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관리하고, 앞서 가지 말자.
당진살이 2년 9개월 차
2020의 봄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아니 어쩜 너무 큰일에 막혀 단조로웠다고 해야 하나?!
우리의 생활을 묶어 놓았던 참으로 대단한 그것의 이름은 COVID19.
2020년이 다 가고 있는 이때까지도 사그라지는 듯, 하다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도 당진이어서 그나마 좀 덜 했지만, 그래도 위협이 되긴 충분했다.
마스크로, 거리 두기로 나를 위해, 주위 사람들을 위해 조바심 내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시간이었다.
5월의 어느 날~
오전에 운동하고 점심 먹고 들어와 책도 읽고 했지만, 힘들다고 하며 매일 똑같은 일상에 덧없이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지낼 때였다.
물론 모이토의 모임을 가장 기대하며 지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책도 읽고 가끔 끄적이기도 하며,
모이토 샘이 주신 정보로 OO초등학교 도서실 봉사에 자원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그것마저도 미루게 했다. 교육시설이 거의 마비되면서 당연히 도서실 개방도 미루게 되었다. 학년별로 나눠서 통학했지만, 여전히 도서실 개방을 미루는 상황이 8월 말까지 계속되었으니 여전히 나는 대기 상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하게 된다는 기대와 열망이 거의 사그라들 즈음,
9월 16일부터 출근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찾아간 곳은 5일 장이 서는 곳, 면사무소가 있는 곳, 근처에 작고 이쁜 초등학교다.
도서실은 별관 건물 2층에 자리해 있고, 쉽게 드나들 수 있게 하려고 그랬는지 출입문이 없다.
도서실 출입문이 없는 것이 그때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점심시간에 출근, 오후 4시 퇴근.
도서실 일을 했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열심히 서가 돌아보니, 십진분류표대로 되어 있긴 한데, 도서실은 좁고, 계속 새 도서가 들어올 것이고, 그대로는 새로 들어오는 도서 자리가 마땅치 않아 보였다. 새 도서들이 놓일 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십진분류표의 800번, 문학이 제일 많고, 제일 많이 들어올 것이니, 도서 번호대로 정리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아마 도서실이 더 넓어진다면 십진 분류 표대로 정리를 다시 해야겠지만-
키 큰 서가는 그대로 두고, 낮은 서가의 책들을 다시 정리하기로 하고 담당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정리를 시작했다. 처음 도서실을 맡았다며 잘 모르지만 돕겠다고 했다.
책을 빼서 옮기고 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이미 고등학교에서 큰 서가가 20여 개나 있던 큰 도서실도 싹 다 뒤집어 십진 분류표대로 정리해 본 경험이 있었고, 작은 도서관이지만 책이 10000여 권 있는 곳의 정리도 해왔었던 터라, 이곳에서의 작업은 그리 힘들지 않을 듯했고, 책이 많지 않아서 슬슬 하면 될 듯했다. 담당 선생님도 가끔 와서 도와주기도 했다.
근데 하면 할수록 담당 선생님이 뭐 이렇게까지 해야 되냐며 짜증 섞인 말을 했다.
대출, 반납만 받으면 되지, 뭐 하러 이렇게 일을 벌이냐는 것이다.
사실 그렇기도 했는데 왜, 그때는 그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장소에 맞게 도서 관리, 서가 관리를 해야 된다고 배웠던 것 같아서 꼭 해야 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일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책임자도 아니면서 말이다.
정리가 끝나고 새 도서가 들어왔고, 차례로 도서를 정리할 수 있어서 편하긴 했다.
정리가 끝나고 대출, 반납만 하며 지내다 겨울을 맞았다.
출입문이 없는 도서실은 너무 추웠다. 복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은 그대로 다 도서실로 들어왔다.
플라스틱 의자는 너무 추워서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담당 선생님한데 의자 좀 바꿔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왜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요?” 그렇게 말하는데 기가 막혔다.
오전에 오는 선생님한테 물었더니 춥다고, 의자까지 플라스틱이라 더 춥다고 해서, 그럼, 한번 말해보겠다고 하고 내가 말한 것이었다.
아니, 일을 시키면서 출입문도 없는 도서실에 앉아 있는데, 의자 하나 바꿔 달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건지. 너무 화가 났다.
그전에 도서 정리하면서 내가 뭘 많이 해 달라고 했었나?! 그건 도서실에 필요한 것이니 당연히 요구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나서,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교실로 찾아갔다.
너무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해서 눈물 닦아가며 말했다.
“내가 뭘 그렇게 요구했나요? 도서실에 필요한 것을 말한 것이고 –다 해 주지도 않았으면서-, 출입문도 없는 추운 도서실에 있는데 의자 하나 바꿔 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오전에 오는 선생님은 안 그러니까요?”
“그 선생님은 필요하지 않나 보죠. 저는 필요하거든요.”
“그리고 오전에 오시는 선생님한테 제가 물었더니 플라스틱의자라 더 춥다고 해서 말하는 거거든요.”
참내, 일 시켜줬으니 -자기네도 필요해서 고용한 것, 아닌가?!-, 고마워하며 그냥, 네네~ 하며 죽은 듯이 조용히 있어야 된다는 건지.
어찌 되었든 아이들이 많이 찾지 않는 초등학교 도서실 일을 그렇게, 그렇게 언짢아하며,
12월까지 마치고 그만두었다.
마지막까지 즐겁게 일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그만두고 나니,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좋지 않다.
‘내가 너무 앞서간 거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나중에야 하게 되었다.
도서실에 일하게 된 것이 너무 좋아서 꿈에 부풀어 나만의 생각으로 했었던 것은 아닌가?!
학교에선 그냥 대출, 반납만 하길 원한 거였나 보다.
나중에야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개운하지 않은 마음이다.
잠깐 하다 마는 봉사?!, 일거리 창출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었으니 뭘 바랐겠는가?!
‘담당 선생님을 내가 귀찮게 한 거였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니, 역시 마음은 개운하지 않다.
그래, 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내 오지랖이 문제다.
그래도, 한가한 시간에 창작과 비평사의 일을 하며 빈 시간은 귀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창비의 계간지를 읽고 파트별 서평을 쓰는 것이었는데 모이토 샘들과 같이하며 재미나게 글을 읽고, 쓰고 했었던 시간이 없었다면, 그 시간은 그냥 나쁜 기억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니 아주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고용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것도 내 일이라는 것,
상황을 잘 파악하고 일해야 하는 것도 내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던 귀한 시간이었다.
가끔 나는 성급하게, 넘치게 일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는 것도 재확인하게 되었다.
제발 워워~
그렇지, 그렇지!! 앞서 가지 말 것. 전체 상황에 맞게 할 것.
가끔 생각날 때면 좀 창피하다. 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