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07. 안티구아, 과테말라
안티구아 여행의 핵심이라고 하면 단연 화산투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키테낭고 화산’ 투어이다.
활화산 '푸에고'의 분화를 눈앞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투어를 안티구아 여행의 백미라 부르는 이들이 많다.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터져 나오는 용암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다만 그 여정이 만만치 않았다. 베이스캠프는 해발 3,600m, 정상은 3,976m에 자리하고 있다.
고산 적응은 기본, 꾸준한 오르막과 바람, 추위까지 견뎌야 한다. 난이도 중 상급, 도전 정신이 필요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우리 여행에서는 아쉽지만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대신 우리는 차선으로 '빠까야 화산(Pacaya)' 투어를 골랐다.
아카테낭고보다 난이도는 낮고, 당일치기 투어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정상에서 기다리는 특별한 경험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출발은 오후 2시였다. 우리를 태운 미니버스는 안티구아의 구석구석을 돌며 사람들을 태웠다.
일방통행이 많은 도시라 금세 끝날 줄 알았던 픽업은 30분이나 이어졌다.
하지만 덕분에 평소 걸어서는 가지 못했던 골목들을 차창 너머로 구경할 수 있었다.
도로는 울퉁불퉁했고, 차는 디스코팡팡처럼 몸을 튕겨댔지만 오히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흥겨운 리듬 같았다.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빠까야 화산.
미니버스에서 내리니 현지인들이 '택시' 혹은 '우버'라고도 부르는 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아이와 함께하다 보니, 당연히 우리의 주변에 말 주인들이 집요하게 다가왔다.
가이드 역시 몇 번이고 “아이 괜찮겠어? 말 타도 돼, 옵션이야~” 하며 은근슬쩍 권유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확실한 '당근'이 있기 때문에 '우버'는 필요 없었다.
바로 '화산에서 구운 마시멜로 두 개 먹기'라는 당근. :)
대략 편도 2.5킬로 정도이고 오르막 30분. 이후 오르락 내리락이 이어진다는 간단한 설명을 듣고 등반이 시작되었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금세 뒤처졌다. 우리 앞에 걷던 한 분은 말을 타고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든이에게 "힘들면 말 타도돼~ 대신 말을 타면 마시멜로는 먹지 못할 거야~" 했더니
"절대 말은 안 탈 거야!" 한다. 마시멜로가 뭐라고... :0
꼴찌 팀은 늘 힘들다.
앞선 사람들은 쉬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가 도착하면 바로 다시 출발했다. 우리는 쉬어갈 틈이 없다.
이든이는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마시멜로를 먹으려면 말은 타면 안 된다”며 씩씩하게 걸었다.
그 모습이 기특하기도, 웃기기도 했다.
7월의 빠까야는 태양은 뜨겁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검은 화산재를 밟으며 걷다 보면 삭막한 풍경 속에서도 기묘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가이드는 저 멀리 시커멓게 굳은 땅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저건 2021년 화산 폭발 때 흘러내린 용암입니다. 그때 아보카도와 바나나 농장이 모두 묻혔죠.”
지금은 고요해 보이지만, 불과 몇 해 전 이곳은 불길과 연기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침내 경사가 완만해지고 시야가 탁 트이자 빠까야 화산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
삭막하고 거대한 화산은 묘하게 신비로웠다. 가까이 다가가자 땅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이드는 작은 돌을 꺼내 이든이 손에 쥐여주었다. 이든이가 “앗 뜨거워!”하며 곧장 나에게 돌려줬다.
손바닥을 데일 정도로 돌은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신기했다.
곧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가이드가 기다렸다는 듯 마시멜로를 꺼내 불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구멍 위에 올렸다.
마시멜로가 살짝 노릇해지자 이든이의 눈이 반짝였다. “100개 먹을 거야!”라던 그 말이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입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얼굴 가득 웃음이 피어나고 따봉이 저절로 나왔다.
바삭하면서도 달콤한 마시멜로 맛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보상이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간 능선 위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멀리 칼데라호가 보였고, 용암이 흘러 만든 검은 강줄기는 마치 거대한 자연의 그림 같았다.
바람은 차갑게 불어왔고, 우리는 서둘러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아이는 콧물과 눈물이 뒤섞인 얼굴로도 여전히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하산길은 생각보다 순탄했다.
신발 속으로 들어온 화산재를 털어내며, 아이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걸었다.
길가에 있던 말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땅에서 주운 열매를 조심스럽게 묻으며 “잘 자라라” 속삭이기도 했다.
해는 점점 기울어가고, 붉은 노을이 산허리를 물들이는 순간, 아이의 얼굴은 그보다 더 환하게 빛나 보였다.
아름다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차창 너머로 본 하늘이 너무 황홀해 열심히 카메라에 셔터를 눌렀지만 담기지 않았다. 결국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눈에 맘껏 담았다. 오래 기억될 풍경이었다.
집에 도착한 후 끓여 먹은 라면 한 그릇은 오늘의 피로를 가장 완벽하게 달래주는 메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든이라면 아키테낭고도 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쉽진 않았겠지만. (어쩌면 내가 해내지 못했을 수도?)
아무튼 보지 못해 아쉬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화산뷰 맥도널드 그리고 아키테낭고.
안티구아를 다시 찾아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