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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세계여행 루트는 '여름'

여름을 따라 세계를 돌다.

by 이미호


우리 가족의 세계여행 루트는 여름




우리의 여행은 6월에 시작되었다.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 겨울을 피해 여름을 쫓아가는 루트를 따르기로 했다.

어떤 방식으로 여행을 하든 정답은 없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었기에,

가능하면 따뜻하고 여정이 좀 수월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지구를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


여행의 출발점은 미국, 뉴욕이었다.
사실 맘 같아선 동남아국가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고 싶었다.
맛있는 것도 많고, 물가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온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휴식 같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항공권과 이동 루트, 비자와 기후(고산지대 같은) 등 현실적인 조건들을 고려하다 보니 여행의 출발지는 뉴욕으로 정해졌다.


그렇게 완성된 우리의 여정은 북미 -> 중미 -> 남미 -> 아프리카 -> 유럽 -> 아시아 순이었다.

아쉽게도 오세아니아와 북유럽, 중앙아시아 등은 이번 여정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한 번 하고 말 여행은 아니니까.


여행 시작 전 생각했던 루트



우리가 처음 발을 디딘 곳은 미국 뉴욕.

6월의 뉴욕은 여름의 입구 같았다.

이제 막 여름을 맞은 센트럴 파크에는 여기저기 분수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우리 아이도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뛰어다녔다.

물에 젖고, 넘어지고, 웃고, 다시 일어나고. 그래. 이러려고 우리가 여행을 시작했지.

누구의 눈치도, 시선도 없이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여름을 주고 싶었다.

우리에게도, 아이에게도.

캐나다의 퀘벡은 드라마 도깨비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10일 만에 먹는 한식은 입속에서 녹아 사라졌다.


퀘벡 / 캐나다





멕시코의 이글이글 태양 아래서 우리는 진짜 여름을 만났다. 그리고 여행 후 처음으로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과테말라의 살아있는 화산과 아티틀란 호수를 지나

콜롬비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남미 여행을 시작했다. 지금도 또렷한 콜롬비아 작은 마을의 아름다움과 선한 사람들.

에콰도르에서는 적도를 체험했고, 페루에선 고산지대를 오르며 빨리 간다고 되는 게 없고, 천천히 가야 비로소 숨이 트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에서는 하늘과 땅이 맞닿은 거울 같은 세상을 만났고,

아르헨티나에서 우리는 새벽을 걸어 불타는 고구마를 만났다.

평생 잊지 못할 칠레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브라질 삼바의 넘치는 생명력까지.

그렇게 남미의 매력에 흠뻑 빠져, 빠져나오는데만 7개월이 걸렸다. 물론 여전히 아쉬운 남미지만.



우유니 / 볼레비아
피츠로이 / 아르헨티나




아프리카에서는 캠핑카를 빌렸다.

이 캠핑카는 어딜 가도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문제의 중심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바퀴 위에 집을 짓고 한 달 남짓을 달렸다.

남아공에서는 아름다운 가든루트 따라 달렸고, 아프리카 최남단에서 거센 바람을 맞았다.

나미비아에서는 붉은 모래 언덕을 오르고 빅 5를 만나기 위해 게임드라이브를 펼쳤다.

그리고 보츠와나에서는 잊지 못할 일몰과 인연을 만났다.

잠비아에서는 거대한 빅토리아 폭포 앞에서 우리는 물폭탄을 맞았고, 탄자니아는 '빨리빨리'가 일상인 우리에게 "하쿠나 마타타(문제없어)"와 "폴레폴레(천천히)를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탄 타자라 열차에서는, 낭만보다 쥐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왔다.

하. 탄자니아에서 잠비아로 향하는 3박 4일 동안 매일 밤이 얼마나 길었던지.

그렇게 매일매일 사건사고가 터졌던 아프리카.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는 이번여행에서 아프리카가 가장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좋았으면 됐지.


초베 국립공원 / 보츠와나




그다음은 유럽이었다.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달려온 우리에게

유럽은 마치 푹신한 소파 같은 대륙이었다.

익숙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아름답지만 과하지 않은. 좀 비싸지만.


영국의 수많은 무료 박물관과 너무 맛있었던 삼겹살.

남편은 이든이가 하버드 보다는 옥스퍼드에 갔으면 좋겠다 할 만큼 영국을 좋아하게 되었다.(상상은 자유니까)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마신 진짜 진짜 기네스 생맥주(앞으로 다른 기네스는 맛없어서 못 마실 것 같다), 발칸의 도시들은 오래된 편안함을 주었다.

여전히 아름다웠던, 도시마다 다른 감동을 주었던 이탈리아,

살짝 여행 매너리즘에 빠져 계획을 취소하고 관광객 없는 작은 프랑스 남부마을에서 짧은 멈춤을 한 후에 만난 인상파 화가들의 미술작품은 더 큰 감동이었다.

지금도 "100개 더 먹고 왔어야 하는데.." 아쉬워하는 포르투갈의 나타,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던 한국인이 사랑하는 유럽도시 스페인의 청도 납작 복숭아.

아마도 여행은 '그때 못 먹은 것' 까지도 그리워하게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짧지만 의미 있는 100킬로미터 순례길도 걸었다. '아이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잘한다.'

언젠가 아이가 크면, 그때는 함께 800km를 걸어보자는 약속도 했다.

이번엔 매 순간 게임을 하며 걷느라 바빴지만 그땐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토스카나 / 이탈리아



순례길 / 스페인




그리고 도착한 곳, 이집트의 다합.
붉은 사막과 푸른 바다가 맞닿은 이곳에서, 우리 여행은 또 한 번 전환점을 맞았다.

원래는 한 달 머무를 계획이었지만, 바다는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쉐어하우스를 열었고,

남편은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바닷속에서 숨 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다합 / 이집트


나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서히 다합의 리듬에 물들었다.

하루가 천천히 시작되고 마음도 머리도 천천히 움직이는 곳.



다합 / 이집트



다합에 머무는 동안 아이와 나는 둘만의 여행도 다녀왔다. 튀르키예, 조지아, 아르메니아.

셋이 아닌 둘만의 여행은 두려움과 함께 시작했지만 믿음과 든든함으로 끝이 났다.



괴레메 / 튀르키예



그렇게 이 여행은 예정된 ‘끝’ 없이 계속되고 있다. 어디가 종착지일지는 아직은 모른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다합이 잠시 멈춤의 이름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시작점일 수도 있겠다.


이 여정의 기록은 단지 여행 정보가 아니다.
다섯 살 아이와 함께 어떻게 세계를 돌아다녔는지,

왜 어느 순간의 예기치 못한 결정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는지,

무엇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한 가족이 '집'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겨울을 피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인생의 여름 한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자, 이제 우리의 여름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한다.







<<우리가족이 606일 동안 여행한 나라 및 도시>>

총 32개국 170개 도시

북미 - 2개국 / 7개 도시

중미 - 2개국 / 11개 도시

남미 - 8개국 / 56개 도시

아프리카 - 7개국 / 18개 도시

유럽 - 13개국 / 78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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