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ODYSSEY '80s (10화)

너무 일찍 떠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이야기

by 윈디박


1983년 어느 주말 저녁. 중학교에 갓 입학한 필자는 TV를 보다가 황인용 아나운서를 발견한다.

왠지 모르게 나는 황인용 아저씨(?)가 좋았다. 서글서글 사람 좋은 미소에 수더분하지만 결코 촌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황인용 MC는 어린 시절부터 브라운관(예스러운 표현이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러나 중학생 남자아이가 중년의 남자 아나운서에게 팬심까지 가지게 된 것은 다소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그 당시 '황인용의 영팝스'의 열렬한 애청자였다. 팝에 눈 뜬 사춘기 소년에게 황인용의 영팝스는 훌륭한 '팝의 입문서'와도 같았다.

매일 밤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TV에 나왔으니 어찌 반갑지 않았을까.

그런데 오늘 뭔가 기분이 유난히 밝아 보이신다. 시청자들이 좋아할 비장의 '클립'이 있어서일까.

그날 밤, 나는 황인용 아저씨가 소개하는 내 평생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불멸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이었다.


https://youtu.be/oRdxUFDoQe0?si=RfKbQzs5RfAZ1Fr_

마이클 잭슨 'Beat It' 공식 뮤직 비디오



넋을 잃고 본 압도적 슈퍼스타의 존재감

TV 화면에 나타난 마이클 잭슨은 그야말로 다른 세상의 존재였다. 빨간 가죽 재킷을 입고 등장한 그의 모습은 내가 그때까지 본 그 어떤 연예인과도 달랐다. 20대의 마이클 잭슨은 화면을 통해서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냈고, 나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빨려 들었다.

에디 반 헤일런(한참 후에 알았지만)의 기타 솔로가 터져 나올 때의 전율, 그리고 마이클이 보여주는 그 독특한 춤사위들. 문워크는 물론이고, 어깨를 들썩이는 작은 동작 하나까지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비디오 클립이 끝나고 스튜디오에서 황인용 아저씨의 코멘트는 대충 이러했다.

"와, 진짜 대단하네요, 마이클 잭슨. 이제 겨우 20대 청년이 정말 완벽한 춤과 노래를 선보입니다.

그나저나 빨간 가죽 재킷을 입고 춤추고 노래하는 마이클 잭슨,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요?"

정말 그러했다. 너무나 매력적인, 압도적인 슈퍼스타의 모습, 단순히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해서가 아닌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보는 이의 상상력과 감정을 한순간에 뒤흔드는 힘을 가진 존재. 마이클 잭슨은

수많은 사람들을 단번에 황홀경에 빠지게 만드는 아티스트였던 것이다.


팝 오디세이 10화이며 연재의 마지막 이야기는 이견이 없는 '팝의 황제'이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 '몽상가'였던 '마이클 잭슨'이다.





잭슨파이브의 신동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1958년 인디애나 게리에서 태어난 마이클 조지프 잭슨은 10남매 중 여덟째였다. 1964년 겨우 6세의 나이로 형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를 결성하며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베리 고디의 모타운과 계약하며 세계적 스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9년 솔로 앨범 '오프 더 월'로 독립적인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그는, 1982년 'Thriller'를 통해 팝의 역사를 뒤흔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전 세계 6,7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 이 앨범은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남아있다. 'Billie Jean', 'Beat It' 등 수록곡들은 모두 팝 음악의 고전이 되었고, 특히 1983년 모타운 25주년 기념 방송에서 선보인 문워크는 그를 팝 문화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https://youtu.be/ZXmjhRkPVFc?si=oSMmqGZry-y8vc3t

트레이드 마크인 '문워크'를 선보인 모타운 25주년 기념공연 중 'Billie Jean'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음악을 통해 인종의 벽을 허문 것이었다. 당시 MTV에서 흑인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는 거의 방송되지 않았지만, 마이클의 'Billie Jean'과 'Beat It'은 이 장벽을 무너뜨렸다.

그의 성공은 후배 흑인 아티스트들이 주류 음악계에 진입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셈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마이클 잭슨. 그러나 뜻하지 않는 불행이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콜라 전쟁 속에서 피어난 비극의 씨앗

1980년대는 콜라 전쟁의 시대였다. 펩시와 코카콜라가 벌인 치열한 마케팅 경쟁 속에서, 펩시는 결정적인 한 수를 두었다. 바로 그 시대 최고의 슈퍼스타, 마이클 잭슨을 모델로 기용한 것이다. 5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계약금을 지불하며 펩시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콘으로 마이클을 내세웠다.


https://youtu.be/po0jY4WvCIc?si=-mwNBfTpQIAj84XB

마이클 잭슨이 모델로 출연한 펩시 광고 'New Generation'


하지만 1984년 1월 27일, 로스앤젤레스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벌어진 펩시 광고 촬영 현장에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시작되었다. 'Billie Jean'을 개사한 '펩시 광고 Song'을 부르며 춤추던 마이클의 머리카락이 폭죽 특수효과에 의해 불에 타면서, 그는 심각한 2, 3도 화상을 입었다. 3천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의 머리, 그리고 들것에 실려 나가면서도 팬들을 안심시키려 했던 그의 모습이 전 세계에 방송되었다. 끔찍하고 불행한 사고였다.

마이클 잭슨은 이 사고 후. 여러 차례의 성형수술과 피부이식, 그리고 무엇보다 극심한 통증을 견디기 위한 진통제 복용을 하기 시작한다. 훗날 마이클 자신이 고백했듯, 1993년 "두피 재건수술 후 극심한 고통을 달래기 위해 처방받은 진통제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5세 청년의 인생을 바꾼 그 순간, 펩시는 단기적 매출 증가를 얻었지만 팝의 황제에게는 불행의 씨앗을 심어준 셈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시련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평생을 따라다닌 의혹과 음해

엄청난 성공과 함께 그를 따라다닌 것은 끊임없는 의혹과 언론의 악의적인 음해였다. 1993년부터 시작된 아동 성추행 의혹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언론은 그의 변화하는 외모, 네버랜드 목장에서의 독특한 생활, 그리고 어린이들과의 관계를 자극적으로 다뤘다. 2005년 재판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미 그의 명성과 정신적 건강은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그는 네버랜드를 떠났고, 바레인과 아일랜드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재정적 어려움과 건강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시선에 지친 그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마이클 잭슨은 법적으로는 주요 성추행 혐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그의 사후에도 의혹이 반복적으로 제기되며 대중적 논란의 중심에 서곤 했다.

그의 음악적 업적과 별개로, 평생을 따라다닌 의혹과 음해는 잭슨의 삶을 비극적으로 만든 또 다른 짙은 그림자였다.


팝의 황제, 그 위대한 업적과 유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잭슨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은 단순히 성공한 가수를 넘어, 20세기 대중문화를 정의하고 그 지형을 바꾼 위대한 예술가였다. '팝의 황제(King of Pop)'라는 칭호는 그의 업적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수식어에 불과하다. 그의 위대함은 음악, 춤, 뮤직비디오, 그리고 사회문화적 영향력 등 다방면에 걸쳐 나타난다.


마이클 잭슨은 팝, 록, R&B, 펑크 등 다양한 장르를 완벽하게 융합해 자신만의 사운드를 창조했다. 어린 시절 잭슨 파이브의 리드 보컬로서 보여준 독특한 보컬 스타일은 솔로 활동을 통해 더욱 발전했으며, 그의 음악적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무대 위에서 그는 문워크(Moonwalk)나 로봇 댄스 같은 혁신적인 춤 동작을 대중화시키며, 퍼포먼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는 음악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것'으로 만들며, '엔터테이너'의 개념을 재정립했다.


뮤직비디오 혁명

마이클 잭슨 이전의 뮤직비디오는 노래를 홍보하기 위한 단순한 영상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Billie Jean', 'Beat It', 그리고 'Thriller'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뮤직비디오를 정교한 스토리텔링과 시각적 예술성을 갖춘 하나의 독립된 예술 형식으로 격상시켰다. 특히 존 랜디스가 감독한 14분짜리 단편 영화 형식의 'Thriller'는 뮤직비디오 산업의 혁명을 일으킨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음악적 성취

마이클 잭슨이 성취한 수많은 업적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Thriller (1982>):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전 세계적으로 6천만에서 1억 장 이상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미 어워드>: 1984년 한 해에만 8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총 13개의 그래미상을 받았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 잭슨 파이브의 멤버로서(1997년), 그리고 솔로 아티스트로서(2001년) 두 번 헌액 되었다.

<Bad (1987)>: 역사상 최초로 한 앨범에서 5개의 빌보드 핫 100 1위 싱글을 배출했다.


영원한 유산과 영향력

그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비욘세, 저스틴 팀버레이크, 브루노 마스 등 수많은 현대 아티스트들이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공언한다. 음악적 업적 외에도 그는 자선 활동에 헌신한 인도주의자이기도 했다. 1992년 설립한 힐 더 월드 재단을 통해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의료 지원과 아동 학대 방지 활동을 펼쳤고, 펩시 사고 배상금 150만 달러를 마이클 잭슨 화상 센터 설립에 기부하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은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를 넘어, 음악과 춤, 문화를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묶고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는 영원한 아이콘으로 남아있다



2009년 6월 25일, 세상이 멈춘 그날

2009년 6월 25일 오후 2시 26분(태평양 표준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마이클 잭슨이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개인 주치의 콘래드 머레이가 침실에서 의식을 잃고 맥박이 약해진 그를 발견했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소용없었다. 50세, 팝의 황제는 그렇게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TMZ가 처음 보도한 이 소식은 18분 만에 전 세계로 퍼졌다. 구글은 마이클 잭슨 관련 검색이 폭주하자 디도스 공격으로 오인해 30분간 검색을 차단했고, 트위터는 마비되었다. 위키피디아는 한 시간 동안 거의 100만 명이 마이클 잭슨의 전기를 검색하며 사상 최대 접속자 수를 기록했다. UCLA 메디컬 센터 앞에는 수제 플래카드와 촛불을 든 팬들이 몰려들었고, 뉴욕 아폴로 극장, 디트로이트의 모타운 박물관, 심지어 고향 인디애나 게리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Gone Too Soon', 너무 일찍 떠난 별을 위한 진혼곡

2009년 7월 7일,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 추도식에서 가수 어셔(Usher)는 마이클 잭슨의 'Gone Too Soon'을 부른다. 선글라스를 쓰고 노란 장미를 가슴에 단 어셔는 황금빛 관에 손을 얹고 마지막 가사를 눈물 속에서 불러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곡이 원래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13세 소년 라이언 화이트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라는 점이다. 1991년 '데인저러스' 앨범에 수록된 이 발라드는 "불치의 병에 걸린 어린아이"를 그리며 만들어졌지만, 18년 후 그 노래가 작곡자 자신의 애도곡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Like a comet blazing cross the evening sky, Gone too soon"(저녁 하늘을 가로지르는 혜성처럼, 너무 일찍 떠났다)


https://youtu.be/x0BwVIPm8ko?si=EYy3oCPaWQ7F3z7C

'Gone Too Soon'을 부르며 마이클 잭슨을 추도하는 Usher


마이클 잭슨은 음악적 혁신과 인류애, 그리고 영원한 예술적 유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단순한 팝스타가 아니라, 세상을 사랑으로 변화시키려 했던 진정한 예술가이자 인도주의자였다.


“그는 음악, 춤, 엔터테인먼트의 혁신가였고, 세대에 영감을 주었으며, 시대를 앞선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그러나 덜 알려진 것은, 그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재산을 나눴는가이다. 그는 사랑과 연민으로 세상을 바꾸려 한 예술가였다.”
– Michael Jackson’s Legacy 재단


“마이클 잭슨은 사랑과 자비, 정의에 대한 우리의 공통된 필요를 일깨워주었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남겼다.”
– Michael Jackson’s Legacy 재단


“별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저 미소로 변해 우주의 음악, 삶의 춤 속으로 녹아든다.”

–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의 이야기를 끝으로 연재를 마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80년대 팝을 추억하고 반주하는 일만으로 행복했다.

작은 기쁨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독자들이 있어서 더욱 감동이었다.

남루한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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