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의 에러

- 논리 없이 작동한 마음 -

by Woo seo

무슨 생각도 없이,

나는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요.”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못 듣고 그대로 걸어갔다.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나는 생각조차 없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다시 말했다.


“저기요.”

그제야 그녀가 멈춰 섰다.


이어폰을 빼며,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나는,

그 순간 5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단정하고 매끄러운 이마,
살짝 올라간 눈꼬리,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
차가운 유리컵 같았다.
예쁘지만, 차갑고, 닿으면 깰 것 같은 느낌.


“…왜 그러시죠?”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이랬다.


“누구세요?”

……미쳤다.


‘누구세요’라니.
내가?
이성적인, 계산적인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머릿속이 정지됐다.

그녀는 정적 속에서 미친놈인가?

라는 눈빛으로 나를 한 번 더 쳐다보곤

그대로 고개를 돌려 다시 걸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씻고,

바로 코인 차트를 켰다.


아무런 생각 없이 진입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5억 넘는 손실.

모니터를 닫고 나왔다.


심장이 뛰는 것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만 떠올랐다.

그녀의 향, 걸음걸이, 눈빛, 말투.


난 이런 사람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런데 왜,

마치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멍한 걸까.


한숨도 자지 못하고

침대 위에 누워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새벽 러닝을 나갔다.


2km 뛰고,

샤워하고,

루틴대로 주식시장 개장.

오늘은 운이 좋았다.


분석해 둔 종목이 떠올랐고,

예상대로 수익이 났다.


하지만—

난 분석을 하지 않았다.


이득이 났지만,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

누웠다.

자고 일어나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씻고,

밥을 먹었지만,

운동은 가지 않았다.


트레이너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은 무슨 일 있으세요? 운동 안 오셔서요…”

나는 짧게 답했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요. 내일 뵙겠습니다.”


이런 적,

단 한 번도 없었다.


저녁이 되자

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 편의점.

그녀를 처음 본,

그 골목 모서리에 있는 작은 편의점.


혹시나 오늘도 그녀가 이 앞을 지나가진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컵라면과 김밥을 사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때,

내 유일한 친구, 동석에게 연락이 왔다.

“야, 술 한잔 하자.
오늘 이태원 어때?
분위기 쩌는 바 하나 찾았다.”

나는 말했다.

“편의점으로 와.”

그 순간 바로 전화가 왔다.

“편의점?? 왜??”
“여기 맥주가 맛있어.”

나는 대답했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 미친 건가?”

20분쯤 지나

택시에서 급하게 내린 동석이

헐레벌떡 내게 다가왔다.


“야, 큰일 난 거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

아무 일 없어.”


동석은 미친놈 보듯 나를 보며

다시 물었다.


“야, 준혁아.

네가 미치지 않고선

‘편의점 맥주가 맛있다’는 말이 나올 수 있어?”


…그 말이 맞았다.

미치지 않고선 이런 말, 내가 할 리가 없다.


나는,

항상 계산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계산기가 고장 난 것 같다.


“…동석아.

나 미친 거야?

아픈 거야?

병원 가야 하나?”


동석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봤다.

내가 조용히 말했다.


“어제…

이 편의점 앞에서

한 여자를 봤는데—”

나는 어젯밤의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디자이너도 아니고,

VC도 아니고,

어디서 본 적도 없는 그 여자.

그녀의 향, 말투, 표정.

동석은 조용히 말했다.


“…반했네.”

그 한 마디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반했다.’

나한테 그런 단어를 붙이다니.

말이 되나.


“…내가?”


동석이가

“…그리고 어제부터 오늘까지 뭐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흐름을 말해줬다.

그는 한참을 듣고 나서 말했다.


“그럼…

그 여자가 어디로 걸어갔는지 기억나지?”


“…응.”


“그럼 가보자.

거기서 기다려보자.”


우리는 다시

그 골목 어귀에 섰다.

어제 그 자리에.


나는 동석이 한테 물었다.

“…야,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지 설명 좀 해줄래?”


동석은 대답했다.


“너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줄

유일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