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심각한 이란 핵문제
현재 상황 : 관세 전쟁 와중에도 주목받는 이란 핵문제
트럼프는 지난 3월 6일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라흐바르 하메네이에게 "이 문제가 군사적 대결로 가면 끔찍한 일이 될 테니 협상하기를 희망한다(I hope you’re going to negotiate because if we have to go in militarily, it’s going to be a terrible thing.)"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여기서 '이 문제'란 다름 아닌 이란의 핵문제를 말합니다. 그동안 한국 언론은 거의 주목하지 않았지만, 트럼프의 관세 난동 이전부터 이란의 핵문제는 심각한 국제사회 이슈였습니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동안 하마스가 크게 약화되자 2024년부터 이란은 핵무기 연구를 재개하고 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늘려왔는데, IAEA에 따르면 이란은 올해 2월 8일 기준으로 최대 60% 농축 우라늄을 274.8kg이나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024년 5월에 142.1kg을 보유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셈입니다. 이게 심각한 일인 까닭은 우라늄 농축은 직관적인 생각과 달리 고순도에 가까워질수록 쉬워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천연 우라늄에 0.7% 포함된 우라늄-235(U-235)를 원자력발전소 용도인 5%까지 농축하는데는 기술적인 난이도가 높지만, 이를 20~60%까지 높여 중농축 단계로 만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이 60%를 무기급 농축도인 90%까지 높이는 것은 특히나 이란과 같이 고속 회전 원심분리기 기술을 가진 국가에서는 더욱 쉽습니다. IAEA는 이란이 정치적 결단만 내리면 1주일 이내에 원자폭탄 1개에 해당하는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물론 실제로 핵무기를 전력화하기 위해서는 핵탄두 설계, 제조, 미사일 탑재 등의 과정이 더 필요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Foreign Policy(FP)에 기고된 칼럼에서는 이란의 핵무기 전력화가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5개월을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중국의 핵개발사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이란이 3~5주 내에 핵무기를 전력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IAEA에 따르면 순도 60%로 농축된 우라늄 약 42kg이 이론적으로 원자폭탄 1개를 제조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하니,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란은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가 마음만 먹으면 '몇 주 내에(breakout time)' 수십 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핵 보유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란이 핵 보유국이 되면 당연히 문제가 많습니다. 이미 핵 보유국인 이스라엘과의 핵전쟁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안보 보장을 신뢰할 수 없게 된 사우디아라비아도 자체 핵개발을 추진하며 이른바 '핵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버리면 미국은 중동 정세를 자신의 이익에 맞게 관리할 역량을 크게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트럼프가 이란에 지난 3월 서신을 보낸 데에는 그런 맥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4월 1일 이란의 대통령 페제시키안은 핵문제에 관해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공식적으로 거부했습니다. 텔레비전으로 송출한 내각 회의에서 그는 2018년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이란 핵합의(JCPOA)를 파기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이란이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만을 통한 '간접 협상' 방식의 가능성만을 열어두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네타냐후가 트럼프와 회담을 가진 직후인 4월 8일, 트럼프는 12일에 이란과의 고위급 회담이 예정되어있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회담은 2015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성사키신 이란 핵합의(JCPOA)보다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는데, 이는 전형적인 트럼프식 레토릭으로 보입니다. 이란은 오만에서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이 개최될 것이란 사실은 인정하면서, 어디까지나 이 회담은 오만의 중재를 통한 '간접 협상' 방식이 될 것이라고 정정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란 핵협상에서 이스라엘이 처한 입장
지금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내에서 궁지에 몰려있습니다. 네타냐후의 최측근들이 카타르로부터 미국 로비단체를 경유해 후원을 받은 정황이 밝혀진 일명 '카타르게이트' 때문입니다. 카타르는 이란과 함께 하마스를 지지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주도하며 하마스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기반으로 정치를 해온 네타냐후였기에 그의 측근들이 카타르와 내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다 이 의혹과 관련해 네타냐후와 카타르 간의 관계를 조사하던 신 베트(Shin Bet, 모사드와 아만과 함께 이스라엘의 3대 첩보기관)의 국장인 로넨 바르를 네타냐후가 갑작스레 해임까지 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진 상황입니다.
물론 이 스캔들로 네타냐후 내각이 좌초될 정도로 지지율이 휘청이고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유력한 정치적 경쟁자인 간츠가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공격 직후 수립된 전시 내각에서 2024년 6월에 뛰쳐나가 조기 총선을 부르짖던 와중에, 이란과 갈등이 격화되어 이스라엘이 이란의 미사일 세례까지 맞은 것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지지율이 거의 반토막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이스라엘에는 적어도 당장은 네타냐후에 도전할 인물이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나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시민들 약 1,200여명을 학살하고 251명을 납치한 끔찍한 사건의 책임을 추궁하는 여론이 이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거기다 네타냐후는 개인적인 부패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퇴임 이후의 정치적 안전과 생명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즉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종전은 이스라엘의 정치판을 새롭게 짜면서 자신에게는 정치적 위기를, 간츠에게는 정치적 기회를 주는 꼴이 된 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종전 요구는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이미 연정 내 극우 강경파는 이번 기회에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네타냐후가 중도에 타협할 경우 연정을 뛰쳐나가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이 바이든과 트럼프가 중재한 하마스와의 휴전 협정을 깨고 다시 공격에 나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일단 트럼프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장단을 맞춰주긴 했으나, 트럼프가 선거 기간 동안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모든 전쟁이 순식간에 종료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던 걸 떠올려 보면 트럼프도 뒤에서는 썩 유쾌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트럼프가 네타냐후와의 회담 직후 이란과의 고위급 회담이 예정되어 있다고 발표한 것은 이런 맥락 위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극우 강경파는 오랫동안 이란 핵문제의 가장 효과적인 해법은 군사적 타격을 통한 이란의 지하 핵시설 파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트럼프의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법 모색은 이들이 원하는 솔루션도 아니고 네타냐후 정권 지속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 아닙니다. 일단 트럼프가 이란과 대화 무드를 이끄는 동안에는 무력충돌로 긴장을 고조시켜 정국을 주도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네타냐후는 트럼프의 이란과의 고위급 회담 추진에 이 회담이 '완전한 핵 시설 파괴와 자유로운 사찰'에 토대한 2003년 리비아 모델을 따른다는 전제 하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현재 중동의 정세를 고려할 때 이건 에둘러 대화 시도 자체가 탐탁치 않음을 표현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에 발맞춰 이보다 더 온건한 메시지를 내는 것은 극우 연정 세력의 반발을 고려할 때 불가능하기도 했겠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이번 미국-이란 고위급 회담을 둘러싼 이스라엘의 속내는 복잡할 것입니다. 공화당 인사들은 유대계 로비단체 AIPAC(미국 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로 꽉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관계로 이스라엘의 안보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JCPOA) 때처럼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소외될 가능성은 적겠지만, 만에 하나 회담이 장기화되어 평화 무드가 지속되거나 뜻밖의 성과가 난다면 전쟁 긴장도로 높아진 이스라엘 사회의 텐션이 풀어지면서 반(反)네타냐후 목소리가 비등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물밑에서 이스라엘이 트럼프 행정부에 '이란은 믿을 수 없는 파트너'라는 둥의 설득 작업을 펼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당장 오는 12일 토요일에 미국-이란 고위급 회담이 열리게 되었다면 이건 트럼프의 뚝심이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트럼프가 구체적으로 어떤 비전과 전략을 갖고 실무진에게 회담을 준비시킬지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트럼프의 강한 의지가 있는 이상 일단은 이스라엘로서도 계속 고춧가루를 뿌리기 보다는 회담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미국과 이란은 서로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긴 한가?
그럼 이란은 트럼프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을까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미국에게 달려있습니다. 이란 대통령이 비교적 온건파인 페제시키안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최고 지도자인 라흐바르는 하메네이입니다. 그리고 트럼프는 하메네이의 절친한 정치적 동료이자 이란의 2인자였던 솔레이마니를 암살한 장본인입니다. 페제시키안이 하메네이에게 미국과의 협상에 보다 전격적으로 임하자고 해도 명분이 없는 까닭입니다.
무엇보다 트럼프는 오바마와 이란이 서로 큰 인내심을 발휘해서 성사시킨 핵합의(JCPOA)를 한순간에 무효화시킨 전적이 있기 때문에, 페제시키안도 선뜻 트럼프가 내미는 대화의 시그널을 잡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페제시키안이 '한 번만 더 미국을 믿어보자'며 보수파를 설득해 어렵게 어떤 성과를 만들어도 나중에 또 트럼프가 변덕을 부린다면 이란 내 보수파로부터 '거봐라 또 미국에 속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란 내에서는 '미국 회의론'이 부상하면서 설령 앞으로 어떤 온건파가 재집권하더라도 미국과의 건설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데 큰 어려움이 생길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협상에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의 진정성이 관건입니다. 그래서 이란이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란도 이번 협상에서 그것을 가장 원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란 외무장관이 "공은 미국에게 있다.(The ball is in America’s court.)"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과연 이번 협상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언론에 나온 발언들만 보자면 트럼프의 문제 인식 수준은 그야말로 처참합니다. 트럼프는 이번 협상에서 성과가 나지 않을 경우 이란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3월 말 NBC와의 인터뷰를 보건대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반군 등 중동 내 이란의 프록시(proxy)들에 대한 폭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건 이란과의 협상에서 전혀 득이 될게 없는 협박입니다.
대화를 통해 이란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싶다면, 트럼프는 이란 내 온건파의 입지와 협상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당근도 제시하면서 온건파가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려는 강경파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무력을 앞세운 압박은 협상 실무진들에게 강경파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하도록 만듭니다. 이런 레토릭은 이들에게 협상을 성공시켰을 때 보상을 주긴커녕 망쳤을 때 '미국이 헛소리해서 잘 안 됐다'는 변명할 거리만 주기 때문입니다.
이란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위협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보란듯이 늘려서 미국을 협상장에 불러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런 식으로 지지층을 의식해 이란의 자존감을 긁는 소리를 해대서 이란의 강경파가 협상을 파토낼 명분을 쌓아준다면 상황은 결국 인내심을 잃은 강경 여론에 휘둘려 강대강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지금 돌아가는 세계 경제 상황을 볼 때 그 뒤의 결론은 트럼프의 희망과 달리 비단 이란에게만 a very bad day가 될 것 같지는 않은 게 현실입니다.
결론
트럼프는 쓸데없는 전쟁을 만들지도 않고, 개입하지도 않겠다고 지지자들에게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성의없이 협상에 임한 결과로 회담이 파토나 기어이 이란이 레드라인을 넘어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한다면,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예방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면 그때가서는 뭐라고 변명하겠습니까? 바이든이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전쟁 물자를 지원했던 것과 똑같이 미국이 이스라엘에 전쟁 물자를 지원하도록 만드는 것이 Make America Great Again인가요?
12일 미국-이란 핵 회담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중동 정세가 크게 달라질 예정입니다. 성과가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말입니다. 언론에 비친 트럼프의 인식을 보건대 아마도 성과가 없을 개연성이 커보이는데, 그에 따라 이란과 트럼프는 각각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지 매우 주목해서 지켜봐야겠습니다. 이미 관세 충격으로 실려나가기 직전인 세계 경제인데, 중동에서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도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파멸적 결론으로 치닫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