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갈등과 파괴적 대립, 그 경계는?
여러분들은 갈등 상황에 많이 노출되는가?
연재하는 날이 공교롭게도 대선날이다. 연재는 화요일이지만, 글은 월요일에 초안을 작성하는 편이다. 요즘 몸이 피곤한가 피부에 트러블이 너무 많이 생겨, 피부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지루성 피부염'이라고 하였고, 몸에 쉬라는 신호라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번주에 유독 많이 피곤해서 퇴근하고 바로 밥을 먹고 8-9시되면 잠을 잤던 것 같다. 물론 푹 잠을 잔 것은 아니고 여러번 깨면서 잠을 잤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일이 고된지 의사선생님께서 물어보았지만, 나는 그닥 해당되는 것이 없어서 아니라고 하였다. 평소 나름 무던했던 나인지라 '그러려니'하고 지나갔던 나의 일상이 몸에게는 무리였던 것이고, 나에게 쉬라는 신호를 주었던 것 같다.
피부과에서 받은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예상치 못한 졸음에 휩싸였다. 의사선생님과 약사선생님께서 졸릴 수 있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이렇게 깊은 잠이 올 줄은 몰랐다. 토요일부터 약을 먹기 시작해서, 어제 저녁에도 자기 전에 한 알을 먹고 일찍 잠이 들어 5-6시쯤 자연스럽게 깨어났다. 그렇게 맞이한 새벽, 출근 준비를 하면서 이번주 연재 주제를 선정하였다.
저번주에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실시되었고, 연재하는 날인 오늘은 대선본투표가 있는 날이다. 지난번에 '리더'라는 글을 연재하였기 때문에 너무 정치적인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대선날이니 내딴에는 조금 의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처음에는 '편가르기'라는 제목을 떠올렸다가, 너무 노골적이고 대선에만 국한된 느낌이어서 다른 방향을 모색했다. 많은 숙고 끝에 '갈등'이라는 제목으로 결정했다.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바로 그 '갈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자, 서론이 길었지만,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지금 다방면으로 갈등 상황에 놓여있다.
'갈등'이란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사전적 정의만 본다면, 갈등은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필요한 하나의 과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갈등들을 들여다보면, 과연 '목표나 이해관계'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지금 다방면으로 갈등에 놓여있다. 지역, 세대, 젠더 등 수많은 영역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이러한 갈등에는 정말 '목표나 이해관계'가 명확히 존재하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들이 과연 '건전한 갈등'인가 '파괴적 대립'인가 하는 것이다.
건전한 갈등과 파괴적 대립, 그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건전한 갈등은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이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며,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반면 파괴적 대립은 상대방을 굴복시키거나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다.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서고, 사실보다는 편견이 우선하며, 해결보다는 승리에만 집착한다.
이런 기준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정치 영역에서는 어떤가? 정책 논쟁보다는 진영논리가 앞서고,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는 공격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번 대선TV토론을 잠깐이라도 봤다면 내가 말하는 바를 공감할 것이다. 정책 대결보다는 이념 대결, 건설적 비판보다는 편가르기에 급급한 모습들. 그 과정에서 경계가 무너진다.
지역갈등은 어떤가? 호남과 영남, 서울과 지방. 이 갈등의 뿌리에는 분명 지역적 특색과 역사적 맥락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의도적으로 활용되어 온 것은 아닐까? 여전히 '지역에 의한 투표'가 당연시되는 현실을 보면서 묻게 된다. 이것이 과연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갈등인가?
세대갈등은 또 어떤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차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고, 때로는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세대갈등을 보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꼰대"와 "요즘 애들"이라는 말 속에 담긴 것은 존중이 아니라 무시와 편견이다. 서로의 경험과 관점을 배우려 하지 않고,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선을 긋는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까?
젠더갈등 역시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 남녀 간의 사회적 역할과 기회의 문제는 분명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건전한 갈등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건설적인 대화보다는 상호 비난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남자 대 여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몰고 가면서,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피해의식만을 앞세우는 건 아닐까? 문제 해결은 뒷전이고,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데 급급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솔직히 나 또한 이런 갈등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때로는 편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SNS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보면 비판적 댓글을 달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접하면 먼저 반박부터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지게 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갈등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내 감정을 풀기 위한 것인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기려고만 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 대선이 치러진다. 누가 당선되든, 우리 사회의 갈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의 기회로 삼을 수는 있지 않을까?
갈등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우리의 선택이다. 그래서 묻게 된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갈등들 중에서 정말 건전한 갈등은 얼마나 될까?
나는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굴복시키려고 하는가?
내 주장의 논리적 근거는 무엇이고, 상대방의 입장을 정말 들어보려고 노력했는가?
이 갈등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병이 나듯, 사회의 갈등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잠시 멈춰 서서, 우리의 갈등이 건전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때가 아닐까?
갈등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나아갈 길을 찾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건전한 갈등과 파괴적 대립 사이의 경계를 잃지 않는 것.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우리 각자가, 우리가 속한 곳에서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