900선까지 끌어내린 것을 '90일 간 유예' 선언 뒤 5400선으로 잠깐 회복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이걸 보고 전략이라고 으스대는 꼴은, 젠가 할 때 괜히 위험한 블록 건드렸다가 탑을 무너뜨릴 뻔하자 당황하고 급히 제자리에 다시 꽂아 넣은 걸 '사실 다 전략이었어~'라고 변명하는 것만큼이나 추한 몰골입니다.




미국 국채가 흔들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길래 트럼프의 관세 폭주를 막을 수 있었나


트럼프는 미국 국채 가격 하락에 충격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국채란 뭔가요? 말 그대로 '미국이 망하지 않는 한 따박따박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을 돈'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미 국채는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 하에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아 왔고, 일시적인 경제 위기로 주식 시장이 폭락하더라도 안전 자산인 채권 가격은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벌어진 일은 주식 시장 폭락에 더불어 미 국채 가격까지 하락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이 말은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명제에 시장이 물음표를 찍었다는 말입니다. 왜 물음표를 찍었을까요?


세계 무역이 달러로 이뤄지고 달러화 표시 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 있는 가장 근본적인 까닭은 '달러라면 휴지조각이 되지 않으리라'는 시장의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빚을 좀 지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면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경제는 개방적이고 건실한 시스템에 의해 탄탄하게 지지되고 있고 그 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며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계량적인 데이터로도 입증이 됩니다. 5년 정도의 중장기를 기준으로 할 때, 미국과 유럽 기업의 자기자본이익율(ROE) 차이는 달러-유로 환율과 70%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즉 달러 수요는 미국 기업이 돈을 잘 버는 것(ROE가 높은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고, 이 의미를 확장하면 달러 수요란 결국 미국의 생산성, 자본 수익률, 기업 경쟁력과 같은 구조적 요인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과 신뢰에 근거하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걸 반대로 보자면 주식 시장 폭락과 동시에 미국 국채 가격까지 떨어졌다는 것, 그래서 투자자들이 아예 달러를 털고 대체 투자처를 찾아 미국을 떠나 결과적으로 약달러가 초래되었다는 것은 이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관세가 미국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으리라는 우려가 주식 시장과 함께 채권 시장까지 날려버린 것입니다.


왜 시장은 트럼프의 관세가 미국의 기업들의 경쟁력을 저해하리라고 봤을까요? 그건 제가 다른 게시글에서도 다뤘다시피 트럼프가 부과한 '상호관세'란 터무니없이 황당한 근거로 무작스럽게 계산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의 관세는 미국의 전략 산업을 육성하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고, 미국 제조업 기업의 리쇼어링에도 페널티를 주며, 공급망을 오히려 교란하는 효과만 낳을 것이 명백했습니다.


자동차 산업만 해도 그렇습니다. 엔진이나 배터리 같은 전략 물자는 미국에서 생산하면 좋겠지만, 쿠션이나 자동차 창문까지 인건비가 비싼 미국 땅에서 생산할 이유는 전혀 없는데도 트럼프는 포괄적으로 모든 상품에 관세를 때려버렸습니다. 이는 미국 자동차 업체의 수익률을 크게 악화할 것이 뻔한 조치였습니다. 보호무역주의가 미국 기업들이 혁신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려는 동기를 줄이고 국내 시장에 안주하며 세계 시장의 경쟁에서 도태되도록 만든다는 교과서적인 설명도 빼놓기는 아쉽겠습니다.


결국 정리하자면 트럼프가 관세를 물릴 수밖에 없고 또 물려야만 했던 이유는, 관세가 극악히 무식하게 부과되어 달러 패권의 근간인 미국의 경제 잠재력을 부식시킬 우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의 공식을 깨고 주가 폭락에도 불구하고 국채 가격까지 하락하게 된 것입니다. 트럼프는 자신이 부과한 관세가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인지는 몰랐겠지만, 미 국채가 흔들리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는 알았고 또 외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


트럼프를 대단한 전략적 협상가처럼 부풀려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보 같아 보이는 짓에도 이면에는 천재적인 지략과 심오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건데,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트럼프는 한 마디로 정의됩니다. '아마추어' 딱 한 단어 말입니다. 도무지 그 어떤 일에서도 전문성을 찾아볼 수가 없고 주먹구구식에 즉흥적으로 일처리를 해서 망치는 일이 태반입니다. 이번 관세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게 미국 경제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될 거라는 걸 장기미국채 가격이 떨어지는 걸 꼭 눈으로 봐야만 알 수 있습니까?


트럼프가 일단 막대한 상호관세를 예고하고 그걸 레버리지로 삼아 다른 나라들과 협상을 시도하려 했다는 설명도 어색합니다. 그럴 것 같으면 말 그대로 '예고'만 하면 되지 실제로 관세를 발효시킨 뒤에 주가와 채권을 날려버리고 90일 간 유예를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증권시장이 출렁이는 건 미국 경제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트럼프 본인 지지율에도 손해입니다. 트럼프가 진짜 전략가였다면 다른 신중한 방법을 놔두고 구태여 미국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손해가 되는 일을 했겠습니까? 트럼프를 섣불리 고평가 하는 건 현명한 판단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Why Trump Blinked on Tariffs Just Hours After They Went Into Effect | WSJ

Trump’s Tariffs Were Supposed to Boost the Dollar. Why the Opposite Happened. | WSJ

The WSJ Dollar Index Falls 0.3% to 99.13 | W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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