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ODYSSEY '80s (2화)

제2화 나는 왜 '80s 음악을 애정하는가

by 윈디박

지금으로부터 무려 43년 전.

1982년 서울의 어느 '국민학교 6학년' 교실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자.


이성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남학생들은 괜히 마음이 가는 여학생들에게

맥락 없는 농담, 장난을 빙자한 '수작'에 여념이 없다.

필자도 '요즈음' 한창 유행인 남녀 간의 '지식대결'로 여자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려 하고 있다.

참고로 '지식대결'이란 것은 학교 수업 사이사이 휴식시간에 남녀 일대일로 누가 더 상식을 많이 아는지

승부를 가리는 것으로 사실상 대결을 빙자한 이성 간의 '썸 타는 행위'라 할 수 있겠다.

간혹 쓸데없이 진지하게 목숨 걸고 승부에 임하는 눈치 없는 커플들이 있긴 했으나

대부분 쉬는 시간에 주거니 받거니 '지식대결'하고 있는 것들은 최소 한쪽은 맘이 있어

성사된 것이라 보면 되겠다.


80년대 국민학교 교실(책상과 의자 모두 나무 재질)


그런데 이 '지식대결'이 성사하는 데는 말을 걸어보는 '용기'외에도 한 가지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주제 선정인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결국 주제 선정을 포함한 모든 게임의 법칙은 둘이 정하기 나름이기에 순수하게 '승리'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선호하는 분야를 주장해야 할 터이다,

남자아이들이 주로 자동차, 총기, 로봇 등을 주장했다면, 여자아이들에게 외국 영화배우 이름 대기는 '유치한 남자애들'을 이길 수 있는 필승의 카드인 것이다.

여기서도 이미 '사랑의 역학관계'는 슬프게도 적용되는데 좋아하는 마음의 무게 추가 밑으로 기울어진 한쪽은 상대방의 일방적인 승리가 예상되는 '대결 주제'를 수용하고 만다.

여러 독자들이 예상한 대로 필자도 ' 그 아이'의 주제를 받아들인다.

그것은 바로 '외국 팝송 가수 이름 대기!'.


그 당시 필자는 조용필의 단발머리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흠뻑 빠져 있었고 학급 장기자랑 시간에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를 멋지게(!) 부를 정도로 나름 '음악 애호가'였다.

그러나 원통하게도 소위 '팝송'은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없었다.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두 가지 이름을 대면 그 후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 대결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나는 태연한 척, 자신 있는 척, 흔쾌히 주제를 수용했다.

그 아이는 다소 의외라는 듯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다소 급하게 "내가 먼저 할게. 비틀스."

그 아이는 미소를 잃지 않으며 우아하게, 그리고 살짝 '버터 발음'으로 아티스트 이름을 댄다.

"리프 가렛". '응? 누구지?. 나는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팝 상식이 전무한 내가 알리 없고

심지어 있다고 해도 '레이프 가렛'(후에 알았지만)을 이렇게 발음했으니 전혀 생소한 가수로 생각했을 터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약간 창피한 얼굴로 "엘,,비스 프레슬리".

여자아이는 웃음기 띤 목소리로 말한다. "오울리비어 누턴 잔"(올리비아 뉴튼 존).

아이는 마치 팝송의 한 소절을 부르는 듯이 멋지게 가수 이름을 읊는다.

나에게 이미 승부는 상관없다.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그 아이의 목소리를 바로 코 앞에서 듣는 일이

행복했다. 아니다, 정신 차리자. 이대로 물러나면 시시하고 별 볼일 없고 유치한 여느 남자아이와 다름없이

나는 그 아이로부터 쓸쓸히 퇴장하는 것이다.


순간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을까

43년 전의 내가 기특하다(?).

"마빈 헤글러".

그 아이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어? 한방 맞은 표정이다.

"누구야? 첨 듣는 이름인데?"

"야, 너 이 사람 몰라? 미국에서 엄청 인기 있는 흑인 가수야."

아이는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을 짓지만 딱히 반박할 정보가 없다.

'당연하지, 지금 전 세계 복싱계를 주름잡는 슈퍼스타인데 네가 그걸 알리 없지'.

"슈가레이 레너드". "토마스 헌즈". "로베르토 듀란".

복싱 슈퍼스타들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축구클럽이다.

"리버풀, 너도 알지? 영국의 유명한 그룹이야". 사실 리버풀은 비틀스의 고향이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맨체스터". "보루시아 MG".

아이의 얼굴 표정은 당혹감에서 서서히 '놀라운 경외'의 표정으로 변한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차범근 감독의 소속팀이었던 '프랑크푸르트'로 승부의 쐐기를 박는다.


기껏 스포츠 상식을 뽐내며 승리를 쟁취한, 의기양양했던 기쁨은 하루도 가지 못했다.

나는 급격하게 '현타'가 왔고 혹시 사기극이 들통이 나서 그 아이의 '경외감'이 '혐오감'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던 기억이 있다.


철없는 12세 아이는 좋아하는 여자아이 앞에서 멋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1980년대는 음악 역사에서 기술적 혁신, 장르의 다양화, 글로벌 아이콘의 등장 등로 특징되는 기념비적인 시대이다.

이 매력적인 시기에 대한 몇 가지 평가와 의미를 간단히 살펴보자.


기술적 혁신과 음악 산업의 변화

미국의 음악 비평 웹진인 '피치포크 매거진'은 80년대를 '큰 격변과 혁신의 시대였으며, 당시 심어진 씨앗은

계속해서 번창하고 있다'라고 정의했다.

이 시기에는 디지털 리코딩이 대중화되면서 신시사이저와 전자 사운드가 팝 음악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고,

이를 통해 신스팝, 테크노와 같은 장르가 발전했다.


장르의 다양성과 융합

80년대는 록 음악을 중심으로 신스팝, 뉴웨이브, 하드코어 펑크, 힙합 등 다양한 장르가 등장하고 발전한 시대이다.

전문가들은 이 시대를 "음악적 다양성과 독창성이 살아 숨 쉬던 황금기"라고 평가한다.

특히 신스팝과 뉴웨이브는 전자악기와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팝 음악 사운드를 혁신했고, 힙합,

헤비메탈, 하드록 등은 각기 다른 청중 층을 형성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바야흐로 장르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충만했던 '음악의 르네상스'시기라 말할 수 있다.


MTV의 탄생

1981년 MTV의 탄생은 음악 산업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강렬한 뮤직비디오는 새로운 아티스트를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이미지'가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MTV는 영국을 위시한 유럽의 뉴웨이브 뮤지션들이 '뮤직 비디오' 한편만으로도

미국시장에 침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는데 이는 결국 '듀란 듀란', '휴먼리그', '컬처클럽',

유리스믹스' 등의 엄청난 인기를 견인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 신드롬을 1960년대 '비틀스' 이래로 '2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일컬었다.


글로벌 팝 아이콘의 시대

80년대는 마이클 잭슨, 프린스, 마돈나, 휘트니 휴스턴과 같은 글로벌 슈퍼스타들이 등장한 시기였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압도적인 음악성과 대중성으로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는 '레전드'들이

대거 등장한 말이 안 되는 '만화 같은 시절'이었다.






엉망진창의 그 '지식대결' 이후, 필자도 '팝음악'이란 것을 알고 싶어졌다.

그 아이를 사로잡았던 수많은 영국의, 미국의 아티스트들이 궁금해졌다.

맑은 얼굴과 똑 부러지는 눈매를 지녔던 그 아이가 따라 불렀을 '팝송리스트'들을

나도 만들고 싶었다.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고 팝송 프로그램을 청취했다.

디제이가 원하는 곡을 소개하는 순간 전광석화같이 '레코드'버튼을 눌렀고

다양한 아티스트의 명곡들을 녹음한 수많은 '카세트테이프'가 쌓여갔다.

주말 오전에는 AFKN 채널에서 송출하는 '케이스 케이즘'의 '아메리칸 탑 40'를 들었고

밤에는 '황인용의 영팝스' 코너 중 하나인 '리퀘스트 탑 10'(코너명은 기억나지 않는다)을

열렬히 듣곤 했다.


황인용의 영팝스 - 내 최애 프로그램. 그 당시 KBS FM에서 밤 8시에 송출되었던 걸 기억한다


황홀한 경험이었다. 매주 새로운 밴드들이 등장하고 전설적인 '뮤직 아이콘'들이 신곡을 선보였다.

인생의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청소년 시기, 필자는 '80s 음악들의 '축복받은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80년대의 '컬처 바이브'는 나를 규정하는 확실한 문화적 취향을 정립하게 했다.


말도 안 되는 '사기극'으로 점철되었던 그 '지식대결' 이후로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거나

다시 '리벤지 매치'격의 재대결을 한 기억은 없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우연히 '그 아이'와 마주친 적도 없었다.

아마도 나는, 다시 그 아이 앞에 나타나 '당당하지만 달콤한 지식대결'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열심히 '팝음악'을 듣고 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속)






















keyword
이전 01화POP ODYSSEY '80s (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