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보는 것이 더 편하다 -
“그날 말한 브랜드 콜라보 기획안,
혹시 시간 되시면 한번 같이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 ”
강남 루프탑 와인바에서 만난 디자이너에게서
인스타 DM이 왔다.
나는 짧게,
“내일 저녁 8시 어때요?”
라고 보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내일 밤은 코인을 보기 어렵다.
그 말은, 오늘 밤엔 수익을 만들어둬야 한다는 뜻이다.
밤 11시,
모니터를 켜고 흐름을 읽는다.
익숙한 움직임.
거대한 손이 밀고 있는 그림.
나는 진입했고,
1시간 후,
12억 정도의 수익을 확정 지었다.
마우스를 내려놓고,
물 한 잔을 마셨다.
심장은 평온했다.
1시 즈음 눈을 감았고,
아무 감정도 없이 잠에 들었다.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루틴처럼 러닝화 끈을 조였고,
2km를 조용히 뛰었다.
항상 느끼는 바람, 그리고 나의 머릿속,
샤워를 하고,
계란 세 개, 바나나 하나,
그리고 에스메랄다 게이샤 드립으로 내린 커피 한 잔.
향이 진하고, 부드럽다.
커피는 늘 나를 진정시킨다.
나는 잔을 들고 책상 앞으로 향했다.
9시. 주식시장 개장.
하지만 오늘은 예상이 약간어긋났다.
약 2억 손실.
놀라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2억은 내 기준에서 복구 가능한 수치.
감정도, 판단도 흐려지지 않는다.
오후엔
전에부터 알아봤던 스쿠버다이빙 클래스에 참여했다.
조용한 환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천하던 그곳.
도심 속 작은 수조 공간이었다.
강사는 내 또래 여자였다.
탄탄한 몸매와 깔끔한 인상,
침착한 말투와 매너.
“운동신경 좋으시네요. 금방 익히실 것 같아요.”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고
간단한 인사만 나누었다.
그녀는 친절했고,
나는 무표정하게 돌아섰다.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내겐 흥미롭지 않았다.
그저 또 하나의 예측 가능한 장면.
저녁은 초밥.
단골 가게에서 조용히 앉아,
여섯 접시 정도를 천천히 비웠다.
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 드립 커피 전문점으로 향했다.
좁지만 깊은 향이 가득한 공간.
커피를 기다리며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커피를 맛으로만 판단할까. 진짜는 향인데...
이렇게 좋은 향을 무시하고
아메리카노만 찾는 게,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잔을 들고
잠깐 눈을 감았다.
8시.
디자이너를 만나러 와인바로 향했다.
일 얘기는
예상대로 20분도 안 돼 끝났다.
문제는 없었고, 정리도 깔끔했다.
이 자리는 일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왜 날 다시 만나고 싶어했는지.
와인 두 잔이 흐른 뒤,
분위기는 조금씩 가라앉았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준혁 씨는… 사람을 참 헷갈리게 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입술이 닿았다.
놀랍지도 않았고,
피할 이유도 없었다.
우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연스럽게 호텔로 들어섰다.
취한 그녀는 내 옆에 있었다.
내겐 낯설지 않은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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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그날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