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07. 바깔라르, 멕시코
멕시코는 코코의 나라, 타코의 나라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시작하니 매력이 끝도 없는 나라였다.
나는 도시마다 색이 다른 나라를 좋아하는데(그래서 이탈리아도 좋아한다.)
멕시코 역시 도시 저마다의 색깔이 너무 달라서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가고 싶은 도시들이 많아졌다.
출발 전에는 분명 '한 도시에서 느긋하게 머물자'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그 마음이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멕시코 여행의 세 번째 도시, 바깔라르에 도착했다.
한국 여행자들에게는 ‘서진이네’ 촬영지로 유명해진, 일곱 빛깔 호수가 있는 작은 마을, 바깔라르
칸쿤이나 플라야 델 까르멘 같은 관광지와는 달리, 바깔라르는 그냥 조용한 시골 마을 같았다.
시끌벅적한 도시에 있다가 갑자기 한적한 동네에 오니, 처음엔 "여기가 맞나?" 싶어 얼떨떨했다.
바깔라르 여행의 적기는 11월부터 5월까지 건기라는데 우리는 우기인 7월에 도착했다.
매일같이 스콜성 비가 내렸고 날씨도 대체로 우중충했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여행은 날이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좋은 법이니까.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 않은가?
바깔라르는 화려한 볼거리나 스펙터클한 체험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사람들로 붐비지도 않고, 여행객과 현지인이 이질감 없이 섞여 지내는 그런 동네였다.
호수 하나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오히려 그 단순함 덕분에 기억에 오래 남는 곳이었다.
호수는 햇빛의 각도, 깊이에 따라 물 빛이 달라졌다.
파란색, 청록색, 에메랄드… 일곱 가지 색을 품은 호수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넓었다.
이렇게 드넓은 곳이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니.
'이곳은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적당히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오길 잘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호수 마을에 불청객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바로 물갈이였다.
남편을 시작으로, 이든이에게로, 그리고 나에게까지....
왜 자꾸 숙소를 나서기만 하면 신호가 오는지 다시 숙소에 들어갔다 나오길 여러 번,
2박 일정을 3박으로 바꾸고 여행의 템포를 늦추며 물갈이가 얼른 멈추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좀 괜찮아진 날에는 자전거를 빌려서 '서진이네' 촬영지에 찾아갔다.
방송은 이미 끝났지만 현장에는 여전히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방송에서 보던 공간에 내가 있다는 게 묘하게 기분을 들뜨게 했다. 평범한 풍경도 누군가의 시선과 기획으로 특별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다행히 나와 남편의 3일 만에 회복했지만 문제는 다섯 살 이든이었다.
여전히 뭔가 먹으면 화장실에 가야 했다.
흐린 날씨, 물갈이 게다가 수영 못하는 나와 이든이.
그래도 우린 즐거웠다.
그 날 일곱 빛깔 호수 위로 이든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이든이에게 붙은 불청객은 우리가 바깔라르를 떠나는 날까지 따라왔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아침
하루에 국경을 두 번 넘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는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길에 이든이에게 또 신호가 왔다.
“엄마 화장실에 가야할 것 같아”
되돌아갈 수도 없어 “이든아 조금만 참아~” 하며 급히 길을 재촉했지만, 결국 속옷에 조금….
잠시 소강상태이던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고, 약속된 버스는 제 때 오지 않았다. 그 비속에 나는 배낭을 지키며 차가 오는지 살펴보고 남편은 이든이 뒤처리를 위해 화장실을 찾았다..
그날 아침을 어떻게 버텼는지 지금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행히 그 한 번의 난관 이후로 큰 문제없이 우리는 세계여행 4번째 나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지막이 해피엔딩이면 다 잘 된거다.
바깔라르는 호수처럼 반짝이는 기억과, 물갈이라는 첫 번째 시련을 동시에 남긴 도시였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곳.
여행이 늘 그렇듯, 좋으면 좋아서 좋고, 힘들면 힘든 대로 특별해진다.
쉼이 필요한 여행자들이여, 파라다이스가 기다리는 바깔라르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