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U2', 'With Or Without You'
다소 내향적인 성향의 필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필생의 '로망'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였다. 간혹 대학시절의 축제나 회사 연말 행사에서의 중창 모임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긴 했으나 일렉트릭 기타, 드럼,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완전체의 록 사운드 앞에 서는 '프런트맨'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2012년의 필자는 직장인에게 정기적(?)으로 오는 번아웃 증상으로 무척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무기력감에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 끝에 찾은 결론은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록 밴드의 보컬로 무대에 서자'였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필자는 커뮤니티를 서칭 하며 최대한 허들이 낮은 '직장인 밴드' 동호회를 찾았다.
지금도 홍대 근처의 연습실에 처음 문을 두드리는 날이 기억난다.
2-30대의 청춘들이 대부분인 밴드 동호회에서 나 같은 나이 든 아재의 등장은 참으로 어색한 풍경이었다.
동호회의 이름은 '언네임드'. 음악에 열정이 있지만 이름 없는 순수한 아마추어들의 공간이라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수준은 적어도 나에게는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혼자 겨우 찾아간 작은 연습실 문 너머론 '아이언 메이든'의 해비 한 금속성 소리와 엄청난 수준의 보컬 사운드가 가득했다.
40이 훨씬 넘은 필자가 그 연습실 문을 열기가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지 여러분들은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밴드 동호회의 규칙은 간단했다.
1. 일단 정기 모임에 참석하여 사람들과의 안면을 튼다.
2. 자신의 지원 분야와 관심 있는 음악을 교류하고 밴드를 결성한다.
3. 정기공연(!)에 지원하고 심사를 받고 통과하면 무대에 오른다(!)
1번을 하기 위해서는 정기 모임이 끝난 후에 항상 진행되는 뒤풀이 자리 참석이 필수다.
내향적인 필자는 뒤풀이 자리에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평소 직장 생활보다 훨씬 더 열심히 엄청난 영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착한 동호회 친구들은 나이 든 형을 잘 대해줬고 정말 천만다행으로 밴드를 결성할 수 있었다.
드디어 대망의 정기공연을 위한 밴드의 곡 선정의 날!!
필자는 떨리는 마음으로 내 필생의 곡을 소개했다. 바로 U2의 'With Or Without You'.
그런데 밴드 멤버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이 곡의 심장 격인 기타 파트의 친구가 한마디 한다,
"형, 이 곡은 건드리는 게 아니에요." 다급한 내가 반론을 제기한다. " 왜, 엄청난 감동이 있는 노래자나. 코드 진행도 쉬워."
"기타 사운드가 장난 아니에요, 그런 이펙트 사운드는 저는 못해요. 죄송해요, 형."
상심한 필자는 그날 뒤풀이에서 술을 엄청 마셨다. 인생 뭐 마음대로 되는 게 없구나 한탄을 할 때 한 친구가 내 자리로 온다.
나는 순간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는데 이 친구야말로 동호회 내에서도 손꼽히는 기타 실력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추어 동호회지만 실력의 편차로 엄연한 신분의 차이(?)는 존재했다. 이렇게 실력자를 알현하는 건 처음이었다.
"형님, U2 좋아하시나 봐요? 아까 들었어요." "어, 미치지, 아주." 바보 같은 리액션이라니.
"제가 해도 될까요? 저도 U2 좋아하거든요. 근데 여기서 한 번도 U2하자는 친구가 없어서요. 형님 용감하시고 멋있어요."
순간 귀를 의심했고 다음 순간 너무 좋아 이 기특한 녀석의 손을 덥석 잡은 기억이 있다.
"그 곡의 기타 사운드는 U2 기타리스트가 특수 제작된 기타로 연주했을 거예요. 그래서 독특한 딜레이 사운드가 나와요.
일반 기타로는 그 소리를 내기가 힘들죠. 근데 형, 저 그 사운드 내려고 옛날에 연습 많이 했어요, 하하."
무식한 필자는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모르겠고 일단 엄청난 기타리스트를 영입한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U2의 그 기타 사운드가 엄청 어려운 'With Or Without You'로 심사에 통과했고 대망의 소극장 정기공연을 할 수 있었다. 간단한 공연 후기가 뒤에 있으니 기대해 주시라.
1980년대 팝 음악계를 떠올릴 때, 화려한 신시사이저, 과장된 헤어스타일, 그리고 눈부신 네온사인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찬란한 소음의 시대 한가운데서, 가장 조용하게 시작하여 가장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록의 명곡이 있었다. 바로 아일랜드의 록 밴드 U2의 'With or Without You'다.
이 곡은 단순한 사랑 노래를 넘어, 한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영적인 탐구, 그리고 관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뇌를 담아내며 시대를 관통하는 불멸의 명곡으로 자리 잡았다.
U2, 더블린에서 온 네 명의 친구들
U2는 197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결성되었다. 보노(Bono, 보컬/리듬 기타), 디 에지(The Edge, 리드 기타/키보드), 애덤 클레이턴(Adam Clayton, 베이스 기타), 래리 멀린 주니어(Larry Mullen Jr., 드럼)까지, 10대 시절 마운트 템플 종합학교에서 만나 음악을 시작한 네 멤버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멤버 교체 없이 밴드를 지켜왔다. 초기 포스트 펑크에 뿌리를 둔 그들의 음악은 점차 진화했지만, 보노의 표현력 넘치는 보컬과 디 에지의 독특한 이펙트 기반 기타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장엄한 사운드의 품격은 늘 유지되었다. 특히 영적인 이미지가 가득한 보노의 가사는 개인적인 주제와 사회 정치적 문제를 아우르며 U2를 단순한 록 밴드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The Joshua Tree' 사막에서 발견한 영혼의 지도
'With or Without You'가 수록된 앨범 The Joshua Tree는 1987년에 발매된 U2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이 앨범은 U2를 세계적인 슈퍼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최고의 비평적, 상업적 성공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2,5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앨범의 핵심은 '약속의 땅'이라는 이상과 실제 미국 사회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탐구하는 것이다. U2는 미국과 아일랜드 포크 음악의 뿌리를 탐구하며, 광활한 사막이라는 공간을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앨범에서 사막은 단지 미국의 풍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적인 가뭄, 영혼의 황량함, 그리고 폭력과 꿈이 공존하는 현실에 대한 상징이다. 앨범의 제목이 된 '조슈아 트리'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나무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향해 기도하듯 팔을 뻗는 믿음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The Joshua Tree는 정치적, 영적으로 매우 밀도 높은 앨범이며, 광활한 외부 세계와 가장 내밀한 마음의 문제를 연결하는 U2 음악의 정수를 보여준다.
갈등의 상념 속에서 태어난 멜로디
'With or Without You'는 1985년 말에 녹음된 데모에서 시작되었지만, 앨범 작업 내내 밴드는 이 곡을 완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곡이 거의 폐기될 뻔한 순간, 보노의 친구이자 가수인 개빈 프라이데이(Gavin Friday)가 스튜디오를 방문해 데모를 들어보고는 "이건 히트곡"이라며 밴드를 격려했다.
결정적으로 디 에지는 프로토타입 '인피니트 기타(Infinite Guitar)'를 선물 받았는데, 이 기타는 음을 무한정 지속시키는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동호회 친구들이 그래서 이 기타 사운드를 어려워 했구나). 이 새로운 악기가 곡의 돌파구가 되어 그 유명한 기타 사운드 파트가 탄생했다.
가사는 보노가 1986년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에서 보낸 첫날밤에 썼다. 당시 그는 세계적인 록 스타로서의 삶과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삶을 조화시키려는 그의 고뇌가 "당신과 함께할 수도, 당신 없이 살 수도 없다(I can't live with or without you)"는 이중적인 가사의 핵심 영감이 되었다.
침묵과 폭발의 미학
'With or Without You'는 부드러운 시작에서 압도적인 클라이맥스로 점차 고조되는, 독창적으로 편곡된 곡이다.
곡은 '애덤 클레이턴'의 단순하지만 심장 박동처럼 울리는 베이스라인과 '디 에지'의 인피니트 기타가 만들어내는 절제된 분위기로 시작한다. 래리 멀린 주니어의 드럼은 점차 강도를 높여가고, 마침내 이 곡의 시그니처인 디 에지의 딜레이 이펙트가 걸린 기타 리프가 터져 나오며 감정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곡은 격렬한 기타 솔로 대신, 마지막에 미니멀하고 절제된 기타 연주로 마무리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곡에서 보노의 보컬은 그의 커리어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그는 당시 그의 스타일과 대조적으로 매우 낮은 음역에서 노래를 시작하며, 두 소절 반 동안 낮은 음역에 머무른다. 이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곡이 진행됨에 따라 그의 목소리는 점차 격정적으로 변하고, 클라이맥스에서는 더블 트래킹된 "Oh-oh-oh-ohh"라는 절규에 가까운 보컬로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섬세한 가성으로 노래를 마무리하며 감정의 파고를 완성한다. 가사는 표면적으로는 고통스러운 사랑 노래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내면적 갈등이 담겨 있다. "See the stone set in your eyes / See the thorn twist in your side"와 같은 구절은 관계 속의 고통과 상처를 암시한다. "My hands are tied / My body bruised"라는 표현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그로 인한 절망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Through the storm, we reach the shore"라는 구절을 통해 역경을 극복하고 안식처를 찾으려는 희망 또한 노래한다. 여기서 '당신(You)'은 연인, 신, 혹은 그가 동시에 살아가야 했던 두 개의 다른 자아 등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중과 평단의 찬사, 상업적 성공
'With or Without You'는 발매와 동시에 비평가들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았다.
롤링 스톤은 "진정으로 장엄한 곡"이라며 "차분한 시작에서 우렁찬 클라이맥스로 이어진다"라고 평했다. 핫 프레스(Hot Press)는 보노의 가장 절제된 보컬이라 칭찬했고, 올뮤직(AllMusic)은 "귀신이 나올 듯한 로맨틱함"이라며 그의 시적인 기교를 높이 평가했다. 한편, 빌리지 보이스(The Village Voice)의 평론가 투표에서는 15위를 차지했고, 롤링 스톤 독자 투표에서는 1987년 '최고의 싱글'로 선정되었다.
이 곡은 U2에게 첫 번째 빌보드 핫 100 1위와 캐나다 차트 1위를 안겨준, 당시 밴드의 가장 성공적인 싱글이었다. 빌보드 차트에서 3주간 1위를 차지하며 U2를 세계적인 밴드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https://youtu.be/ujNeHIo7oTE?si=v6UElHRIOLjG7gwj
세대를 뛰어넘는 불멸의 록넘버
'With or Without You'는 발표된 지 4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 생명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곡은 U2의 투어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필수 레퍼토리이며, 밴드의 수많은 컴필레이션 앨범과 공연 영화에 수록되었다. 롤링 스톤 매거진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곡' 목록에서 이 곡을 131위로 선정하며 그 역사적 가치를 공인했다.
'With or without you'라는 단순한 문장 안에 담긴 관계의 모순과 인간 내면의 깊은 갈등은 특정 시대나 세대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주제다. 바로 그 점이 이 노래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며,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발라드로 남아있는 이유일 것이다.
2013년 2월 25일.
이름 없는 직장인 밴드의 공연이 작은 홍대 근처의 소극장에서 펼쳐진다.
필자의 평생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With Or Without You'의 중간 간주 타임 때 퍼포먼스도 준비했는데, 바로 지금은 대학생이 된 7살 난 아이의 깜짝 등장이었다.
사전에 아이에게 두 가지 간단한 코드를 익히게 했다. 그리고 사인을 주면 등장해서 그 코드를 무한반복하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의 '관종끼'는 그때도 대단했던 거 같다. 전혀 떨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게 연주를 하더라.
사실 원래 약속한 타임보다 더 일찍 등장했는데 이 사실을 눈을 감고 노래에 열중인 내가 인지를 못 했다.
갑자기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나와 '내 노래에 이렇게까지?' 하고 눈을 떴는데 이미 녀석이 나와 마치 원래 밴드 멤버였던 것처럼 연주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함성과 갈채의 몫은 내가 아니라 아들녀석의 것이었다.
이때의 반응은 가히 열광적이었다. 사실 아들 녀석의 깜짝 등장이 더 인상적이었다는 게 수개월 공연을 준비한 밴드의 '프런트맨'인 아빠의 입장에서 다소 씁쓸했지만 그래도 성공적인 반응에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쨌든 필자는 필생의 로망 록밴드의 '프런트맨'의 꿈을 이루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었으나 그 성취감과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내 인생 마지막 무대였을 그날의 공연 무대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With Or Without You'의 그 인상적인 도입부의 기타 사운드가 나올 때마다 나는 12년 전의 뜨거웠던 공연무대로 날아갈 것이다. 남들은 모를 나만의 기쁨이고 영광이다.
"Rock Will Never Die!!".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