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핌피에게
우리가 오늘 하루 머물게 된 숙소는, 저번 엠과 제가 이틀간 머물렀던 곳에서 한 블록 차이예요. 이 동네는 워낙 작고 광장을 중심으로 반원 형태로 생겨서, 제가 길 안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핌피는 여태까지 머물렀던 곳 중 숙소가 가장 좋다고 했죠. 아마 우리의 방과 당신의 방이 멀게 떨어져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밤 중 우리가 시끄러웠다면 미안해요. 그래도 긴 여행 끝에 마침내 편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피렌체에서 이곳으로 오는 여정은 예상보다 변수가 너무 많았어요. 라 스페지아 사고를 방지하려고 우린 아침 일찍 베르나차 숙소를 나섰고 그 결과 우린 찜통 같은 더위의 승합실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릴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피사로 가는 기차에선 웬 젊은 커플이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싸우질 않나. 아! 제가 그 소리를 몰래 녹음해 번역해 보았어요. “닥쳐. 닥치라고. 넌 나올 수 있었잖아!” 아마 남자애가 다른 여자애랑 놀아났나 봐요. 이걸 알려주자 당신은 아주 크게 웃었지요. 전 괜히 뿌듯했어요.
우린 피사에서 로마로 안전하게 기차를 갈아탔죠. 그러나 아무도 생각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기차 도착이 연착되었다니, 그것도 70분이나. 핌피는 읽을거리 하나 없이 가만히 창 밖만을 내내 바라봤죠. 전 핌피를 보고 있었어요. 아침 일찍 크래커 하나 먹은 탓에 기운이 없어 보였어요. 우린 고민 끝에 기차 마지막 칸에 있는 식당으로 가기로 했어요. 승객들 사이 좁은 복도를 겨우 지나며 도착한 식당엔 음식이 남아 있는 게 없었고, 심지어는 기차가 곧 도착이라고 방송을 했잖아요! 지루한 연착 끝내 드디어 이 기차를 탈출하려는 승객들의 급한 몸짓 사이로 우린 달렸어요, 다시 우리의 자리로…
그래서 우린 오늘 성대한 저녁밥을 먹기로 했죠. 여행의 마지막 밤과 나의 생일을 축하하면서요. 숙소에서 옷을 갈아입고 내가 여행 내내 좋아했던 루비 귀걸이를 하고 나온 핌피는 아름다웠어요. 엠과 저는 스테이크를 핌피는 구운 생선을 주문했어요. 복작복작한 도심으로 다시 돌아오니 관광객을 겨냥한 연주가들이 많네요. 우린 현금은 없었지만 그들의 아코디언 연주를 잘 즐기고 감사하다 말했죠. 저는 마침내 티본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사실 한 입 얻어먹은 핌피의 생선이 더 맛있었어요. 통마늘이 구워져 나왔는데, 그건 다 한국인인 제 몫이었죠. 고마워요. 엠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여행을 돌아보며, 우린 많은 대화를 했어요. 핌피는 제 앞길을 응원해 줬고 몇 달 뒤 멕시코에서 있을 사촌의 결혼식에 초대해 줬죠. 저는 핌피에게 감사한 것이 너무 많아 제가 가진 언어로는 다 표현 못할 것 같다고, 그래서 다음번에 만날 때까지 열심히 공부해 스페인어로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것이라 약속했어요. 여행 이후 시작한 스페인어 듀오링고는 핌피의 것처럼 벌써 연속일 수 60일 차에 달성했답니다. 그리고 이 맛있는 저녁을 대접할게요. 받아오기만 한 여행, 마지막이나마 제가 드리고 싶었어요. 핌피는 이탈리아어로 그라치오, 했지요.
제가 이 여행에서 핌피에게 굿 나이트 인사를 하는 것도 마지막이네요. 전 꼭 문안 인사 드리듯 항상 방 발치에 서서 인사했죠. 굿 나이트 핌피. 혹은 부에노스 노체스 핌피. 우린 다시 거리로 나가려고요. 술을 더 마셔야죠. 핌피도 우리의 마지막 광란의 밤을 기원해 주며 인사해요. 굿 나이트 채리. 다음 여행에서 봐.
모든 게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