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있되, 느끼지 않는다 -
모임은 새벽까지 이어졌지만,
나는 정해둔 시간에 정확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귀가 후 씻지도 않고 모니터를 켰다.
코인 시장이 움직이고 있었다.
익숙한 흐름.
예상 가능한 타이밍.
그 순간, 나는 또 읽었다.
10억 단위 수익.
손끝도 떨리지 않았다.
단지 물 한 잔 마셨을 뿐.
새벽 2시.
잠은 2시간.
7시, 정확히 눈을 떴다.
러닝화 끈을 조이고,
단지를 2km 뛰었다.
숨이 차지 않았고, 머릿속도 고요했다.
돌아와 씻고,
계란 3개, 바나나 하나,
그리고 파나마 게이샤 드립으로 내린 진한 커피 한 잔.
잔을 들고,
다시 책상 앞으로 앉았다.
[오전 9시. 주식시장 개장.]
며칠 전부터 주시하던 종목이
예상대로 움직였다.
진입, 대기, 돌파.
10분 만에 수익 약 12억.
익숙했다.
모니터를 닫고 블라인드를 올렸다.
햇살이 찼지만,
내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10시. 헬스장.]
오늘의 루틴은 정해져 있다.
등 운동, 고중량, 빠른 템포.
샤워하고 나올 땐 다시 말끔한 옷차림.
단정한 차가움, 딱 그 정도의 느낌.
[12시 30분. 삼청동. VC 미팅.]
AI 기반 앱 대표와의 회의.
자신감과 욕망, 흐름의 간격.
나는 듣고, 정리하고,
카페 옆 골목에서 아이패드에 분석을 끝냈다.
20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오후 3시. 연락.]
“오빠 오늘 저녁 시간 어때요?”
잘나가는 쇼핑몰 대표.
예쁘고, 야망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한다.
나는 저녁 약속을 잡았다.
가볍게, 흘러가듯, 예상대로.
[7시 반. 이태원 펍.]
맥주 한 잔,
웃음 섞인 말,
눈빛, 그리고 의도된 침묵.
그녀는 묻고,
나는 웃었다.
그 속에서 주도권은 항상 나였다.
흥미는 없었다.
그냥, 저녁일 뿐이었다.
[밤 10시. 귀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가볍게 스트레칭, 플랭크, 푸시업.
몸은 가볍고, 감정은 평평했다.
다시 모니터.
코인 시장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오늘도,
나는 돈을 벌었고,
몸을 관리했고,
관계를 조율했고,
신뢰를 쌓았다.
완벽한 하루였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 순간,
강남 루프탑 와인바에서 만난 디자이너에게서
인스타 DM으로 연락이 왔다.
''그날 말한 브랜드 콜라보 기획안,
혹시 시간 되시면 한번 같이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
그 말 속에 일은 핑계고, 나를 알고 싶다는 의도.
나는 이미 다 알 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