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살아있다
살펴줘야 잘 자라는 화초들
어머!! 꽃 같지도 않은 것이 꽃이라고 피었네.
테이블야자!
일 년에 몇 번씩 송이, 송이(이것을 송이라고 해야 하나?!) 피워내나 보다.
아무리 봐도 꽃 같지 않아서 신기하다.
방울방울 초록 열매들이 달려 있다. 좀 익으면 노랗게, 더 익으면 갈색으로 변해서 바닥에 점점이 떨어진다. 아마 작은 야자열매이지 않을까?! 하하
그래도 열심히 자라고 꽃을 피우니 귀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당진 내려온 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헛헛한 마음에 아파트 단지에 들어온 꽃 트럭을 기웃거리며 마련했고, 좀 큰 후엔 아랫동이가 허전해서 화원에서 몇 그루 더 사다 심었더니 제법 풍성하게 잘 자란다.
사실 한 화분에 한 그루 널널하게 자라는 것도 멋스럽고 깔끔하니 이쁘던데 여보는 풍성해서 좋단다.
나이가 드니 화초에 눈이 가서, 자꾸 화원이나 꽃 트럭 앞을 지날 때면 뭐 들여 올 것이 없나 살피게 되고 찾게 된다. 들여오면 나머지는 여보가 알아서 관리하니, 난 모르면서 잔소리만 하면 된다.
잔소리라고 할 것도 없지 뭐. 여보가 알아서 잘 하니 난 ‘왜 그렇게 하느냐? 왜 이렇게 하면 안 되냐?’ 여보 듣기에 쓸! 데! 없는 질문만 한다.
하도 들여다봐서 언제 어느 곳에 새 잎이 나오는지 얼마나 컸는지 다 꿰고 있다.
혹시라도 누가 건드려서 부러지거나, 화분을 돌려서 위치를 바꿔 놓기라도 하면 단박에 알아채곤 누가 그랬어?! 왜 그랬어?! 따지고 묻는다. 아주 쌀벌하다.
죽었나 싶은 화초도 다시 소생시키는 마법을 시현하는 여보다.
내가 보기에 ‘저렇게 까지 해야 되나?’ 싶을 때도 있지만 뭐, 그렇게 사랑스레 살펴 주니 더 잘 자라겠지.
가끔 화초를 들여와서 여보의 일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괜찮은 듯하다.
퇴근 후 또는 주말 운동가기 전, 집에서 할 일 없어 TV 앞에서 빈둥거리지 않고 이리저리 화초 살피며 다듬고 물주고 가끔은 분갈이도 해주고 관리하는 모습이 훨씬 보기 좋으니 말이다.
와중에 디시디아, 수염틸란드시아, 이오난사도 그때 들인 녀석들인데 내가 관리하는 녀석들이다.
뾰족뾰족 이오난사가 제일 잘 자란다. 들여온 지 얼마 안 되서 일 년에 한 번 핀다는 꽃도 보여줬다.
그렇게 이쁘진 않았지만 잘 자란다는 증거로 참 좋았다.
이젠 밑동에 귀여운 뽀족이 새끼도 키우고 있다.
화초들은 힘없이 늘어져 있다 싶어서 물주면 다시 활기 넘치게 생생해 지고, 죽었나 싶으면, 실내인데도 따뜻한 봄인 줄 알고 다시 살아나며 계속 사랑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렇게 녀석들은 생명을 이어간다.
얼마 전 친정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식겁했었다.
몸은 거의 다 회복이 되셨지만 아직 인지 능력이 온전하지 않은 것 같아 맘이 아프다.
그래도 통화 하면서 매일매일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회복하시느라 잠도 많이 주무시고 식사도 전보다 더 많이 드시고 그러시나 보다.
연세가 있으시니 천천히 회복하시겠지.
엄마! 어이 회복 하셔요.
늙어가는 과정일 것인데 보는 것은 참 맘이 아프고 슬프다.
우리는 그냥 딱, 때가 되면 바로 데려가시면 좋겠다.
우리도 몸을 살피고 살펴서 아들, 딸이 걱정 덜하게 건강은 내가 챙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가 챙겨주겠는가!
장수시대를 살고 있으니,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건강은 내가 지키며 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