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는 왜 지금

by 이미호

"우리는 왜 지금"


우리 부부는 사진 동아리에서 인연이 되었다.

사진에도 여러 부류가 있지만, 우리는 인물보다는 풍경, 그중에서도 ‘풍경 속 사람’을 담는 것을 좋아했다.

인물 자체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풍경 속에 놓여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파워 J, 남편은 파워 P.
계획이 없으면 불안한 나와, 계획이 있으면 불편한 남편.
참 많이도 달랐지만, 신기하게도 여행과 취미에 관한 코드만큼은 찰떡같이 잘 맞았다.
풍경 사진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뮤지컬과 야구도 함께 좋아했다.

신혼여행은 쿠바로 갔다.

“먼 훗날 쿠바처럼 살아가자”는 말에 꽂혀, 우리는 과감히 쿠바행을 결정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사서 고생’이 우리 삶의 스타일이 된 건.


그래서 세계여행에 대한 생각에는 서로 이견이 없었다.

'언젠간 가고 싶다.'


세계여행에 대한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어느 한 나라가 너무 좋아서라기보다는, ‘언젠가 떠나고 싶은 세계여행’이라는 막연한 로망.
그 로망은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이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남아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여행은 돈 있을 때가 아니라 시간 있을 때 하는거다." "여행은 다리 떨릴 때 말고, 마음 떨릴 때 가는 거다."


지금 우리는 돈도 없고, 40대 중반을 넘겼다.
시간이 많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아직 다리는 안 떨리고, 마음은 떨린다.

그렇다면, 지금이다.


이든이는 다섯 살. 한국 나이로는 여섯 살.
내년이면 학교에 가야 하고, 그 후로는 시스템 속에 들어가야 한다.
떠난다면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랜 사기업 생활을 마치고 공무원이 되었다.
덕분에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고,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는 안정감은
이번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용기를 주었다.
남편은 여전히 불안정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떠날 수 있었다.
미련은 없었다.
그의 앞날에 이 여행이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이든.

늦은 나이에 낳은 아이, 형제도 없이 혼자 자랄 아이.
그에게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돈을 불리는 능력도 없고, 오래 곁에 있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흑...)
그래서 우리는 이 아이에게 ‘삶의 면역력’을 길러주고 싶었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하고 싶었다.
함께한 500일이라는 시간이 언젠가 그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어린 나이에 떠나는 여행이 기억에 오래 남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우리도 어제 먹은 점심을 기억 못 하는 걸.

하지만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눈으로 본 것들은
기억이라는 이름의 창고에는 들어가지 않더라도
성격, 태도, 세계를 대하는 자세 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떠나기로 했다.

출발은 2023년 6월.
1년 반 정도 다녀오면, 돌아오는 건 2024년 12월쯤이 될 것이다.
이든은 입학 준비를 하고, 나는 다시 복직을… 해야겠지. (사실 복직은 하고 싶지 않다.)

계획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 마음은 이미 출발했다.


여행 경비는 우리 ‘전 재산’을 털어 충당하기로 했다.
은행 지분이 더 많은 집은 전세를 주고, 차도 팔고, 팔 수 있는 건 다 팔기로 했다.
예산은 1억 원 조금 넘는 정도.(돌아왔을 때 집값이 1억 올랐기를…)

계획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 마음은 이미 출발했다.


또 누군가 말했다.

"떠나면 몸 고생, 떠나지 않으면 맘 고생이라고."


나는, 아니 나와 남편은 몸 고생하러 갈 맘의 준비는 진즉에 되었다.

근데 몸의 준비는 안된거 같아서 일단 몸을 좀 준비시키는게 급선무다.

그리고 스페인어 ,영어공부!


두둥! 어쨌든 가보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