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7, 퀘벡, 캐나다
캐나다의 두 번째 도시는 퀘벡이었다.
그 이름도 찬란하다는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
비아레일을 타고 퀘벡에 도착하는 순간, 마치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기차역부터 언덕 위로 이어지는 오래된 골목들.
아직 퀘벡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먼저 설렜다.
그 속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뱃살 두둑한 이웃 아저씨 콘셉트의 에어비앤비 숙소 주인, 마틴을 따라,
우리도 슬그머니 드라마 속 인물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이곳 역시 물가가 꽤 높은 관광도시였다.
올드타운 바로 옆에 숙소를 잡고 싶었지만,
우리는 중심가에서 꽤 떨어진 에어비앤비의 개인실을 예약했다.
호스트 마틴 그리고 다른 게스트와 넓지 않은 공동 부엌과 욕실 그리고 거실을 함께 쓰는 방식이라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자에게 편한 선택은 아니었지만,
현지인들의 일상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도심을 더 오래 걷게 되니 좋았다.
우리의 마음을 아는 듯, 때마침 시내버스가 파업이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왕복 1시간 30분 거리의 올드타운을 걸어서 오갔다. :-(
물론 올드타운으로 가는 길 만나는 수많은 놀이터들 덕분에 매번 시간은 오버되었지만
우리는 돈보다는 시간이 많은 여행 자니까. 그 걷는 길 위에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니까
그러니까, 다 괜찮았다.
매일 아침마다 호스트가 구워 놓은 바나나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귀여운(?) 강아지 탈리, 호스트 마틴, 다른 방에 있는 인도인 게스트와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퀘벡 여행은 자연스레 '도깨비'를 따라가는 여행이 되었다.
굳이 드라마를 흉내 내려 애쓰지 않아도, 이 도시 자체가 이미 드라마 같았다.
올드타운의 구불구불한 돌길, 중세 유럽풍의 성채와 탑, 그리고 도시를 내려다보는 샤토 프롱트낙 호텔.
마치 공유가 긴 코트를 입고 골목 어귀에 서 있다가, 김고은이 불러야만 걸어 나올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엄마 나는 오늘 빨간 문을 찾아서 한국에 좀 갔다 올게. 부천 하부지랑 할머니랑 같이 올게! “
'벌써 여행이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건가~' 싶었는데
한국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온다니.. 그분들을 향한 아이의 생각이 너무 기특했고 뭉클했다.
맞벌이인 우리를 대신해 태어나서부터 이든이를 키워주다시피 하신 시부모님 감사합니다~❤️
아직 프랑스를 가보진 않았지만 프랑스의 느낌이 가득한 캐나다 퀘벡의 거리가 낯설고 신선했다.
이 느낌 잊지 않고 있다가 프랑스 가면 비교해 봐야지.
사계절의 퀘벡을 담아냈던 도깨비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눈 덮인 테라스를 걸으며 겨울을 떠올렸고, 햇살 좋은 초여름의 노란빛이 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바람 따라 흩날리는 나무 잎 사이로 가을이 보이고, 강을 따라 걷는 산책로에서는 여름의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우리는 도깨비가 걸었던 길을 따라 빨간 문을 찾았고,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라는 작은 상점도 찾았다.
북적대는 거리 한편에 마련된 한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금 이 순간을 한껏 만끽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가장 좋았던 곳은 도깨비 언덕이었다.
샤토 프롱트낙 호텔 뒤편, 세인트로렌스강을 내려다보는 그 언덕.
하루는 우연히, 또 하루는 의도적으로, 우리는 자꾸 그곳을 찾았다.
매일 돗자리를 챙겨 언덕 위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간단한 간식을 꺼내 놓고, 종일 걷느라 지친다리도 쉬게했다. 아이는 이리저리 잔디밭위를 굴러다니며 웃었고, 우리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강 너머로 천천히 해가 기울고, 바람은 적당히 불었다.
언덕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풍경 속의 일부가 되는 기분이었다.
‘여행 중’이라는 사실마저 잠시 잊게 만들 만큼, 그 시간은 아무런 긴장도 없이 편안했다.
도깨비가 극 중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그 자리.
그 자리에 앉은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익숙해져갔다.
머무는 것이 곧 여행이라는 걸, 퀘벡의 언덕에서 처음 느꼈다.
돌이켜보면,
이 여행은 드라마를 좇는 여정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바라보게 만든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행복했다, 도깨비도 나도, 우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