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을 진단받은 한 피아니스트의 덤덤한 이야기
**4월 22일 월요일 오후 3시 40분**
평범했던 나의 일상을 산산이 부숴버린 그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내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조직검사 결과가 안 좋으니 내원해서 상담을 받으셔야 합니다."
차갑고 메마른 목소리로 전달된 그 한 마디.
가슴에 맺힌 작은 멍울이 단순한 염증이기를 간절히 바랐던 나의 소망은 그렇게 무참히 깨져버렸다.
내 몸속에 자리 잡은 그것은 다름 아닌 '암'이었다.
결과를 알려주는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나를 향한 측은함이 묻어났다.
오히려 내게 진단을 내리는 의사 선생님이 더 어쩔 줄 몰라하시는 모습에 이상한 현실감이 들었다.
"큰 병원으로 연결해 드릴 테니, 수술과 치료 잘 받으세요."
진료실을 나서는 내 뒷모습에 깊이 허리를 굽혀 인사하시는 의사 선생님.
그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그날,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 큰 충격에 오히려 감정이 얼어붙은 듯했다. 단지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공허함과 덤덤함속에 희미한 두려움만이 있을 뿐이었다.
암진단은 교통사고와 같다고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단지 운이 좋지 않아 걸리는 것이라는 말을 의사들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복불복 암진단에 당첨된 것인가...
'유방암에 대해 알아야 병을 이겨낼 수 있다'라고 들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 더 확률이 높다는 글자들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최근 10년간 유방암 환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 속에 내가 포함되다니...
3명 중 1명이 유방암이라고 하니 정말 '급증'이라는 단어말고는 생각나는 단어가 없다.
뉴스로만 접했던 암 환자 이야기, 이제는 내가 그 수많은 암환자 중 하나가 되었다.
5월 30일에 예약된 대학병원 외래진료까지의 시간은 마치 영원과도 같이 멀게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비로소 나에게 내려진 '암'이란 진단의 무게가 온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어제는 나오지 않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베개를 적시며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 속에 나의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삶에 대한 간절한 애착이 모두 녹아있었다.
'5주가 넘는 기간을 무얼 하며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절망의 심연 속에서 문득 희미한 빛이 보였다. 대학 선배님의 남편분이 대학병원 의사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염치도, 자존심도 모두 내려놓은 채 간절한 마음으로 연락을 드렸다.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따뜻한 선배님의 목소리에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흐느낌 사이로 내 상황을 설명하는데, 선배님의 차분하고 현명한 대처가 내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선배님과 선배님 남편 교수님의 배려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처음 예약과는 다른 대학병원에서, 그것도 바로 다음 날 진료 예약이 잡힌 것이다. 긴 터널 속에서 작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나의 암 진단 소식을 듣고 한동안 울었나 보다. 퇴근 후 만난 남편의 얼굴에 속상함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오히려 나보다도 그가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첫 외래진료에 동행해 주겠다며 월차를 낸 그의 모습에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느꼈다.
수요일 아침, 빗줄기가 거세게 내리쳤다. 마치 하늘도 내 마음을 대신해 울어주는 듯했다. 비를 뚫고 수요찬양대 반주를 하러 간 그 길은 마치 마지막 순간을 붙잡는 듯한 절박함이 있었다.
지휘자님께 나의 진단사실과 상태를 말하려는 순간, 또다시 왈칵 눈물이 터져버렸다.
말도 꺼내기 전에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반주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된다면 대신 반주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내 상황을 전했다.
"저...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놀라움과 충격, 그리고 깊은 연민이 담긴 지휘자님의 눈빛이 나를 꿰뚫었다.
연습을 마치며 지휘자님은 대원들에게 내 소식을 전했고, 그 순간 경건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였다. 대원분들이 하나둘 내 주위로 모여들어 내 몸 위에 따뜻한 손을 얹기 시작했다. 그들의 진심 어린 간절한 기도가 내 영혼을 감싸 안았고 주님의 사랑을 그분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 이 자매를 치유해 주소서..."
대원분들의 간절한 손길과 눈물의 기도를 통해 전해지는 사랑의 온기가 덤덤한 내 가슴을 녹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중보기도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 일처럼 가슴 아파하며 기도해 주시는 그분들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생하게 느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병원 복도에 앉아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첫 외래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의 수술과 치료의 여정은 미지의 세계와도 같다. 앞으로의 치료가 두렵고 떨리지만,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과정을 주님께 온전히 맡긴다.
암이라는 폭풍 속에서도, 나를 붙들어주시는 그분의 손길을 믿으며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이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빛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난 밀레의 작품인데 다소 생소했지만 어두운 밤에 달빛을 의지하여 양을 치는 목자들의 모습이 마치 한 줄기 빛을 머금은 터널의 끝을 향하여 달려가는 나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는 것 같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앵그르의 작품인데 성모마리아의 간절함이 나의 간절함과 맞닿아 있는 듯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