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학 입문의 모든 것
현대의 법철학자 : H. L. A. 하트
H. L. A. 하트(H. L. A. Hart, 1907~1992년)는 켈젠(Hans Kelsen, 1881~1973년)의 순수법학과 더불어 20세기 법실증주의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법철학계를 주도하는 영미 법철학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연구되고 있는 학자입니다. 그만큼 이 파트는 매우 중요하고 제대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그를 소개할 때 보통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항은 그가 영미 분석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영미권에 망명한 수많은 오스트리아계 지식인 중 한 명인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년) 등이 개진한 일상 언어 학파(Ordinary language philosophy)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케임브리지의 비트겐슈타인과 더불어) 옥스퍼드에서 일상 언어 학파를 이끈 J. L. 오스틴(J. L. Austin, 1911~1960년)의 토요일 아침 세미나에 참석하며 긴밀하게 교류했고, 그의 주저인 ≪법의 개념(The Concept of Law)≫에서 자신이 J. L. 오스틴의 언어철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직접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법의 개념(The Concept of Law)≫에서 드러나는 그의 핵심적인 법철학적 아이디어들은 당시 일상 언어 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선 하트는 벤담과 오스틴의 법명령설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영미 분석법학을 일상 언어 학파의 아이디어를 빌려 뒤집는 작업을 합니다. 오스틴은 법은 주권자의 명령일 뿐이고 법이 효력이 있는 까닭은 처벌을 통한 심리적 위하력을 수범자에게 부과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하트는 사회에서 법제도가 실제로 돌아가는 꼴을 볼 때 법은 명령과 함께 '규칙'의 성격도 갖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규칙 따르기(Rule-following)란 단순한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공동체의 합의와 사회적 실천을 동반한다고 보았습니다. 하트가 법을 '규칙'으로 간주하면서 염두에 둔 규칙의 정의도 이것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법을 '지켜야 한다'고 자발적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준수를 실천하며, 그것을 어긴 사람은 '잘못됐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트가 보기에 현실 사회에서 법이란 단지 강제력에 기반해 행동의 반복이 관행이 된 습관(habit)이라기보다 수범자의 내적 관점(internal point of view)에서 포착되어야 할 규칙(Rule)에 가까운 것입니다.
하트에 따르면 이러한 규칙은 1차 규칙과 2차 규칙으로 나뉩니다. 1차 규칙은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리를 부여하는 규칙입니다. 단순한 원시사회는 수범자들 간의 느슨한 내적 승인에 의해 구속력을 얻는 1차 규칙만으로도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문명사회는 2차 규칙을 필요로 하는데, 2차 규칙은 1차 규칙을 폐지하거나 새로 도입하는 변경규칙(Rules of change), 1차 규칙의 내용이나 목적이 불분명해 법규를 위반한 건지 아닌지 혼란이 생겨 사회구성원 간 분쟁해결에 문제가 생길 때 이를 해결하는 재판절차와 기관을 정하는 재판규칙(rules of adjudicastion), 한 규범이 법에 속하는지 아닌지 이를 판별하는 승인규칙(rule of obligation)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승인규칙입니다. 승인 규칙은 1차 규칙이 법규범으로 되기 위해서 충족해야 하는 조건을 명시한 것으로, 다른 규범들의 법규성(legality)과 효력을 판정하는 기준이 되므로, 한 법체계의 최고 규칙(ultimate rule)이 됩니다. 승인규칙은 수권규범으로서 자신의 효력은 해당 법체계 내의 다른 법규로부터 도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켈젠의 근본규범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켈젠의 근본규범과 달리 승인규칙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이는 한 사회의 법률 전문가들이 관행적으로 어떤 규범을 어떻게 특정한 기준에 따라 법규범으로 판단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승인규칙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는 켈젠과 달리 하트에게서는 순전히 사실의 문제에 해당합니다. 가령 영국 같은 경우에서는 '의회에서 (여)왕이 제정하는 것이 법이다(What the Queen in Parliament enacts is law)'라는 규율이 승인규칙이 될 수 있을 것이고, 한국 같은 경우에서는 '국회와 헌법재판소 그리고 대법원이 헌법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법이다'가 승인규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하듯 승인규칙이 어떤 명시적인 문장으로 드러나있다기보다 한 사회의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퍼져있는 '실천' 및 '관행'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은, 언어의 의미가 그 사용의 맥락에 의존하여 결정된다는 일상 언어 학파의 아이디어와 큰 틀에서 유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눈에 띄게 일상 언어 학파와 하트의 연관성이 관찰되는 부분은 하트가 개념법학이 전제했던 것과 달리 법체계의 흠결을 인정했다는 부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트는 언어란 본질적으로 열린 구조를 갖고 있어 때때로 애매한 상황에 놓이곤 한다고 말합니다. 가령 '공원 내 차량 진입 금지'가 규칙이라면, '자동차'는 공원에 진입을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롤러스케이트'도 규칙에서 말하는 '차량'에 포함되는지는 다소 애매합니다. 이렇게 언어의 의미는 '자동차'처럼 전형적인 차량에 해당하는 '핵심'과 '롤러스케이트'처럼 차량의 범주에 포섭하기 애매한 '주변'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때때로 이런 문제가 부각되는 사건인 어려운 사안(Hard case)은 결국 법관의 재량 범위 내에서 법관의 '법창조'를 통해 해소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언어의 의미가 사회적 실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일상 언어 학파의 관점과 일치합니다. 하트는 이러한 어려운 사건(Hard case)의 경우에 경쟁하는 이익들 사이에서 규칙의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롤러스케이트'의 경우 때에 따라 '차량'으로 간주되어 금지될 수도, 간주되지 않아 허용될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개념법학의 경우에는 규칙의 의미 해석에 일말의 재량도 허용하지 않아 '차량'은 모든 경우에 동일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보았을 것이고, 규칙회의주의의 경우에는 '차량'은 그 어떤 방식으로 해석되어도 무관하다고 보았을 테지만 일상 언어 학파의 영향 아래 놓인 하트의 법철학에서는 언어의 열린 구조를 채택함에 따라 이러한 양극단의 관점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한편 하트는 법준수 의무에 관해서도 유의미한 논변을 남겼습니다. 하트는 이른바 '악법'에 대해서는 '효력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 부당해서 준수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합니다. 많은 법실증주의자들은 법적 구속력이 있다면 도덕적 판단을 떠나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곤 합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는 시민불복종과 같은 것은 인정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트는 법적 의무와 도덕적 의무를 구분하고 이 둘을 동등한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구속력이 있으나 도덕적으로는 심히 부당하여 불복종함이 정당화되는 경우가 있다는 논리를 제안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승인규칙이 과연 도덕적 기준을 포함할 수 있는지가 논쟁거리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승인규칙 자체가 도덕적 기준을 포함하여 그것을 잣대로 어떤 규범이 법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고 있다면, 법은 도덕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 포용적 법실증주의이고, 법은 어떤 경우에도 도덕을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배제적 법실증주의입니다. 둘 모두 자연법론과 달리 법이 도덕과 '필연적'으로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만, 포용적 법실증주의의 경우 배제적 법실증주의와 달리 일정한 전제 하에서 법과 도덕이 '역사적으로 우연히'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양자가 다소 다릅니다.
배제적 법실증주의의 논리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도덕이 법의 세계에 들어오게 되면 법의 명확성이 떨어져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법을 어긴 것인지 아닌지 분별하기 어려워지고 행위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법은 공적 규칙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법의 권위 또한 땅에 떨어지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이 법인지'를 판단할 때 '바람직한 법'에 대한 고민이 들어가서는 안 되고, 그래서 '제정된 게 사실인가 아닌가'라는 객관적인 요소만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배제적 법실증주의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법철학자가 라즈(J. Raz, 1939~2022년)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배제적 법실증주의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법실무 관행을 온전히 포착하는데 다소 난점을 안고 있습니다. 가령 한국 민법 제1조는 '조리'를 법원으로 인정하는데, 이는 보편타당한 가치나 상식이라면 적어도 민법의 사안에서는 법으로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즉 제한적인 차원에서 승인규칙의 구성이 도덕을 원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행은 법이 도덕과 어떤 형식으로든 실질적 관련을 맺고 있다는 설명 하에서 더 잘 해명됩니다.
그렇지만 배제적 법실증주의자들은 이런 경우는 도덕이 승인규칙이라는 관문을 통해 법과 관계 맺게 된 사례가 아니라 순전히 법관이 재량을 발휘해 부분적으로 '입법'을 한 것, 즉 법창조 행위를 한 것이라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이 더 합리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항변합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도덕, 인권, 정의'와 같은 개념에서 법관이 '법발견'을 한다는 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사람들로 하여금 '원천적으로 사전에 인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법(?)에 의한 불이익을 감수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민법상 '조리'와 같은 것은 현재 법실무보다도 훨씬 더 제한적이고 소극적으로 해석되어 활용되어야 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지와 별개로 말입니다.
여하간 하트는 법과 도덕 사이의 필연적 관련성은 부정하면서도, 법과 도덕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며 ≪법의 개념(The Concept of Law)≫ 제2판 후기(Postscript)에서는 승인규칙은 도덕적 기준을 포함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하트는 법체계라면 '최소한의 자연법적 원리들(the minimum content of natural law)'를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것은 어느 법이 정의로운 법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한다기보다, 사물의 본성(die Natur der Sache)'으로부터의 추상적인 실정법의 한계를 도출한 것에 가깝습니다.
그 내용이란 인간의 취약성으로부터 규범의 필요성이, 능력에 있어서의 대략적 평등과 제한적인 이타성으로부터 사회통제의 필요성이, 자원의 한정성으로부터 소유권·계약제도의 필요성이, 이해력과 의지력의 제한성으로부터 강제의 필요성이 도출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법실증주의자로 분류됨에 불구하고 이러한 하트의 선구적인 노력들은 오늘날 포용적 법실증주의뿐만 아니라 자연법과 법실증주의를 통합하려는 현대적인 법철학 사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트에 관해 좀 더 언급할 만한 특기적인 사항은 (LEET에 기출 된 적도 있는듯한) 올덴펜 보고서를 둘러싼 하트와 데블린(Patrick Devlin, 1905~1992년) 간의 논쟁도 있지만, 사실 이 부분은 법철학이라기보다 정치철학에 더 가깝고 정작 정치철학에서는 하트-데블린 논쟁까지 갈 것도 없이 밀의 해악의 원리(The harm principle)를 배울 때 익숙해지는 논점이라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서술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부분이 계시다면 ≪법철학 : 이론과 쟁점≫ 도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