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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

제4장 연애와 결혼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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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길을 걷다가 흰머리로 뒤덮인 노부부가

팔짱을 낀 채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라는 맹세였다.


그런데 요즘 신문을 펼치면 '황혼 이혼'이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눈에 띈다.

결혼 30년이 넘은 부부들이 갈라서는 비율이 10년 사이 두 배로 뛰었다니,

그 말의 무게가 실감 난다.


더욱 놀라운 건 이혼 후 재결합하는 비율이 0%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왜 한번 끊어진 실은 다시 이어지지 않는 걸까?

옛날엔 결혼을 '인연'이라 불렀다.

두 사람이 맞닿은 운명의 끈을 묵묵히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유행처럼 번지는 이혼,

특히 오랜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갈라섬은

'변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람은 변한다.

취향도, 성격도, 삶의 방식도.

문제는 그 '변화'를 상대의 잘못으로 여기며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데 있다.


마치 오래된 책을 다시 제본하려는 것처럼.

하지만 사람은 책이 아니다.

갈피를 접고 표지를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황혼 이혼의 가장 큰 이유는 '서로를 바꾸려는 집착'이다.

30년을 함께 살았어도 남편은 아내의 조심성을 '소극적'이라 비판하고,

아내는 남편의 감성을 '무계획'이라 탓한다.


시간이 갈수록 상대의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틀에 끼워 맞추려고 애쓴다.

마치 물컵에 담긴 물을 유리잔에 강제로 옮겨 담으려는 것과 같다.

결국 물은 흘러넘치고, 컵과 잔 모두 금이 간다.

이혼 후 재결합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 있다.

이미 부서진 관계를 복원하려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원래'란 결국 각자가 바라는 이상일뿐이다.


사람은 고쳐 쓸 종이가 아니다.

지우개로 문장을 지우고 새로 적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이 흐른 종이는 겹겹이 쌓인 필체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법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처음의 뜨거운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식어가고,

그 자리엔 함께한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다.

문제는 그 흔적을 '오류'로 여기고 지우개로 밀어내버릴 때 생긴다.


"당신이 변해야 해"라는 말은

결국 "내가 바라는 대로 만들어져야 해"라는 외침이다.

진정한 동행은 상대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함께 견디는 것이다.


파도에 깎인 돌처럼 각자의 모양을 간직한 채

서로의 틈을 맞추어 가는 것.

황혼 이혼이 남기는 교훈은 여기에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해도 관계는 유지될 수 없고,

유지된다 해도 행복하리란 보장은 없다는 냉정함.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사랑이란 완성을 위한 수선이 아니라 부서짐을 견딜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사람은 고쳐 쓰는 대상이 아니다.

다만 마주할 뿐이다.

그 마주침이 때론 아프고, 때론 외로울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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