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프린스'의 'Purple Rain'
2023년 7월 26일. 아일랜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편견과 혐오, 불의에 대한 투철한 저항의식의
사회운동가인 시너드 오코너(Sinéad O'Connor)가 향년 56세의 나이로 별세한다.
오코너는 뛰어난 음악성과 진정성, 사회적 용기를 지녔음에도, 사회적 편견과 논란, 정신적 고통 속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전 세계 언론매체와 셀럽 및 대중들은 뒤늦게 이 비운의 아티스트의 용기와 예술성에 경의를 표하고 갑작스러운 별세를 애도했다.
밴드 '더 스미스'의 보컬 '모리세이'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녀가 살아있었을 때, 그녀가 당신들을 필요로 했을 때는 당신들은 그녀를 응원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라는 말로 수많은 비난으로 오코너를 고립되게 만들었던 언론과 정작 누구보다 외로웠을 그녀를 외면했던 대다수의 대중을 비꼬았다.
오코너는 여성, 아일랜드인, 그리고 종교적·정치적 소수자로서 음악 산업의 고정관념에 맞서 싸웠다.
1992년 SNL에서 교황의 사진을 찢으며 가톨릭 교회 내 아동 성학대 문제를 고발한 사건은 전 세계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행동은 당시 거센 비난과 보이콧, 언론의 조롱을 불러왔지만, 훗날 교회의 성범죄가 드러나며 그녀의 용기와 선견지명이 재평가를 받았다.
또한 미국 국가 연주 거부, 그래미 시상식 보이콧, IRA(아일랜드 공화군) 지지 등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고, 이로 인해 대중과 언론의 거센 비난과 고립을 감수해야 했다. 평생 정신 건강 문제와 사생활의 어려움, 종교적·정체성의 변화(2018년 이슬람 개종) 등 개인적 시련도 겪었다.
오코너는 “팝스타는 감옥에 갇힌 것과 같다. 착한 소녀처럼 굴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며, 대중과 미디어가 여성 아티스트에게 강요하는 이미지와 편견에 맞서 싸웠다. 레이블이 그녀를 ‘10대 팝퀸’으로 포장하려 하자 직접 머리를 밀고, 거친 청바지와 군화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https://youtu.be/0-EF60neguk?si=fAOymt_APZ6-vVTM
1990년 오코너의 두 번째 앨범, '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 중 타이틀 곡 'Nothing Compares 2 U'는 그의 깊고 절제된 보컬과 상징적인 뮤직비디오로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이 곡은 미국 빌보드 핫 100, 영국, 아일랜드 등 주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1990년을 대표하는 발라드가 됐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독자 여러분은 이 곡의 원작자가 '프린스'라는 사실을 아시는가.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평생을 저항했던 시너드 오코너의 대표곡, 'Nothing Compares 2 U'의 작사, 작곡을 프린스가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필자는 전혀 접점이 없을 듯할 이 두 아티스트의 기묘한 인연에 주목했다.
그리고 '프린스'야말로 '시너드 오코너'처럼 뛰어난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회적 편견으로 생전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예술가의 상징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https://youtu.be/UG3VcCAlUgE?si=GuGOZb4C931ZbzGl
1984년은 5월 16일. 프린스의 6번째 앨범 '퍼플 레인'에서 첫 싱글 'When Doves Cry'가 발매된다.
이 곡은 프린스의 최대 히트곡이며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곡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된다. 빌보드 핫 100에서는 5주 1위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 히트를 기록하였으며, 1984년 빌보드 연말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이 노래는 1984년을 지배한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 '퍼플레인'은 미국에서만 1,300만 장 이상을 판매하여 13X 플래티넘 인증(100만 장 판매 시 플래티넘)을 받았으며, 전 세계적으로 2,500만 장 이상의 인증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퍼플레인'의 성공은 프린스를 그저 훌륭한 '블랙 뮤직 아티스트'에서 세계적인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고, 1983년 'Thriller'의 대성공으로 한 발 앞서 나가는 듯했던 '마이클 잭슨'과의 '라이벌리'관계(물론 이 모두 경박한 언론과 대중의 설레발이지만)가 더욱 치열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그 당시 필자는 이러한 경쟁 관계 자체를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겼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의 위상과 인기는 비교가 되지 않았기에 몇몇 소수의 팝 마니아들을 제외하곤 "프린스 얘 뭐니?, 어디서 마이클 잭슨과 비교를 해!"라는 분위기였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는데 일단 프린스의 음악은 너무 낯설었고, 특히 그의 중성적인 보이스, 파격적인 패션 스타일, 그리고 너무 도발적이고 성적인 무대 퍼포먼스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 당시 겨우 중학생에 불과한 필자의 협량 한 음악적 지식으로 감당하기에 '프린스'는 지나치게 혁신적인 뮤지션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고등학교 진학 후 '록음악'에 심취하게 되자마자 '프린스'라는 아티스트의 위대함을 바로 깨닫게 된다.
위대한 기타리스트, '프린스'
80년대를 대표한 팝스타의 이미지에 가려있지만 프린스는 록 역사상 기록될 위대한 기타리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하나라고 불리는 '제프 벡'이 함께 공연하고 싶은 연주자로 꼽았고
'프랭크 자파', '알카트라즈' 그룹 등에서 활동하고 누구보다 개성 있는 연주기법으로 유명한 기타리스트 '스티브 바이'는 "세상엔 수많은 속주 기타리스트들이 있지만,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영혼까지 드러내는 자는 손에 꼽습니다. 영혼을 드러내는 수준의 연주자 중 한 사람이 프린스입니다."라고 극찬했다.
롤링스톤 紙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에서 33위를 기록하였고, 개정판에서는 무려 14위를 차지했다. 사실 프린스 급의 팝스타가 이런 순위를 차지한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오히려 실력으로만 따지면 이 평가도 너무 저평가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성에 대한 노골적인 퍼포먼스와 가사, 패션, 기행으로 무장한 팝스타라는 이미지가 굳건해서 기타리스트를 포함한 악기를 소화하는 실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은 것이다.
롤링 스톤지에서 저평가된 기타리스트 중 1위(!)로 선정된 적이 있을 정도이니 그의 연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https://youtu.be/dWRCooFKk3c?si=cEtEduefJgyVq7BO
와!! 다시 봐도 정말 전율 가득한 기타 연주다. 현란하고 눈부신 기타 속주를 마치고 객석으로 기타를 던져버리는 퍼포먼스까지!! 완벽 그 자체이다.
록음악에 심취한 필자도 이제 프린스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단순히 퍼포먼스에 치우친 그저 그런 '팝스타'가 아닌 기타, 베이스, 드럼, 피아노, 키보드, 심지어 색소폰 등 20여 종 이상의 악기를 직접 연주하며, 작곡·편곡·프로듀싱·보컬까지 모두 소화하는 천재적인 뮤지션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제야 필자는 그의 필생의 곡 'Purple Rain'을 제대로 듣게 되었다.
에릭클랩튼을 구원한 노래, 'Purple Rain'
에릭 클랩튼은 1980년대 심각한 알코올과 약물 중독, 음악적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그는 “락앤롤이 죽었다고 생각하던 시기, 캐나다에서 우연히 영화 ‘퍼플 레인’을 보게 됐다. 프린스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마치 벼락처럼 나를 강타했다. 깊은 우울과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본 느낌이었다”라고 회상했다.
“프린스는 리틀 리처드, 지미 헨드릭스, 제임스 브라운이 한 몸에 들어간 천재였다. 그 영화와 음악이 내게 큰 영감을 줬고, 호텔방에서 빈 맥주캔에 둘러싸여 ‘Holy Mother’라는 곡을 썼다. ‘퍼플 레인’은 내 인생의 구원자 같은 곡이었다”라고 밝혔다. 이후 그는 프린스의 천재성을 공개적으로 극찬하며, 실제로 자신의 공연에서 ‘퍼플 레인’을 커버하기도 했다.
https://youtu.be/LmreqNFyEvQ?si=mgvd1TQ1zcpeZswI
프린스의 인생과 철학이 집약된 걸작, 'Purple Rain'
'Purple Rain'은 그의 인생과 철학이 집약된 작품이다. 이 곡은 단순한 이별 노래를 넘어, 상처와 슬픔, 용서와 변화, 영적 구원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룬다. 프린스는 “퍼플 레인”을 ‘붉은 피(고통)와 푸른 하늘(신성)이 섞여 탄생하는 영적 재생의 순간’으로 해석했다. 이는 그가 평생 추구한 예술적·영적 자유, 사랑과 용서, 자기 초월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Purple Rain'은 원래 컨트리 발라드로 시작해, 밴드 리허설에서 리드 기타리스트 '웬디 멜보인'의 기타 연주가 더해지며 록과 가스펠의 색채가 가미됐다. 곡은 B-flat 장조로 쓰였으며, 초반부의 절제된 피아노와 보컬, 점차 고조되는 기타와 스트링, 후반부의 폭발적 기타 솔로와 합창으로 이어진다. 프린스의 보컬은 낮은음에서 고음까지 넓은 음역을 소화하며, 감정의 진폭을 극대화한다.
가사는 이별과 후회, 용서, 변화, 영적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는 너에게 슬픔을 주려던 게 아니었어. 단 한 번 너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라는 고백으로 시작해, “퍼플 레인 속에서 너를 보고 싶어”라는 후렴구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이끈다.
곡의 마지막은 합창과 기타 솔로가 어우러지며, 집단적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연주 측면에서는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특별제작된 ‘더 클라우드’ 기타, 그리고 프린스의 시그니쳐 기타인 '호너 매드캣 텔레캐스터', 그리고 오버하임 OB-Xa, 야마하 DX-7 등 80년대 혁신적 신시사이저 악기들이 동원됐다. 기타 솔로는 록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블루스와 가스펠의 감성을 담아내며 곡의 정서적 정점을 극한으로 이끌어낸다. 가히 전체 록 음악 역사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곡 중의 명곡이다.
자주 볼 수 있는 공식뮤비가 아닌 1985년 아메리카 뮤직 어워드 실황공연을 보자. 라이브에서 드러나는 그의 카리스마는 정말 압도적이다.
https://youtu.be/VbEv8C9Cff0?si=p3y8zg4lnYU6zuAO
음악 산업의 관행과 대형 레이블의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다
프린스는 평생 음악 산업의 관행에 저항하고, 아티스트의 저작권 및 창작의 자유를 위해 거대 자본 기업에 반기를 든 진정한 혁신가였다.
프린스는 워너브라더스와의 계약에서 자신의 음악의 소유권과 발매 시기, 마케팅 방식 등에 대한 통제권을 거의 갖지 못했다. 그는 레이블이 자신의 창작물을 상업적 이익에 맞게 통제하고, 아티스트를 ‘생산 기계’처럼 취급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발해 1993년에는 본명 ‘프린스’ 대신 발음할 수 없는 ‘러브 심벌(기호)’로 공식 이름을 바꾸고, 얼굴에 ‘SLAVE(노예)’라는 글자를 새기고 무대에 올랐다. 이는 계약상 자신의 이름과 음악이 레이블에 귀속되어 있다는 현실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었다.
프린스는 워너브라더스와의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수년간 법정 싸움을 벌였으며, 계약 종료 후에는 직접 자신의 인디 레이블(NPG Records)을 설립해 음악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의 스튜디오(페이즐리 파크)에서 직접 녹음·프로듀싱을 하며, 마스터 테이프의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프린스는 디지털 음원 시대에도 자신의 음악이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유튜브, 스포티파이 등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자신의 음악을 철수시키고, 저작권 침해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아티스트의 정당한 수익 배분과 창작물 보호를 위해, 타이달(TIDAL) 등 아티스트 친화적 플랫폼과만 독점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은 당시에는 ‘반항’이나 ‘이단아’로 비쳤지만, 오늘날 아티스트의 권리와 창작의 자유를 논할 때 프린스의 투쟁은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프린스는 과연 과소평가된 아티스트인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은 물론 그의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함에도(앞에 기술한 다양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프린스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과소평가된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는가?
필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대한민국으로 질문을 국한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프린스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비슷한 경배와 칭송을 받아 마땅한 아티스트라 생각한다.
오히려 그가 가진 천재성에 비해 대중과 평단의 평가는 초라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다.
필자가 마음대로 생각하는 프린스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프린스는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혁신적인 음악가였지만, 대중과 평단은 종종 특정 장르의 틀에 맞추어 음악가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프린스는 록, 펑크, R&B, 팝, 재즈 등 다양한 스타일을 융합해 자신만의 사운드를 구축했으나, 이러한 급진적 실험성은 일부 보수적인 음악 팬이나 평론가들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 그의 음악이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된 아이러니와도 연결된다.
둘째, 프린스는 음악적 역량뿐 아니라 파격적인 무대 연출, 성적 코드, 젠더 경계 허물기 등 비음악적 요소로도 강한 주목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의 음악적 깊이나 연주·작곡·프로듀싱 능력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측면이 있다. 즉, 대중은 프린스를 화려한 퍼포머, 아이콘으로 소비하는 데 집중했고, 그의 내밀한 창작력이나 멀티 악기 연주 실력은 상대적으로 뒷전이 된 것이다.
셋째, 흑인 아티스트로서 백인 중심의 록 시장에서 활동하며, 인종적·문화적 편견에 부딪힌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프린스는 흑인 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록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확장했지만, 당시 음악 산업의 인종적 구분은 그의 진가가 온전히 평가받는 데 장애가 되었다.
그럼에도 위대한 뮤지션 프린스, 그리고 'Purple Rain'
프린스와 시너드 오코너.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무대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의 편견과 오해, 그리고 차별에 맞섰던 예술가였다. 프린스는 인종과 젠더,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음악 산업의 관습에 도전했고, 시너드 오코너는 여성 뮤지션으로서,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로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은 때로는 세상의 오해와 냉대 속에서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고독과 투쟁이 두 아티스트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퍼플 레인’은 그런 프린스의 삶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상처와 구원을 노래한다. 프린스는 “퍼플 레인”의 의미를 “세상의 끝, 피와 신앙이 뒤섞인 보랏빛 비 속에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신의 인도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곡은 후회와 용서, 상실과 화해, 그리고 신앙과 희망을 담은 노래다. 삶의 폭풍우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퍼플 레인’을 지나며, 사랑과 신념, 그리고 용기로 어둠을 건너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시너드 오코너 역시 프린스가 만든 ‘Nothing Compares 2 U’를 통해 자신의 상처와 진실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곡의 원작자를 뛰어넘어, 슬픔과 용기의 상징이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벽을 넘었고, 그 위대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새겨지고 있다.
지금도 ‘퍼플 레인’은 세대를 넘어, 시대를 넘어 울려 퍼진다. 그 안에는 프린스와 시너드 오코너처럼,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예술가의 영혼과, 우리 모두의 치유와 희망이 담겨 있다. 결국, 그들의 음악과 메시지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나는 단지 너를 퍼플 레인 속에서 웃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 프린스 로저스 넬슨 (1958 -2016) R.I.P.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