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씨!!!
시조카 결혼식
2020년 6월 마지막 주말, 대전에 다녀왔다. 집안의 종손인 시 조카 결혼식이 있었다.
엄니께서는 당시의 대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어르신 분들의 위험을 무릅쓰고,
마음을 다 잡으시며 "그깟 병 난 안 걸린다." 하시며 가시고 싶어 안달이셨다.
당신 생각에 사랑하는 '집안 종손'의 애타게 기다리던 늦은(37) 결혼식이고, 또 이 눔의 병으로 인해 손님도 줄어들 텐데, 당신이라도 가서 자리 채워 주셔야 된다고 하셨다.
그래~ 그러시겠지.
엄니가 사랑해 맞이하는 큰아들의 아들, 맏손자 결혼식이 아닌가!?
걷기도 힘드신데 어찌하나!?!
여보랑 대책을 마련해야 되는데 유튜브 보느라 얘기가 진행이 안 됐다.
으이그, "어떻게 할 거야? 응?" "어떻게 할까?"
불편한 엄니 모시고 병원 아닌 다른 곳에 가는 것은 처음이라 대책을 세우길 바랐지만,
"뭐 그냥 가시면 가는 거지." 확 짜증을 냈다. 이런!!
시내까지 태워다 주는 차 안에서 별일도 아닌 거 갖고 버럭 거렸다.
참내! 그게 화낼 일이냐고?
요는 자기 말에 토(?) 달지 말라는 거다.
“헐!! 내가 뭔데? 내가 뭐라 했길래?”
그럼 확실한 결정을 내려서 말하던가?! 아님 얘기를 해서 풀어가던가!
참 내!! 어이가 없네. 정말!!
달리는 차 안에서 확!! 문 열고 내려버리고 싶었다.
도서관까지 가면서 화가 가라앉질 않아 눈물을 찍어냈다.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뭐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젠 당신이랑 더는 할 말이 없네.”
이건 언어폭력이다.
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참아야 하느니~ 더 말해봤자 싸움만 할 것이니.
정말 이럴 때면, 온갖 정나미가 다!!! 떨어진다.
말하면 뭐 하나, 내가 알아서 해야지.
번뜩, 독서모임 후 의료기 상점에 들러서 휠체어를 빌려 보자! 싶었다.
기분 좋게 신나게 재밌게 토론 마치고 의료기 상점에 들렀다.
“아까 전화하신 분이신가요?”
“아닌데요.”
“중간번호 5412인데 나중에 전화해 준다 하고 못했거든요.”
“아~ 남!편!이 전화했나 보네요.”
“저는 그냥 왔어요."
"어머!! 이심전심이시네요." 사장님이 신기한 듯, 부러운 듯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으그!! 영감탱이!
나는 '남편'이라는 단어를 지칭으로 사용하기 싫어한다.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인데,
‘남편’ 그러면 ‘남의 편’인거 같아서 굳이 ‘여보’라는 호칭을 어색하고 낯간지럽게 지칭으로 쓴다.
근데 이렇게 언어폭력을 쓸 때는 ‘남편’이 아니라 ‘영감탱이’ 또는 더한 것으로도 부르고 싶어진다.
나름 ‘욕 아닌 욕’이라 하겠다. 그걸 아는가 몰라!!
가끔 이렇게 변신하는 여보 땜에 내 속은 속이 아니다.
에효!!! ‘웬수’!!!
말을 하던지~ 부탁을 하던지~
자꾸 걱정했던 것이 기분 나빴나? 왜????
참내~ 그렇다고 별일도 아닌 걸로 버럭 거려?!
성질머리가 그런 줄은 알았지만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독서토론하며 스트레스 날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휠체어 빌려 왔다.
아무튼 그렇게 엄니 모시고 편케 코로나19가 기승이었던 대전에 다녀왔다.
엄니도, 남!편!도, 나도, 보는 다른 식구들도 다 편안해했다.
나만 참으면 되는 건가?! 나만?!
에효!!
당진은 이때까지 코로나19 청정지역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민했다.
같이 운동하는 분들 중에 서울 사돈네 결혼식이 있어 다녀온 후, 코트에 나왔는데,
체해서 몸이 안 좋다며, 운동은 못하고 바람 쐬러 나왔단다.
근데 그분이, 마스크에 목숨을 걸었던 그때에 하필 마스크를 잊고 오셨다.
뭐 그냥 알아서 들 ‘거리두기’ 하면 될 것을, 아프다며 왜 왔냐느니, 마스크도 안 썼다느니, 무개념이라느니, 보이는 곳에서 수군수군거렸다.
정작 그분은 눈치 없이 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데 뭐라 할 말이 없어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따로 저 멀리 가서 있었다.
그냥 그렇게 하면 되지, 뭐 조심하는 건 좋은데, 나온 사람 두고 수군거릴 것은 아니지 않나?!
차라리 대놓고 말하던가. 그러지도 못하면서 구시렁거리는 모습이 참 보기 싫었다.
또 매일 볼 사람이고, 실내도 아니고 잠시 바람 쐬러 나오느라 잊었나 보다 하면 될 것을.
그즈음 코로나 확산지인 대전에 다녀온 나는 당분간 코트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운동은 시원한 저녁 시간에 걷기만 해도 충분할 테고, 괜히 이 말 저 말 듣기 싫으니 사람들 모이는 곳엔 가지 말아야지, 싶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듯, 한동안 적막한 일상을 보내기로 했다.
덕분에 이쁘게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보며 핫 둘, 핫 둘,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말씀도 듣고 책도 읽고 나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밖에서 활동 시간이 많다 보면 IN-PUT 할 시간이 없어서 OUT-PUT도 안되는데 '기회다' 싶었다.
초등학교 도서실에 출근하기로 계약은 했지만, 이때까지 학교 도서실도 개방 전이라 항시 대기 중이었다.
며느리도 고민하며 결혼식에 다녀갔다. 병원 동료들이, 더 걱정을 한다 했다.
어디는 아니겠냐만.
"그렇겠지~ 그럼~ 편한 대로 하거라" 했더니, 그래도 오는 것이 마음이 편했는지, 고맙게도 왔다 갔었다.
에구~ 편히 할 수 있는 일들을 이렇게 걱정하며 해야 되는 세상이었다. 세상이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마스크 잘하고, 손 소독 잘하고, 거리 두기 잘하고, 그렇게 또 적막한 일상을 보냈던 시간이었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