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기 추도식 후
엄마가 생각났던 어느 날 아침
고단하고 피곤한 밤.
지친 몸을 누였다. 힘들긴 해도 아직은 맘대로 움직일 수 있어 여기저기 돌아치긴 하지만 어느새 65년여를 사용하고 보니 기능이 쇠퇴해 가는 몸뚱이는 아픔을 느끼고 삐그덕거린다. 나름 루틴으로 아침저녁으로 스트레칭을 20~30분씩 하면 그나마 삐거덕거리던 몸이 어느새 개운해진다.
다행히 어젯밤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비몽사몽, 기분 좋게 이불속에서 새 아침을 맞이하는 몽롱한 새벽 시간,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마구 몰려온다.
일어나고 싶지 않아 그대로 생각들을 계속 나열해 본다. (적어야 되는데~)
평안하고 기분 좋게 몽환적인 이 시간을 끊어내기 어려워 버틴다.
(적어야 되는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죽음의 철학'을 기억해 보며 어쭙잖은 내 개똥철학도 짚어본다.
죽음 저 너머 새 세상은 밝고 맑고 환하고 화려하고 기분 좋게 환상적인 세상일 테지.
만약 죽음이 인간사의 끝이고, 절벽이라면,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그냥 '無'라면 얼마나 서글프고 암울하고 두렵고 겁나고 슬플지. 생각만 해도 답답하고 싫다.
그래서 나는 죽음은 자유이고 희망이고 소망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 교회에서 들은 말씀들이 내게 깊이 동감이 되니 너무나 당연하게 마치 내 생각인양 말한다.
아직 닥치지 않았으니 실감할 수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밝은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그것이 내가 원하는 죽음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의 삶이 편안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아웅다웅하지 않아도 되고, 편안하게 살아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야 되는 것이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죽음'이란 단어는 참 기분 나쁘고 듣고 싶지 않은 단어다.
다른 말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라 하자. 크리스천인 우리가 말하는 '하늘문'.
좀 더 나아가서, 하늘문을 넘으면 내 영혼은 훨훨 하늘나라로, 이 세상에 있는 내 사랑들에게로 왔다 갔다 날아다니며, 아니 날아다닐 필요도 없나?! 여하튼 쉬기도 하고, 내 사랑들 옆에서 참견도 하고, 이쁜 모습들을 보며 사랑스러워하고, 힘들어하면 안타까워하고, 도움이 되고 싶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도 하며 그 영원한 시간을 누릴 수 있겠지.
아니 더 이상 인간사에 참견할 수 없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긴 하다.
나는 내 사랑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싶은데... 거기까진 모르겠네.
어쩜 이건 내가 만들어 낸 내 사이비 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생각이란 것이 거기서 거기인가 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명동거리를 지나 학교로 가는 길에 했던 생각인데, 영화로도 비슷한 것들이 많이 나온 것을 보면.
어쨌거나 그래서 기독교가 내게 딱 맞았었나 보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세상을 떠날 때, 그 아름다운 하늘문을 열고, 그 멋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기분 좋게 편안하게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이 고통이 아니라 또 다른 삶으로의 전환이니.
그러니 내가 아는 한 엄마는 이제 편안하게 계셔야 하는 것이지.
3월 4일 엄마를 만나서, 정리되지 않은 '하늘문'에 대해 엄마 귀에 대고 얘기했었다.
"엄마 내 말 들리지? 그냥 편안히 계셔요~ 하나님 나라는 더 편안할 거야. 힘쓰지 말고 편안히 쉬셔~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청각이 제일 늦게까지 살아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말이 들려서 궁금하니, 일어나시려고 머리를 들고 싶으신 건지, 산소마스크를 하고 숨쉬기도 힘들어하면서도 미간을 찡그리며 일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은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이고 안쓰러워서 그렇게 말했었다.
빨리 가시라고 재촉하는 같아 민망했지만 그런 뜻이 아닌 걸 엄마가 아셨으면 좋겠다.
잠시 후, 알아들으셨는지 힘쓰는 듯한 동작을 멈추고 편안해 보이셨다.
그리고 4일 후, 꽃 속에 묻히기 전, 88년의 삶을 사신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참 편안해 보였고 이뻤다.
"엄마 안녕, 안녕~
이제 편히 쉬셔요. 퍽퍽하고 힘든 세상 살아내시고, 아들이랑 살면서 육신은 편안하셨지만 그래도 맘고생은 하셨을 테니 그것도 애 많이 쓰셨어요. 편히 가셔요. 딸 집엔 잘 오지도 않으시고 오직 아들하고만 살아야 되는 것처럼 "내가 너네 집엔 왜 가니~ 난 여기가 좋다 " 그러셨지요. 서운하긴 했어도 엄마에겐 출가외인인 딸과 사위를 마음으로 어려워하셨고, 익숙한 아들 집이 좋으셨던 엄마 마음을 아니까 이해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함께 살며 의지하던 아들에게 편지를 쓰셨다.
그래도 아직 온전한 정신이 많이 남아 있던 주간보호센터 다니시던 때였나 보다. 유품 정리하며 발견했다.
"아들 고맙다 항상 날 잘 가르쳐 주고 밥도 잘 챙겨주고 잠도 잘 자게 해 주고 고맙다 고맙다 아들아 난 오늘 늦게 올 거 같아 기다리지 말아 (반복) 잘 자 고마워(계속 반복) 늦더라도 들어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 안녕 안녕 (계속 반복) 그동안 못 해준 거 다 해 줄께 그럼 잘 자 잘 있어 그동안 고마웠다 잘 있어 굿바이 안녕(반복) 사랑한다 아들아 안녕 안녕(계속 반복)"
사용한 단어는 몇 개 안 되지만 편지지 한 장 앞뒤를 빼곡히 쓰셨다. 아들에 대한 사랑과 기대와 고마움을 말하고 싶으셨나 보다.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는 듯도 하고.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해서 마음이 아팠다. 쓸쓸하고 외롭고 두려웠을 것 같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엄마가 잠도 못 주무시고 피곤한 정신과 몸으로, 오빠를 많이 힘들게 했었다. 식구들이 다 나가 있는 낮 시간이 불안했다.
요양원으로 모시기 전 날이었다.
"엄마~ 엄마는 이제 너무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해~"
"응~그래 "
순순히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 그때도 마음이 무너졌다.
서랍에서 옷들을 꺼내시더니 다시 개고 옆에다 놓고 다시 개고 옆에다 놓고를 계속 반복하셨다.
“엄마 뭐 해?” “정리해야지~”
힘없는 목소리로 그러셨다. 알고 그러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아~!! 생각해 보면 언제나 나는 엄마의 마음을 뒤로했다.
정말 어렵게 살던 시절, 엄마 혼자 살림을 꾸려가던 때였다. 어느 날 밤, 안방 문을 열었는데 문을 뒤로하고 앉아 있던 엄마의 뒷모습은 너무나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삶의 무게를 다 짊어진 그 외로워 보였던 뒷모습이 가끔 훅훅! 떠오를 때면, 그게 40년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명치끝이 싸아하게 쓰리고 아프다.
그 마음은 언제나 나 살기 바빠 그냥 묻어 뒀었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적응하시느라 마음까지 험해진 엄마가 싫어서 외면했었다.
되지도 않게 나서서 말로 사람의 마음을 옭아매던 엄마를 난 외면 했었다.
험난한 삶이 엄마를 변하게 한 것 같아 싫었다.
난 깊은 사랑은 있지만 새살거리는 성격도, 다정한 성격도 아니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생전에 문뜩문뜩 엄마의 소심함을 발견하곤 놀라기도 했다.
언젠가,
"엄마 왜 그렇게 소심하게 그래요? 낯도 가리고? 안 그랬잖아?" 그랬더니 정색하시며
"난 원래 그렇다!" 그러셨다.
활발한 척, 씩씩한 척, 거리낄 것 없이 당당하게 앞서 나가는 사람처럼 했던 것은 다 엄마의 가짜 모습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엄마가 참 안쓰러웠고 가여웠다.
엄마는 이북에서 피난 내려오기 전에 육 년제 중학교를 다니셨다고 했다. 운동 신경이 좋아서 학교 대표 농구선수로도 활약하셨다고 했다. 월남해서 거제도에 사시면서 다시 고등학교에 다녔고,
잠시 교사도 했었다고 했다.
가끔 엄마의 다재다능함도 엿볼 수 있었다.
동네에서 가곡, 가요 다 잘하는 소문난 명가수셨고, 곱게 한복 차려입고 덩실덩실 문화센터에서 발표하던 춤사위가 예사 솜씨가 아니셨고, 또 어느 날 무심히 신문지에 펜으로 끄적끄적, 그리던 여인의 모습도 예사 솜씨가 아니셨다.
볼링 에버리지도 200 언저리, 시니어 선수셨고, 탁구도 아주 잘 치셨다.
75세의 연세에 주민센터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한문교실 선생님도 하셨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한다며 “내년에도 한문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하더라며 뿌듯해하시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열심히 수업 준비하던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옛날 어르신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가진 달란트가 많으셨는데도 다 펼쳐보지도 못하던 시절을 사셨다.
아버지와의 나이 차이가 많아서 더 그러실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고.
할 줄 아는 것이 많아 더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다 펼쳐 보지 못하셨다.
그나마 아버지 돌아가시고 말년에 아들 덕에 어느 정도 자신을 풀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손자 돌보시며 이것저것 열심히 찾아다니며 엄마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그러니 엄마는 아들이 온전히 고마울 수밖에.
오늘은 하루 종일을 엄마 생각하며 지낼것 같다.
한 번은 엄마를 기억하며 정리하고 싶었는데 오늘이었네.
이제 엄마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하늘나라에서 짱 먹고 계시겠지. 아니 경쟁도 없을 테니, 그저 건강하게 평안을 온통 누리시며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을 것을 상상하니 그것으로 그냥 좋다.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아프지도 않으실 테니 그것으로 그냥 좋다.
그래서 엄마와 헤어지던 날,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눈물이 난다.
엄마~ 미안해~ 사랑해~
편히 계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