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07, 토론토 & 나이아가라, 캐나다
숨 가쁘게 지나온 캐나다 동부 여행이었다.
여유롭게 여행하자 마음먹었지만,
짧은 여행에 익숙해진 우리는 매일같이 여행 숙제에 시달렸다.
마치,
뭔가라도 하지 않으면 혼날 것 같은 숙제.
그렇게 우리 가족은
캐나다의 마지막 숙제를 해결하러 토론토로 향했다.
서둘러 준비한다고 했는데, 또 시간이 촉박해져 버렸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든이를 챙기며 빠른 걸음으로 걷자니 하, 너무 힘들었다.
겨우겨우 겨우 전철에 몸을 싣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이든이가 말했다.
"엄마,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들까?"
응? 미안하다. 아들아.
네 인생을 힘들게 해서..... ㅋ
오늘도 편하게 비아레일을 타고 토론토로 이동했다.
어린이를 위해서 종이기차 만들기부터 스티커북, 엽서, 연필, 연필깎이 등등이 제공돼서 이동하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날씨는 잔뜩 흐렸지만, 여행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낭만 두고 다시 시내로 나왔다.
토론토 전철 안에서는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인터넷 강국’에서 살아온 내겐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비가 뿌렸다 그쳤다 하는 날씨라 시내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CN 타워와 기차 박물관만 휘리릭 둘러보고는 다시 숙소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CN 타워를 봤을 때의 감동은 길게 가지 않았다.
김치순두부찌개와 불고기가 훨씬 더 감동적이었으니까.
너무 맛있다. 행복하다.
행복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식당 문을 나서니 빗줄기가 굵어져 있었다.
한인 마트에 들러 멕시코에서 먹을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사고, 양손 가득 들고 숙소까지 뛰었다.
꽤 멀었지만 뱃속도, 손도, 마음도 가득 차 있어서 전혀 힘들지 않았다. :-)
우리 가족은 토론토에서 메가버스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했다.
어제의 고생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이번엔 더욱 넉넉하게 시간을 잡았다.
아침 7시에 숙소를 나서 8시 30분 버스를 타려는 계획.
그. 런. 데.
전철역 문이 닫혀 있었다.
다른 출입구로 가봤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일이람?’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알게 됐다.
주말의 첫 전철은 7시 54분이라는 사실을.
그 시간에 전철을 타면 유니온역 도착이 8시 26분.
거기서 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해야 하니 조금의 지연이라도 생기면 버스를 놓치게 된다.
마침 유니온역으로 간다는 버스가 와서 망설임 없이 올라탔다.
구글맵은 1시간이면 도착한다고 했지만 8시가 넘었는데도 절반도 오지 못했다.
초조하고 식은땀이 났다.
결국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전철로 갈아탔고 유니온역 도착 시간은 8시 27분이었다.
내리자마자 앞뒤 안 보고 달렸다. 그저 남편을 따라 뛰고 또 뛰었다.
뛰면서도 어느 정도는 포기한 상태였다.
중간부턴 남편이 먼저 버스를 잡으러 뛰어갔다.
달려가는 이든이 옆으로 “슈퍼맨이 날아간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정말 기적처럼,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8시 31분 도착, 8시 34분 출발.
이건 진짜 인간 승리다.
“엄마,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들까?”
어제에 이어 오늘도… 미. 안.^^;
한 시간 반쯤 달렸을까, 버스가 멈추자 눈앞에 거대한 물기둥이 보였다.
아— 정말 내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왔다. 말로만 듣던 그곳.
세계여행을 하다 보니 이런 데도 오는구나.
이곳의 이름은 원주민 언어로 ‘천둥소리를 내는 물’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폭포 너비만 790m로 세계 최대 수준으로
앞으로 만날 이과수, 빅폴과 함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다.
과연 세 폭포 중 어떤 풍경이 가장 기억에 남을까?
나이아가라 폭포 마을은 일반 주거지라기보다 거대한 놀이공원 같았다.
점심을 먹고 크루즈를 타기 전까지 잠깐 게임장에 들렀는데,
처음 해보는 이든이가 아빠보다 훨씬 잘했다.
그날 이후로 아빠는 계속 놀림을 당했다. 20달러로 한 시간 넘게 신나게 놀았다.
드디어 빨간 우비를 입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루즈에 탑승했다.
점점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물의 굉음이 커져서 옆사람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정말 ‘천둥소리를 내는 물’이었다.
그 옛날 사람들에겐 이 폭포가 어떤 의미였을까? 두려움의 대상? 존경의 대상?
괜스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어마어마한 바람과 물보라에
머리카락이 흠뻑 젖고, 바지도 흠뻑 젖고, 눈앞은 하얀 물보라로 가득했다.
순식간에 재난영화 한가운데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나머지 두 폭포에서도 보트 타자!” 하고 말했더니
이든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시는 안 탈래.”
"왜에~ 이렇게 재미있는데!"
마지막 밤은 불꽃놀이로 마무리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함께 보던 사람들의 환호가 밤공기를 달궜다.
그 속에서 우리도 함께 웃고 있었다.
이제 캐나다 여행은 단 하루만 남았다.
다음 목적지는 중미 대륙의 멕시코.
스페인어권 여행지는 신혼여행으로 갔던 쿠바에서의 짧은 여행을 제외하고 처음이다.
언어도 새롭고, 문화도 낯설어서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그곳에서부터야 비로소 진짜 세계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