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가 국가적 자해인 이유
트럼프,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전세계에 관세 폭탄을 던지다
4월 2일, 트럼프가 예고했던 새로운 관세 정책이 드디어 발표되었습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내용은 역시나 충격적이었습니다. 4월 5일부터 미국에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거기다 약 60여의 교역국에는 그보다 높은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를 4월 9일부터 부과한다는 계획인데, 한국도 이 교역국에 포함되어 한국 기업들은 이제 미국 수출시에 25%의 관세 부담을 지게 되었습니다. 일본 24%, EU 20% 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그런데 '상호 관세'라니 이상하죠. 상호 관세란 상대국이 자국산 상품에 관세를 매긴 것에 대한 맞대응으로 매기는 관세를 말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한미 FTA 이후로 대부분의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매긴 적이 없었습니다. 트럼프가 내세우는 논리는 이겁니다.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비관세 무역장벽'을 활용하여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으니, 미국은 그 '비관세 무역장벽'이 끼치는 영향을 추산해서 그에 상응하는 진짜 관세를 매겨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비관세 무역장벽'을 대체 어떻게 추산했다는 걸까요?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율(reciprocal tariff rate)'이라는 표현을 자주 써왔는데, 이번 관세도 바로 이 '상호관세율'에 비례하여 책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웃기게도, 이 상호관세율이란 단순히 상대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한 미국의 무역적자를 미국의 그 상대국에 대한 수출액으로 나눈 것이라고 합니다. 말이 좀 복잡한데, 수식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수학을 좀 한다면 이게 말도 안되는 황당한 수식이라는 걸 눈치챌 겁니다. 무역적자란 이미 (수출액 - 수입액)을 말하는 것인데, 거기다 (수출액)을 나눈다니요. 계산하자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상호관세율'이 클수록 문제라는 건 실상을 따져보면 그저 단순히 상대국이 미국에게 수출을 많이 하거나 미국이 그 상대국으로부터 수입을 많이 하면 문제라는 겁니다. 따라서 트럼프가 말하는 "공정한 무역"이란, 그냥 다른 모든 나라들은 미국 제품을 잔뜩 사가면서도 미국인들은 다른 모든 나라들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 것에 불과합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공정한 무역"이 가능하려면 미국인과 세계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건이 미국 어디선가 무한정 샘솟아 나와야만 합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도깨비 방망이를 숨겨둔 게 아니라면 이게 가능한 얘기입니까? 이건 국제경제나 무역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도 없는 괴이한 주장이고, 저학력 지지층을 향한 명백한 정치적 선동입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기막힌 우연의 일치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무언가 좋은 효과를 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검토해봅시다. 이런 '관세 폭탄'은 정말로 트럼프가 죄악시하는 무역적자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그전에 우리는 정말 무역적자가 트럼프가 생각하는 대로 꼭 나쁜 것이기만 한 게 맞는지부터 따져봐야 하겠습니다.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는 뭐가 다른가?
용어 정리부터 하고 갑시다. 트럼프가 적자라서 문제라고 부르짖는 건 '무역수지'입니다. 그런데 경제 뉴스들을 보면 '경상수지'가 적자라서 문제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둘의 차이는 중요할까요? 원래는 중요합니다. 무역수지가 적자면서도 본원소득수지와 이전소득수지가 흑자면 경상수지가 흑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원소득수지는 해외 투자로 얻은 이자, 배당금 혹은 해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근로소득을 합친 것을 말합니다. 이전소득수지는 해외 원조, 국제기구 분담금 등을 의미합니다. 이들에 의해 무역수지의 적자가 상쇄되는 것은 국가 경제 상황에 따라 가능한 일입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일본이 있습니다. 일본은 무역수지가 적자인 경우라도 본원소득수지에서 압도적인 흑자를 내서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하곤 합니다. 2024년 같은 경우도 일본은 29.3조엔으로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는데, 이때에도 본원소득수지 흑자의 공이 컸습니다. 그럼 이 본원소득수지 흑자는 어디서 오느냐, 답은 전설적인 198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에 있습니다. 이때 일본은 흘러 넘치는 돈을 전세계 곳곳에 투자하고 막대한 채권을 쓸어담았는데, 여기서 오는 배당금과 이자가 지금도 엄청납니다. 잃어버린 30년에도 불구하고 엔화가 여전히 기축통화 파워를 갖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무역수지가 재정적자, 저축률, 투자율과 갖는 관계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트럼프가 무역수지 적자를 문제라고 지적하는 건 알겠는데, 저 표에 나와있는 '순수출(Net Exports)'은 뭘까요? 이제 우리는 국민소득 항등식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항등식을 만지다 보면 무역수지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다른 경제 변수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순수출 수식에서 X는 export(수출)이고 M은 import(수입)입니다. 이제 이 국민소득 항등식을 '저축'을 기준으로 바꿔보겠습니다. 우선 양변에 C + G를 빼겠습니다.
그러면 이때 좌변(Y - C - G)은 국민총저축(S)으로 정의됩니다. 즉,
식을 정리하면,
결국 (저축 - 투자) = 무역수지가 됩니다. 그러니 국내의 저축이 투자보다 많으면 무역수지는 흑자, 반대로 저축보다 투자가 많으면 무역수지는 적자가 됩니다. 그럼 이제 무역수지가 재정적자와 갖는 관계를 봅시다. 우선 저축은 민간저축과 정부저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T = 세수, G = 정부지출(재정지출)입니다. 그러니 G가 늘어나서 정부저축이 줄어들면, 총저축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무역수지도 적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게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 가설입니다. 정부의 재정적자(T < G)가 국가 저축을 감소시켜 무역적자(때로는 경상수지 적자)를 확대시킨다, 즉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는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수식을 좀 사용하긴 했지만 결국 단순하게 종합하자면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저축이 줄어들면 무역적자가 발생한다
② 투자가 늘어나면 무역적자가 발생한다
③ 재정지출이 늘어나면 무역적자가 발생한다
경제학이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도 물론 '다른 조건이 모두 고정일 때' 저축, 투자, 재정지출이 늘거나 줄면 무역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수학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리란 것이 이론상 '필연'이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관세가 무역적자 해소에 도움이 안되는 이유
"무역적자는 (수출 < 수입)일 때 생긴다.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쁘다. 그래서 무역적자는 나쁘다."
지금 트럼프가 주장하는 게 이거 아니겠습니까? 산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까 우리는 아래와 같은 항등식을 봤습니다.
여기서 트럼프가 관세를 부과해서 수입(M)을 줄이면 어떻게 될까요? 저축(S)이나 투자(I) 같은 거시경제적 변수는 그대로 놔두고 말입니다. 항등식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우변과 좌변이 같은 값을 갖기 위해서는 수입(M)이 줄어들면 수출(X) 또한 어쩔 수 없이 줄어들어야 합니다. 이론상으로만 그런 거 아니냐고요? 실물경제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납니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은 도깨비 방망이가 없습니다. 무언가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원자재든 중간재든 수입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수입을 관세로 틀어막으면, 수출품을 생산하는 것에도 차질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수출이 줄어들게 되면 무역적자가 해소되긴커녕 전체 교역량만 줄어드는 효과만 낳습니다. 그런데 여기다 보복관세까지 덮치면, 수출은 더욱 쪼그라들 것이고 무역적자가 해소될 여지도 더욱 줄어든다고 봐야겠습니다.
미국 무역적자의 진짜 원인
(1) 낮은 저축율
2022년~2023년 자료를 바탕으로 볼 때, 미국의 GDP 대비 저축률(17.8%)은 독일(29.6%), 일본(24.6%), 한국(32.1%)에 비해 확연히 낮습니다. 아니, 미국은 복지 제도가 엉망인데 저축을 해야 노후나 집안에 큰 일이 생겼을 때가 대비가 되지 않겠냐고요? 상식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미국인들은 저축 보다는 소비를 택하게 됩니다.
일단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금융시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용카드, 모기지, 학자금 대출 등에서 돈을 끌어와 현재 소비에 사용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니 한국처럼 급전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돈을 모아둘 필요가 적은 겁니다. 오히려 미국 자본주의 특유의 소비 장려 문화와 겹쳐 대부분의 가계가 부채를 기반으로 소비 활동을 합니다.
그럼 노후 대비는 어쩌냐고요?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미국 주식 등을 잔뜩 사놓고 노후에는 금융자산과 투자 수익에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한국 같은 '박스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저조한 민간저축율은 당연히 미국의 가계, 기업, 정부의 투자 수요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투자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국은 저축이 남아도는 해외 국가(특히 중국)에서 자본을 유치하게 됩니다. 이런 해외 자본유입은 미국이 국내 저축에만 의존했을 때보다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 그런 풍요 속에서 미국인들의 소비와 수입 수요가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미국의 경우에 낮은 저축율이 무역적자를 발생시키는 매커니즘입니다.
(2) 막대한 재정적자
2024 회계연도 기준으로 미국 정부의 총 지출은 약 6.75조 달러, 총 수입은 약 4.92조 달러로, 약 1.83조 달러의 재정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분야 최강인 일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프에서 드러나디시피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도 이에 따라 지속적으로 상승해왔습니다. 이런 막대한 지출이 '방만한 경영'이라는 비판은 차치하고, 일단 이러한 재정적자 악화는 아까 봤던 항등식에서 추론할 수 있다시피 무역적자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3)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와 기축통화국의 특성
트리핀 딜레마는 기축통화국이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이론입니다. 생각해보면 한 통화가 기축통화가 된다는 것은, 그 통화를 통해 세계 무역, 투자, 부채 상환 등이 이뤄지고 각국이 그 통화를 외환보유고에 축적해 외환시장 개입 시에 활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축통화에 대한 수요는 통화 발행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만약 미국이 무역흑자를 본다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미국에 달러를 주고 미국의 물건들을 사간다는 말이 됩니다. 즉 미국의 무역흑자는 세계의 달러를 흡수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이건 세계가 항상 충분한 양의 달러 유동성을 필요로 하는 현실과 충돌합니다. 즉 세계 경제가 멀쩡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미국이 무역적자를 봐서 세계에 달러가 풀려야만 합니다. 미국이 달러로 다른 나라들의 물건을 사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트리핀 딜레마는 한편 이러한 무역적자는 미국의 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국외 순부채가 증가하면 달러에 대한 신뢰가 저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계속 빚을 내서 우리 물건을 사주는데, 저걸 과연 다 갚을 수 있을까...?' 이런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달러를 던질 것이고 달러 가치가 폭락하면서 미국 경제가 붕괴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논의는 '무역적자의 필연성'에 방점을 찍어봅시다. 미국의 무역적자(정확히는 상품수지 적자)는 미국 제조업의 경쟁 도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세계금융질서의 구조적 요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미국이 세계 다른 나라에 돈을 빌려서 세계의 물건을 달러로 사주며 무역적자를 보고, 세계는 받은 달러로 안전자산인 미국 자산(국채 등)을 매입하며 또 미국에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세계통화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무역적자를 마냥 죄악시할 수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무역적자가 정말로 부담스럽다면, 미국은 국내 저축을 늘리거나 외국 투자를 줄여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경제 성장을 포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외국의 자본유치를 마다할 이유는 없으니, 결국 미국의 무역적자는 민간과 정부를 가리지 않는 저조한 저축율이 본질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겁니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는 자해에 불과하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화를 주도해왔던 미국의 경제학자들과 관료들이 트럼프보다 멍청해서 관세 장벽을 허물고 WTO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중국 같은 신흥개발도상국들이 WTO 체제 하에서 프리라이딩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화 자체를 절단내야 한다는 과격한 결론으로 비약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이 정말로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싶다면 국내 소비를 줄여 민간저축율을 높이고 재정적자를 줄여야 합니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투자 수요를 충족하는 해외 자본을 국내 저축으로 대체해나가야 합니다. 또 통화량을 늘려서 달러화 가치를 하락시켜 환율을 재조정하고, 고의적으로 저환율을 유지하는 일명 '환율조작국'들을 더욱 단속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게 진정으로 미국을 생각하는 건강한 무역적자 해소법입니다.
이제껏 많은 게시글에서 다뤘지만, 트럼프의 관세 난동은 미국 경제를 장단기적으로 파국에 이르게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트럼프 임기 중에는 스태그플레이션 정도로 끝날 지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는 세계통화질서를 교란시키고 금융시스템을 취약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건 미국 하나가 패권을 잃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금융 재앙이 초래될 지도 모르는 심각한 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 올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전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바뀌어 버린 것이 더 많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트럼프가 불러올 세계화 이후의 시대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 속에서, 세계화가 배태한 최고의 성과인 한국 경제는 어디로 흐르게 될까요? 불확실성이 너무나 큰 시기이고, 그 어떤 것도 예단하기 어려운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