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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에서 만나는 유럽의 오후

23. 07. 몬트리올

by 이미호


사실, 내게 캐나다는 도깨비가 살고 있는 퀘벡도,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나이아가라 폭포도 아니었다.
진짜 가고 싶었던 건 벤프와 록키산맥이었다.

파노라마 기차를 타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록키산맥을 바라보고, 국립공원에서 캠핑도 해보고 싶었다.
진짜 캐나다를 느낄 수 있다면 그건 동부 도시보다도 서부의 자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경로는 점점 바뀌었고, 결국 우리가 밟은 건 몬트리올부터 시작하는 동부 도시들의 여정이었다.
퀘벡, 오타와, 토론토, 그리고 나이아가라까지.

“미국 서부랑 캐나다 서부는 나중에 따로 와야지"

벤프는 결국 못 갔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의 여행은 이번이 끝이 아니니까!

(.....이렇게라도 생각해야 아쉬움이 좀 덜하다.)








전날 저녁 12시를 넘겨 미국 보스턴에서 출발한 버스는 도시마다 멈췄다.

정차할 때마다 불이 켜졌고, 운전기사는 무언가를 안내했다.

이든이가 깰까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한 번도 깨지 않고 미국과 캐나다 국경까지 잘 자주었다.

입국심사는 의외로 간단했다.

여권을 제출하고 몇가지 간단한 질문을 받은 후 대략 30~40분만에 무사통과했고 아침 7시 40분 무렵

몬트리올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팀홀튼 좋아

문제는 숙소였다.

미국도 비쌌지만, 캐나다도 만만치 않았다.

몬트리올에서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2인실 호스텔이었는데 체크인 시간이 무려 오후 4시였다.

가격은 1박에 29만 5천원

야간버스를 타고 온 몸이 뻐근한 상태였고, 거의 잠을 못 잤기에 얼리체크인을 간절히 기대했지만 처참하게 거절당했고 겨우 가방을 맡기고 흐린 날씨만큼이나 우울한 기분으로 호스텔을 나왔다.

근처를 두리번거리다 문득 빨간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팀 홀튼’.

“저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피곤한 다리를 쉬게해줄 편안한 의자와 따뜻한 커피 한 잔이었다.

커피 맛도 가격도 매우 마음에 드는 '팀홀튼'. 캐나다 여행 내내 자주 들를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늘은 점점 더 흐려졌다.

원래는 몽루아얄 공원(Mont Royal Park)에 올라가 몬트리올 전경을 내려다볼 생각이었지만,

계획을 바꿔 실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맛있었던 해산물 식당과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돔을 가진 성 요셉 대성당

버스를 탈 때부터 내리던 빗줄기는 식당 근처에 도착할 즈음 더 굵어졌다.

우산도 없이 뛰다시피 도착했지만, 그다지 불쾌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났다.
오랜만에 맞는 비, 그리고 오늘이 일요일도 아닌 평일이란 사실.
내일 어디에도 출근할 필요 없는 여행자의 자유가 묘하게 실감 났다.





숙소로 돌아오는길,

피곤한 5살 아이는 기둥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









몬트리올에서의 둘째날이자 마지막날

유럽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몬트리올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인 올드몬트리올로 향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 성당보다도 아름답다는 평이 있는 몬트리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후한 외관과 다르게 내부의 파란 조명과 섬세한 목조장식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노트르담 대성당 보다 먼저 찾은 곳은 대관람차였다.

한국에서도 한 번 안타본 관람차를 이든이가 타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

"넓은 세상을 보렴."

투명한 캡슐 안에서 내려다본 세인트로렌스 강과 도시의 지붕들.

천천히 돌아가는 그 시간 동안, 아이는 신이나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거리엔 버스킹 음악이 흐르고, 감각적인 카페 등등으로 걷는내내 기분 좋게 만드는 자끄 까르띠에 거리.

북미 한복판에서에서 유럽갬성이 흘러 넘쳤다.






우리는 몬트리올의 마지막 일정으로 유명한 스모크 미트집 슈왈츠 델리(Schwart'z Deli)로 향했다.

유대인 이민자가 1928년부터 시작한 가게로 9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유지된 가게라고 한다. 곧 100년이라니!!!

줄서는거 별로 안 좋아하는 우리 부부지만 이 곳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메뉴라니 흔쾌히 기다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몬트리올이 무엇으로 유명한 도시인지도 잘 몰랐다.
아주 오래전에 몬트리올 올림픽이 열렸다는 것 정도? 딱히 기대가 큰 도시도 아니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몬트리올과 퀘벡이 속한 퀘벡주는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니, 북미 한복판에서 프랑스어라니 –

꽤 흥미로운 조합이었다.


생각해보면 남미의 대부분 나라들이 예전에 스페인의 식민지였고, 그래서 지금도 스페인어를 쓰는 것처럼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몇몇 아프리카 나라들, 그리고 몬트리올과 퀘벡도 여전히 프랑스어를 쓴다.

우리가 여행하는 곳들은 대부분 관광지여서 영어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지만,

퀘벡주에서는 지금도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프랑스어를 쓴다고 하니 –
언어라는 것이 단순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걸 보며 문득 한국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였음에도 글과 말을 잃지 않았다.

우리의 언어가 지켜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다시 느끼게 했다.



몬트리올은 휘황찬란한 도시도,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풍경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낯선 언어 속에서, 그 느린 리듬 속에서, 나는 오히려 오래 머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퀘벡시티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던 길.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삑삑’ 경고음이 계속 울렸다.
기계 오류인지, 결제 문제인지 알 수 없었고 걸어갔다간 기차를 놓칠 것 같은 상황.
머릿속은 하얘지고, 판단은 흐려졌지만—
다행히 기사님이 그냥 타라고 손짓해 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무사히 퀘벡시티행 비아레일(VIA Rail)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여행은 이렇게,
매번 결정적 순간마다 누군가의 작은 도움으로 무사히 이어지고 있다.
아직은,




이제 우리는 도깨비를 찾아 캐나다의 두번째 도시 퀘벡으로 향한다.

몬트리올에 있을땐 몰랐는데 퀘벡시티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인다.

기다려라,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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