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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뉴욕은 놀이터로 시작해 놀이터로 끝났다.

23. 06. 23. 뉴욕

by 이미호
놀이터 어디까지 가봤니?



500일의 세계여행, 그 긴 여정의 첫 도시로 우리는 뉴욕을 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 여정 안에서 항공사의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세계여행을 한다는 것은 쉬운일은 아닐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수많은 결정과 예기치 못한 상황들로 이루어질테지만

그 속에서 나와 남편은 한가지를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든이도 이 여정의 온전한 구성원이 되기를"

이 여행이 단순히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는 '어른의 여행'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든이 스스로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고, 때로는 선택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가 만든 여행의 원칙 중 하나는
‘주어진 상황 안에서 아이도 좋아할 만한 장소를 일정에 반드시 포함시키자’는 것이었다.

그 점에서 뉴욕은 꽤 적절한 도시였다.
어른들에겐 상징적이고, 아이들에겐 재미있고 다채로운 놀잇감 같은 도시.






하지만 긴 비행 끝에 도착한 뉴욕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반짝이는 마천루와 멋진 거리 풍경, 세련된 사람들을 기대했지만,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롱아일랜드로 향하는 길은 낡고 어수선하고, 바빴다.

택시 창 밖으로 회색빛 건물들이 흐르고, 비는 부슬부슬 내렸다.

무뚝뚝한 한인택시기사님까지 더해져 이 도시의 첫인상은 뿌연 안개처럼 퍼졌다.



그렇게 도착한 롱아일랜드의 한인민박.

뉴욕의 숙소들은 장기여행자인 우리 가족에겐 너무 비싸서 고르고 고른 숙소였다.


몸은 피곤했지만 이대로 퍼지면 시차적응이 안 될 것 같아서 뉴욕에서의 첫 번째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뉴욕의 첫 방문지가 놀이터라니.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도미노 파크는 옛 설탕 공장의 구조를 그대로 살린 독특한 놀이터였다.




뉴욕의 전철은 악명처럼 더럽거나 위험하지 않았다.


도미노 파크

뉴욕 첫 번째 일정으로 놀이터 어때?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이든이에게 응가 신호가 왔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우버를 부르려니 요금은 무려 45,000원.
비싸다는 미국 물가를 제대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든아, 30분만 참을 수 있어?”
“응!”

도미노 파크에 도착한지 10분도 안되 우리가족은 급히 전철역으로 향했다.



급하게 전철역으로 이동하는 중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놀이터. 거기엔 마법처럼 화장실도 있었다.

급한 불을 끄고 다시 쌩쌩해진 이든이는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영어 못해서 어떡해?" 걱정하던 아이는 스윽 말없이 다가와준 동생과 친해져서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숙소로 돌아온 후 이든이는 “엄마! 나 내일 그 놀이터 가서 그 동생이랑 또 놀 거야!!”하고 말했다.

노는 데는 말보다 몸이 먼저라니까.




외국인이 찍어줬는데 이 정도면 대박이자나

매일매일 파워 J 엄마의 계획대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덤보에도 가고 피자 맛집도 가고 브루클린 브리지도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엔 센트럴파크의 헥셔 놀이터가 있었다.

분수, 돌산, 커다란 스파이더넷.

다람쥐가 무심히 사람 옆을 지나다니는 놀이터에서 이든이는 마음껏 뛰어놀았다.

무지개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던 건 내 아이의 미소였다.




브라이언트 파크
어린이 도서관 / 파이브 가이즈

매일 낮에는 계획대로 열심히 보고, 먹고, 놀고




오늘은 놀이터 안 갈 줄알고 여벌옷 안 챙겨왔는데..

하루의 마지막 일정으론 물놀이가 가능한 놀이터를 찾았다.

어떤날은 여벌옷을 챙기지 않아 팬티바람으로 그냥 놀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래도 괜찮을까?' 망설였지만 주변을 보니 이미 많은 아이들이 팬티바람으로 물 속을 누비고 있었다.

'아이들인데 뭐. 너희들만 행복하다면.'

국적도 언어도 피부색도 다른 아이들이 서로 뒤섞여 첨벙대며 놀았다.

모든 것이 달라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만은 똑같았다.




자유의 여신상 보러 왔는대 잠든 아이

뉴욕에서의 매일매일이 바쁘게 지나갔다.

매일 많이 걷고, 많이 보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와 하루종일 함께 있으니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도, 그 동안 미처 듣지 못했던 아이의 사소한 생각도 조금씩,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 모든 대화들이 새롭고 좋았다.

이 여행은 어쩌면,

아이를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일 지도 모른다.




우리의 뉴욕은 놀이터에서 시작해 놀이터에서 끝났다.

아이와의 여행에서 이보다 더 완벽한 시나리오가 있을까?



이제 우리는 하버드 대학의 도시, 보스턴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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