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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편지 (상)

8쟝

by 채리 김

엠에게

로마 국제공항에서 널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나는 한국 서울에서 너는 미국 텍사스에서 각자의 비행기를 타고 여기에서 만나는 거야. 공항 카페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나의 첫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는 성공적이었어. 생각만큼 많이 쓰지 않았거든. 거품이 올라가 있어서 그런가. 나의 첫 경험에 네가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 카페엔 에스프레소를 원샷을 하고 가는 아저씨들이 많아. 내가 보기엔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은 여행객이고 저렇게 소주처럼 커피를 들이켜는 사람은 공항 에스코트나 운전기사 등 현지인 같아. 이탈리아 아저씨들은 하나 같이 다 스콜세지 영화에 나올 것처럼 생겼어. 그런데 사람 안 죽이고 가정집으로 퇴근해 부인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저녁을 먹을 것 같은 그런 아저씨인 거지. 상대적으로 이탈리아는 남성 중년의 비율이 높은 듯해.


그래 봤자 난 아직 공항 카페라 모를 일이긴 하지. 이렇게 새로운 환경을 느낄 땐 내 느낌을 기록하는 게 중요한데 문제는 내 느낌이 아무렇지가 않아. 여행만 오면 난 너무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서 새롭고 모르는 것들이 마치 너무 편하다는 양 구니까. 어떤 그 생경함을 기록하지 못하겠다고 해야 하나.


아이스 컵 워터를 달라고 했는데 아이스만 주네. 소통이 아주 잘못된 게 맞는 것 같아. 아빠가 공항에서 가방 지켜봐 달라는 부탁 들어주지 말랬는데 폭탄일지도 모르니까, 내 옆에 앤디 워홀의 그림같이 생긴 재킷을 입은 미국 할머니가 사납고 빠르게 물어봐. 여기 몇 분 더 있을 거야? 나 커피 좀 사 오게. 내가 저절로 sure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압도감이었어. 경유 비행동안 내 옆엔 노부부가 앉았는데 그들은 시종일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찾고 확인하고 부탁했어. 내가 잔다고 그 광경을 다 놓친 게 아쉬울 따름이야.


너 왜 이렇게 안 나오니. 네가 탄 비행기는 도착했는데 혹시 수하물이 연착된 거니. 그나저나 활주로 봤어? 세상에나 내가 여태 본 활주로 중 가장 예쁜 거 있지. 이삭 줍고 있을 것 같아 사람들이. 시멘트 냄새 대신 시트러스 나무 향이 날 것 같았다니까.


딸기 속은 엄청 빨간데 엄청 셔. 내가 양치를 해서 그런가. 널 만나자마자 6개월치의 키스를 다 퍼부어주려고 한 거야.


입국장 앞으로 왔어. 비행기 한 대가 도착할 때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며 붐비기 시작해. 나도 덩달아 조급해져. 그러다 그 사람들이 우수수 다 빠지고 나면 텅 빈 곳에서 나 홀로 남아 있는 기분에 또 적막해져.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이 조급함과 적막함의 반복인가 봐.


엄청나게 밀려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해. 내가 너를 단숨에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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