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이 먼저 운직인 날 -
동석의 말이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 골목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하지만—
몇 시간을 기다려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동석이 말했던 이태원의 바로 이동했다.
오늘은 이상하게,
위스키가 생각나는 날이다.
잔잔한 재즈가 흐르고,
바텐더는 아무 말 없이 병을 꺼냈다.
얼음 위로 위스키가 넘치듯 흐르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잔을 들이켰다.
한 병을 거의 비워갈 무렵,
동석이 웃으며 말했다.
“준혁아, 너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네가 이렇게 행동할 줄 전혀 몰랐거든.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들 보면서 바보 같다, 멍청하다’ 그리고
네가 그걸 가장 싫어했잖아.”
“근데 오늘 넌… 그 바보 같고 멍청한 짓을 하고 있네?ㅋㅋ”
“너 미친 거 아냐?”
나는 말없이 웃었다.
아니, 웃은 게 아니라
얼굴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동석은 다시 말했다.
“내가 너 안 지 10년이 넘었는데,
진짜 처음 봐, 이런 너.”
그 말엔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았다.
그저,
객관적인 진단처럼.
“나도 너무 궁금하다.
그 여자…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널 이렇게 만든 거냐?”
나는 말이 막혔다.
그리고,
정말로 몰랐다.
“뭐?!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그게 말이 돼?!”
동석이 놀라는 건 당연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표정과 숨소리, 거리감과 말투,
심지어 그날의 조명과 온도까지 기억해
모든 걸 계산해 냈다.
사람을 읽는 능력,
그건 내 무기였다.
그 능력으로
돈을 벌었고,
사람을 움직였고,
연애도, 일도, 인생도
나는 동석이 한테 이야기를 했다.
“나 아픈가 봐.
고장 났나?”
동석은 내 말을 듣고
웃던 놈의 얼굴은 진지함으로 변했다.
술집을 나왔다.
밤공기가 몸을 감쌌다.
동석과 짧게 인사하고,
나는 택시에 올랐다.
만취 직전.
창밖의 불빛이
조금씩 일렁이고 있었다.
그날 밤의 향기,
그 눈빛,
무표정하지만 선명했던 얼굴.
온통 그녀뿐이었다.
이건 정말 이상한 감정이다.
택시는 고가도로를 타기 위해 진입 중이었다.
분명했다.
그 뒷모습, 그 걷는 자세.
나는 소리쳤다.
“기사님! 스톱! 스톱요!!!”
놀란 기사님이 급정거를 하려는 순간,
나는 수표 한 장을 꺼내 들고 말했다.
“잔돈은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문이 열고
나는 뛰었다.
미친 듯이.
차들이 오는 도로 위였다.
빵! 빵!
경적이 울렸고,
불빛이 스쳤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뛰었다.
숨이 막히고,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다른 차들을 향해 나는 소리를 쳤다.
그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꼭 방금 전까지 만취직전이던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고
공기마저 깨지는 것 같았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