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연애와 결혼
최신형 세탁기에도 쉽게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화학약품을 동원해서 열심히 비벼 지운 후
세탁기로 던져 넣었다.
때 묻은 얼룩을 지우듯,
부부의 성적 갈등도
오랜 시간 두 손으로 부대껴야 비로소 깨끗해지는 법이다.
청년의 침대는 종종 전쟁터다.
뜨거운 욕망과 서툰 표현이 부딪히며 생기는 긁힌 자국들.
신혼부부들이 “사랑하면 다 되겠지”라며
성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할 때,
그 뒤엔 ‘열정’이라는 신화가 자리한다.
하지만 20대의 열정은 오히려 불안을 키운다.
상대의 몸을 탐닉하는 것과 마음을 읽는 것은
다른 일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적 갈등의 첫 번째 균열은
‘말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원하는 걸 요구하면 상처받을까 봐”,
“거절당할까 봐”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침대 위를 서서히 식혀간다.
중년의 침대는 책상이 된다.
육아, 직장, 대출이라는 무게에 눌려 부부는 잠들기 전 5분조차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40대 남성이 고백했다.
“아내와 손가락이 스치는 순간, 청구서가 생각났어요.”
이 시기의 성적 단절은 신체보다 정신에서 온다.
사랑의 씨앗을 심을 땅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다.
중년의 성은 ‘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하고 싶다’는 선택으로 전환되는 시기다.
잠들기 전 뒷목을 쓰다듬어 주는 것,
아침에 내리는 커피 잔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작은 접촉이 다시 흙을 일구는 삽이 된다.
노년의 침대는 의자다.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처럼 성생활에 규칙성이 생긴다.
“주 1회 권장”이라는 말에 부담을 느끼는 70대 할아버지.
“이 나이에 무슨”이라며 창문을 닫는 할머니.
하지만 노년의 성은 가장 치열한 고백이다.
주름진 손이 주름진 손을 만질 때,
그건 육체적 쾌락을 넘어 “우리 아직 여기 있구나”라는
존재의 확인이다.
문제는 사회가 노인의 성을 ‘이상하다’ 거나 ‘추하다’는
편견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
할머니가 손주 몰래 서랍에 넣어둔 립스틱처럼,
노년의 욕망도 감춰야 할 것이 아니라 마중해야 할 빛이다.
치유의 열쇠는 ‘시간 차 대화’에 있다.
부부가 동시에 같은 말을 할 수는 없듯,
성도 교차하는 순간을 찾아야 한다.
청년기에 필요한 건 ‘대화의 용기’다.
“오늘은 어때?”
이 짧은 말에 담긴 망설임과 설렘,
거절당할까 두려운 마음과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 순간,
서른의 우리는 다시 스무 살이 된다.
몸은 익숙해도, 마음은 여전히 설레는
낯익은 연인으로서의 회복.
그것이 서른의 사랑, 그리고 서른의 성이다.
중년은 ‘느림의 미학’이다.
중년의 성은 단지 육체의 충돌이 아니다.
삶의 무게를 함께 견딘 이와의
소중한 확인이자 재약속이다.
우린 늙지 않는다.
다만, 더 부드럽게, 더 느리게 사랑할 뿐이다.
노년은 ‘새로운 정의’다.
성관계 대신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것,
단추를 잠그는 손길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
그 작은 접점들이 모여 새로운 욕망의 지도를 그린다.
어느 가을 저녁,
공원에서 흰머리 부부가 나뭇잎을 밟으며 걷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어깨에 손을 올리자,
할머니가 살짝 고개를 돌려 미소 지었다.
그 순간의 침묵이 50년간의 대화를 압축하는 것 같았다.
성이란 결국 몸으로 말하는 사랑의 문법이다.
청춘은 과감한 감탄사,
중년은 복잡한 접속사,
노년은 잔잔한 마침표로 채워가는.
부부의 침대는 매일 그 문장을 새로 써 내려가는 책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