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Total Eclipse of The Heart'(보니타일러)
짐 스타인먼(Jim Steinman, 1947~2021)이라는 작곡가가 있다. 팝과 록, 뮤지컬, 영화음악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종횡무진 음악성을 과시한 또 하나의 천재형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 그는 “극장과 음악의 결합이 내 작곡의 본질”이라고 말했을 만큼, 오페라적이고 연극적인 감정 과잉, 웅장한 사운드, 장대한 서사를 특징으로 한다. 'Meat Loaf', '보니 타일러', '셀린 디온', '에어 서플라이' 등과 함께 만든 곡들은 전 세계 1억 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올렸고, 그의 대표작 Bat Out of Hell은 미국 역사상 35위 안에 드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앨범이다.
1983년은 여러 번 필자가 언급했지만 80's 스타일을 규정하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은 해인데 여기에 짐 스타인먼의 곡들도 당당히 얼굴을 내민다.
1983년 10월 8일, 보니 타일러의 'Total Eclipse of The Heart'와 에어 서플라이의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은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나란히 차지한다.
이 두 곡 모두 짐 스타인먼 작곡의 넘버들로 그 후 무려 3주간이나 빌보드 차트 1,2위를 동시에 점령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호주 출신의 '에어 서플라이'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그룹이었는데 그동안 그들의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음악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드라마틱하고 다이내믹한 곡의 분위기로 필자도 상당히 좋아했던 넘버이다.
https://youtu.be/ogoIxkPjRts?si=7jGVig-DyB70Gtoc
그러나 그 당시는 물론이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필자를 전율하게 만드는 곡은 바로 '보니 타일러'의 'Total Eclipse of The Heart'이다. 짐 스타인먼 특유의 웅장하고 극적인 '파워 발라드' 명곡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원초적 인간의 욕망에 대한 갈구, 그리고 모든 금기에 대한 저항의 노래
1983년, 보니 타일러의 거친 목소리가 전 세계를 휩쓸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다소 과장된, 단순한 사랑 발라드라고 생각했을 듯하다. 'Total Eclipse of The Heart'는 표면적으로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금기된 욕망, 그리고 그것을 억누르려는 사회적 터부에 맞선 치열한 저항의 서사라는 생각이 드는 곡이다.
보니 타일러 자신은 이 곡을 "너무 사랑하고 싶어 하지만 완전한 어둠 속에 누워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 곡은 단순한 로맨틱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집착과 어둠에 빠진 사랑을 다룬다. 작곡가 짐 스타인만(Jim Steinman)은 이 곡을 "사랑의 어둡고 집착적인 면에 대한 열병 같은 노래(fever song)"이자 "춤출 수 있는 엑소시즘"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이 곡의 원래 제목은 'Vampires in Love'였다.
짐 스타인만은 이 곡을 노스페라투 뮤지컬을 위해 구상했으며, 'Total Eclipse of The Herat'의 전 세계적인 히트 14년 후 1997년 뮤지컬 'Dance of the Vampires'에 다시 포함시킨다. 가사 속 "Once upon a time there was light in my life / But now there's only love in the dark"는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어둠 속 사랑에 대한 고백이다.
https://youtu.be/lcOxhH8N3Bo?si=ykG5mJHrEFNtWThi
호소력 만점의 허스키 보이스, 그리고 장대한 프로덕션
보니 타일러의 시그니쳐라 할 수 있는 호소력 짙은 허스키 보이스는 1970년대 중반 성대에 생긴 결절을 제거하는 수술 후 생긴 것이라 한다. 이 독특한 목소리는 곡의 비장미와 역동성을 증폭시킨다.
'Total Eclipse of The Heart'는 팝 음악으로서는 이례적인 무려 7분에 달하는 대곡으로, "폭탄 같은 프로덕션(bombastic production)"이라 불릴 만큼 웅장하다.
곡은 섬세한 피아노 리프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베이스, 드럼, 신스사이저가 추가되며 절정으로 치달는다.
첫 번째 코러스 후에는 "천둥과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극적인 신스사이저 솔로가 등장하며, 마지막에는 파이프 오르간과 합창단이 가세해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처럼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를 만든다.
필자는 특히 곡의 엔딩 부분에 나오는 미성의 남성 목소리를 특히 좋아했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발이 끝난 후 처연하게 흘러나오는 캐나다 출신의 로리 도드(Rory Dodd)의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는 이 곡의 '화룡점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놀랍게도 도드의 보컬 파트는 거의 원테이크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사회적 금기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 뮤직비디오
러셀 멀케이가 연출한 'Total Eclipse of the Heart'의 뮤직비디오는 그 자체로 억압에 대한 시각적 저항이다. 버려진 빅토리아 시대 정신병원에서 촬영된 이 영상은 보니 타일러가 대한 금기된 환상을 경험하는 긴 밤을 그린다. 이는 권력관계와 사회적 위계질서에 의해 금지된 욕망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Turn around, bright eyes"라는 가사와 함께 등장하는 빛나는 눈의 이미지는 신화와 민담에서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마법적 통찰력"을 상징한다. 이는 사회적 규범을 뛰어넘어 진실을 꿰뚫어 보는 금기된 시선, 즉 억압받는 개인이 가진 유일한 무기인 상상력과 환상을 의미한다. 영상 곳곳에 등장하는 종교적 아치와 기독교적 상징물들은 서구 문명의 도덕적 억압 구조를 나타내며,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원초적 욕망의 힘을 대비시킨다.
"We're living in a powder keg and giving off sparks"
이 가사는 곡 전체에서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화약고 속에서 불꽃을 튀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진정한 자아를 표현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기도 하다.
한 평론가는 이 뮤직비디오가 "레이건 시대 동성애 억압"을 다루며, "남성 간 성적 욕망의 금지된 순간들"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는 보는 그대로의 단편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뮤직비디오의 전반적인 메타포는 비단 동성애뿐만 아니라 모든 억압과 금기에 대한 저항의 주제를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곡도 명곡이지만 범상치 않은 이 뮤직비디오의 메시지도 세대를 초월하는 호소력이 있어 2025년 6월 현재, 무려 12억 뷰를 돌파하고 있다.
https://youtu.be/k1pLzUEZmOA?si=O-rhRKCx7tLxZ3YY
장르를 넘나드는 알레고리의 향연, 영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이번 보니 타일러의 'Total Eclipse of The Heart' 편을 준비하며 그동안 수없이 봤던 뮤직비디오를 다시 시청하게 되었다.
불현듯 필자는 40년이 훨씬 지난 이 도발적인 곡과 뮤직비디오의 메시지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다양한 은유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Total Eclipse of the Heart'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게리 올드만, 위노나 라이더 주연, 1992년)의 여러 가지 알레고리들을 살펴보면, 두 작품 모두 고딕적 로맨스와 어둠 속에서의 사랑, 금기와 욕망, 빛과 어둠의 경계라는 주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필자는 사실 드라큘라나 뱀파이어를 다루는 영화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데 코폴라 감독의 이 작품은 예외다. 나를 압도하고 몰입하게 만들었던 유일한 고딕 호러 클래식 영화라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아는 만큼 혹은 아는 것만(!) 보인다고 협량한 필자의 지식 안에서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장르를 초월해 이 두 작품의 메시지가 근원적으로 동일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팝 오디세이를 연재하면서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80년대의 명곡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고 할까. 독자들도 이런 소소한 기쁨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Total Eclipse of the Heart' 뮤직비디오는 빛과 어둠, 욕망과 도덕성, 금기와 해방이 충돌하는 내면의 전쟁을 상징적으로 그린다. 흑백의 대비, 종교적 상징, 유혹과 죄의식, 그리고 금단의 욕망을 암시하는 장면들은, 드라큘라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파멸, 구원과 저주의 갈등과도 닮아 있다. 두 작품 모두 도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사랑에 대한 갈망을, 고딕적 미장센과 상징을 통해 시각화한다.
에로티시즘과 금기, 은유의 성찬
코폴라의 드라큘라는 에로티시즘과 관능, 금기된 사랑을 세련된 미장센과 색채로 암시한다. 붉은 드레스, 어둠 속의 환상, 그리고 드라큘라와 미나의 관계는 욕망과 죄의식, 유혹과 자기 파괴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Total Eclipse of the Heart' 역시 뮤직비디오에서 종교적 아치, 빛나는 눈, 어둠 속의 유혹 등으로 금기와 욕망, 그리고 내면의 죄책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Total Eclipse of The Heart' 뮤직비디오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보니 타일러가 거울 속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는 장면은 가장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환상을 쫓아 달려가다가 결국 자신의 내면의 근원을 붙잡게 되는 순간은, 억압된 욕망이 결국 자아 탐구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사회가 금기시하는 감정들을 통해 개인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기존 질서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코폴라의 드라큘라에서도 미나(위노나 라이더 분)는 드라큘라를 통해 자신 안의 억압된 욕망을 발견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 아래서 금지되었던 여성의 성적 자율성이 드라큘라라는 ‘운명적 사랑’의 만남을 통해 각성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해방이 언제나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을 수반한다는 진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고딕적 미학과 저항의 언어
두 작품이 공유하는 고딕적 미학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저항의 언어다. 어둠과 빛의 극적 대비, 종교적 상징의 전복적 사용, 그리고 죽음과 사랑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감각적 표현들은 모두 기존 질서에 대한 미학적 반란이다. 'Total Eclipse of the Heart'의 뮤직비디오에서 촛불과 연기, 빈 수정 술병과 중국 부채 같은 소품들은 불면의 고뇌를 암시하면서도, 동시에 욕망을 억누르고 체제에 순응하는 모든 요구에 대한 거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코폴라가 에이코 이시오카(아카데미 의상상 수상자)와 함께 창조한 시각적 언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빨간색으로 표현된 "관능, 성적 욕망, 성적 환상"은 서구 기독교 문명이 오랫동안 억압해 온 인간의 본능적 충동에 대한 상징이다. 필자는 위노나 라이더의 빨간 버슬 드레스가 "원초적 욕망의 파괴적 구현"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보는데, 이는 미적 형식을 통한 사회적 금기에 대한 도전을 당당히 고하는 선언문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영원한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Total eclipse of the heart"라는 제목이 품고 있는 역설은 이 모든 논의의 핵심이다. 일식은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현상이지만, 동시에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천체 현상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금기에 의해 어둠에 가려진 사랑도, 그 억압의 강도만큼 더욱 강렬하고 원초적으로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사랑이란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빛과 어둠의 전쟁이며, 때로는 파괴적이고 금기된 욕망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강렬한 감정임을 드러낸다. 드라큘라의 고독과 집착, 미나를 향한 구원과 파멸의 욕망, 그리고 'Total Eclipse of the Heart'의 절망적이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노래는,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본질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한다.
우리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사랑은 때로 괴물처럼 우리를 집어삼키지만, 그 어둠 속에서조차 인간은 구원과 연민, 그리고 희망을 갈망한다'는 다소 감상적이지만 아름다운 '고딕적 인간애'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필자는 각각의 장르에서 '걸작'이라고 추앙받는 이 두 작품에서 형식과 틀을 파괴하는 불멸의 '예술가 정신'을 본다.
"순수하고 억제되지 않은 영화적 욕망(pure, unbridled movie lust)" 의 결과물이라는 코폴라의 '드라큘라'에 대한 평론가들의 말은 과언이 아니다.
나약한 인간 존재에 대한 예술가들의 집요하고 끈질긴 탐구로 탄생된 'Total Eclipse of The Heart'와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는 우리에게 결코 쉽게 잊을 수 없는 탐미적 쾌감을 안겨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