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긴 한데, 막 죽을 만큼은 아닌 정도라고.
솔직한 순간을 사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마음에 솔직하게 굴까. 아마 대개 거짓과 진실 그 사이의 애매모호함 속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가꿔내지 않을까. 거짓을 말하기에는 들통날까 봐 겁이 나고, 진실을 말하기에는 제 낯을 다 들어내는 게 수치스러운 듯, 숨기기 바빠지니까. 나 또한 그리 살아왔다. 나 또한 그 애매함에 나를 섞어내 이제까지 살아왔다.
아직 쌀쌀한 나날이었다. 나름 코트 하나로 덮어낼 수 있는 정도지만, 마치 아직 겨울 자락을 놓아주기 싫다고 하며 붙잡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썩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안에만 처박혀 살고 있으면 방구석 어딘가에서 먼지 쌓여 무너질 것 같으니까. 햇빛이 어색하지만, 그래도 그 미미한 온기가 밖에 나오니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것 같아, 유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았다.
사실, 최근에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이유는 별거 아니고, 그냥 딱 지쳐서 털어낼 곳이 필요한 정도의 우울감 때문에. 딱히 사는 게 벅차거나 죽고 싶다 같은, 눈물지어질 정도의 슬픔과 고통을 가져서는 아니었다. 그냥 요즘 좀 피곤해서, 딱 그 정도의 무력감에 상담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고 스스로를 고쳐내 성장하려 한다고, 이상한 게 아니라고, 참 많이도 이야기하지만... 글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날 어떻게 볼 줄 알고. 이 또한 모호하게 흐트려놔서 알쏭달쏭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사실 아닌가.
딸랑하고 경쾌하게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상담 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접수를 하고는 대기 중인 사람들 사이로 가 자리를 잡았다. 몇 번 누구누구님 들어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어떻게 오셨을까요, 예의 있고 밝게 말하는 목소리들을 조용히 들으며, 차례를 기다린다. 여유 있어도 몇 번이고 시계를 확인하는 버릇은 아직 고치지 못했다. 차근차근 고쳐보다고 이야기했는데, 아직 내게는 힘든 것 같다. 이유는 딱히 없으면서도, 분침과 초침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계속 보고 있지 않으면 신경 쓰여서 엄지손가락 한쪽 거스러미를 계속 뜯게 돼서 문제다. 일종의 강박이라고 했었나, 불안감에서 오는 거라고 했었나, 심적으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당부받았었다. 뭐, 잘 못 고치니까 계속 이 센터를 찾아오는 것이겠지만.
들어오세요, 아 내 차례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안내에 따라 움직인다. 발등에 짐이라도 올린 기분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실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 오셨어요, 아 예예,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라고 말하며 상담사의 앞자리에 가 조심스레 앉았다. 상담을 이미 이전에 여러 차례 했다면, 요즘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를 묻기보다는 바로 상담에 들어가는 편이다. 이미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개선되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 싶었다. 어차피 말하면서 근황도 말하게 되니까. 그래서 요즘 어떻게 지냈냐 보다는, 요즘은 좀 어떤 거 같아요라고 내게 물어보셨다.
요즘은 어떤 거 같냐고요? 요즘도 딱히 변하는 것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매사 무력하고 숨쉬기 버거울 뿐이죠. 막 엄청 우울하고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서 미칠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의욕을 가지게 되진 않는 정도인 거죠. 요즘도 시계 자주 보고요, 분침 하나 움직일 때마다 자꾸 신경이 곤두서네요. 폰 잠금 화면도 자주 껐다 켰다 하면서 확인하는 탓에 배터리가 쉽게 닳는 게 고민이라면 고민이겠네요.
왜 그러는 거 같냐고요? 왜 그러긴요, 그냥 아직도 버릇 못 고쳐서 이러는 거겠죠. 신경 안 쓰고 마음 좀 편안하게 두려고 해도 언젠가부터 무의식적으로 신경 쓰고 있더라고요. 손 뜯는 건 좀 어떠냐고요? 아... 그것도 역시 고치려고는 하는데요,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어요. 한번 보실래요?
... 아, 이렇게도 뜯으면 안 된다고요? 죄송해요, 괜찮을 줄 알았죠. 아... 사과가 버릇이라서요. 이것도 고쳐야 하는데... 새삼 보니까 저 고쳐야 하는 게 참 많네요.
그리 말하자 고친다는 표현은 좋지 못하다고 지적해 주셨다. 개선이랑 고치는 것에 대해 별 차이를 못 느끼겠지만... 고쳐야 할 문제라는 것과 개선시킬 부분이라는 것은 명확히 다르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 들을 뿐이었다.
뭐 하고 지내냐... 그냥, 별 다른 건 없어요. 그냥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고... 그러다 보면 일주일이 지나 있고. 아. 화가 많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뇨 그냥, 알바 때문에요. 역시 남의 돈 받고 사는 건 힘들구나 싶어서요. 일하는 건 그럭저럭 괜찮은데, 사장님이 되게 불친절하시거든요. 허구한 날 트집 잡고 퉁명스러운 말투이신지라... 약간이라도 대화하면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는 거 있죠. 최저시급 주면서 어떻게든 부려먹으려는 것처럼 보이니까 반감이라도 드는 건지... 아, 물론 이런 생각을 드러내면 안 되죠. 그래서 계속 참고 그러는데... 표정에서 티 날까 봐 걱정이긴 하네요. 사회성 없다고 욕먹는 건 익숙하긴 한데, 그래도 면전 앞에서 듣는 건 상처될 테니까요. 욕도 좀 줄이고, 성질 좀 죽여서 사근사근 굴고 고개 숙일 줄 알아야 하는데,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왜 행동은 따라주지 않는 걸까요. 아직 어리니까 차근차근해보면 되지 않냐고 해도, 그 변명도 유효 기간이 너무 짧잖아요. 자꾸 조급해져요. 좀 더 빨리 사회에 적응해야 할 거 같은데, 누구도 압박하지 않았는데 혼자 눈치 보이거든요.
... 주변 사람들이랑 가볍게 대화하는 건 어떠냐고요? 아... 글쎄요. 이렇게 상담하고 나면 속이 좀 후련해지고 약간씩 변해야지 하고 다짐이 서는 건 좋은데... 다른 사람들이랑 진지한 대화 하는 건 좀 그렇더라고요. 다들 그렇지 않을까요? 계속 삭히자니 답답하니까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싶어도, 그런 진솔하고 무거운 주제를 섣불리 꺼내는 건 조심스러워지잖아요. 분명 이야기하다 보면 분위기가 과열돼서 뒷담도 하고 비관도 하고 짜증도 낼 텐데. 그러면 상대한테 칭얼거리는 것뿐이잖아요. 뭐 마음가짐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탄만 하다가 흐지부지 끝나고...
그러자 어쩐지 안쓰럽다고 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너무 상대를 생각해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셨다. 딱히 남을 생각하고 배려해서 그러는 건 아닌데, 그냥 만약 그렇게 솔직하게 다가갔다가, 언제 뒤에서 내 이야기가 나올까 봐 조심할 뿐인데. 딱히 착해서 그런 건 아닌데 왜 좋게 봐주시는 건지. 멋쩍게 웃으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보이냐고 짧게 답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20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슬슬 상담을 끝내려는 건지 약 처방과 버릇에 대한 대안을 받고,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센터를 나오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미적지근한 온기가 섞인 공기가 폐부 깊숙하게 들어온다. 이내 긴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늘도 힘내야겠지. 이걸로 지난주 받은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덜어냈으니까, 하고.
* * *
슬슬 알바처로 걸어가니 딱 시간이 되었다. 유니폼 조끼를 입고는 애써 가꿔낸 미소를 지으며, 이전 타임 아르바이트생과 교대를 하고 카운터에 서서 일을 시작했다. 손님을 대응하다가 중간중간 나가서 자리 청소하고 재고 정리하고, 비어 있는 칸이 있으면 채워냈다. 물품이 들어오면 수량 확인하고 진열하면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일에는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 6시간을 일한다면, 혼자서 관리하는 5시간 동안은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끝날 무렵에 나타나 하나하나 꼬치꼬치 트집 잡는 사장 때문에 그 1시간 남짓 안 되는 시간에 피로가 몰릴 뿐이지. 일하는 거 자체는 딱히 힘들지도 않고 묵묵히 하는 편이다. 다만 사람 때문에, 그깟 사람 때문에 신경질 나고 짜증 나는 거지.
퇴근할 때쯤 되니까 또 역시나, 제 영역이라 으스대는 것도 아니고 이래저래 고개만 까딱이며 주변을 훑어보다가, 재고 한두 개 빠지 진 거 가지고 툭툭 치면서 꼴이 이게 뭐냐고, 텅텅 빈 채로 내버려 두고 앉았냐고 사람 면전 앞에서 대놓고 창피를 주는 모습이다. 계속 가르쳐주지 않냐고, 왜 자꾸 이러냐고, 대충 일하냐고 핀잔인지 꼰대질인지 헷갈리는 말들이 귀를 찔러온다. 카운터로만 쓰려고 알바시키는 줄 아냐고 욕을 계속 먹으면서, 이 악물고 입꼬리가 내려가려는 걸 겨우겨우 참아내며 주의하겠다 한다. 배운 기억도 없는걸 내 능력 부족이라 말하고, 이미 충분히 피곤한데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죄송하다고 말하며 애써 미소를 짓는다. 오늘도 정시에 퇴근하는 건 글렀다. 터질 듯이 재고를 채워 넣고 바닥 걸레질까지 싹 해서야 비로소 퇴근할 수 있었다.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발걸음을 쿵쿵 구르며, 일 끝나고 늘 가던 포장마차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 술도 적당히 마셔야 한다고 걱정을 빙자해서 혼이 났었는데, 딱 오늘까지만 마시고 그만 이래야지 하면서 자리 잡아 앉는다. 시키는 건 별거 없다. 그냥 제일 싼 안주와 소주 한 병.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한잔 두 잔 따르고 있었는데, 진동이 울리길래 확인해 보니 친구 녀석한테서 문자가 왔다. 알바 새로 구했다더니 영 별로라는 듯, 진상이 너무 많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살짝 혀를 차면서도 고생한다고, 무슨 일이냐고 공감하면서, 그 장단에 맞춰주었다. 그러자 아예 대뜸 전화를 걸어 본격적인 하소연을 시작하는 녀석이었다. 나긋나긋 대답해 주며 맞장구치고 리액션해 주니, 좋아라 재잘거리며 떠드는 걸 받아줘야 했다. 서너 잔쯤 잔을 따랐을 무렵에 겨우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내 속도 답답한데 남의 부담도 대신 받아준 기분이라 썩 좋지 못했다. 상담사는 매번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가, 적어도 나한테는 도무지 할 짓이 못되는데 새삼 대단하게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앞으로도 상담 가도 되는 건가, 하고 쓸데없는 눈치 보는 자신이 보여서, 그런 스스로가 조금 더 싫어졌다. 업으로 하는 사람이랑 어쩌다 들어주는 사람이 같겠냐고, 멋대로 판 굴에 알아서 다시 채워 넣기를 반복하는 짓을 했다.
탈탈 털어 보니 어랍쇼, 벌써 다 마셨다. 아 한 병만 더 시킬까, 돈 아껴야 하는데, 그래도 너무 빨리 마셔서 좀 감질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한 병 더 시켰다. 그래, 어차피 오늘 열받았는데, 이렇게라도 스스로한테 보상해 주자,라고 합리화하면서.
또다시 그렇게 한잔, 두 잔, 따르다가 이제 잔 따르는 것도 조금 힘들어졌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멍하니 안주 담았던 그릇을 내려다봤다. 어묵 국물에는 위에 있는 불빛이 반사되어 일렁이고 있다. 취했나, 왜 이렇게 멍 때리게 되는 거지. 이마를 짚으며 잠시 술 마시는 걸 멈추고 그렇게 생각에 잠겼다. 아,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데. 맑고 투명한 국물 위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물끄럼히 보며, 또 잡생각이 들었다. 나란 놈은 참 애매한 인간이라는, 억울해도 끄덕거리고, 귀찮아도 부둥부둥해주고, 어차피 진심도 아니면서 그렇게 받아주고 져주는 재미없는 인간이라는, 그런 생각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니까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 건데. 짜증 나서 술을 마시는 건데 술을 마시고 나면 울적해진다. 이게 무슨 반복 레퍼토리인 건지. 뭐만 하면 갑자기 기복이 생기는 것도 나름의 재주일 테지.
그런 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내 꼴 보기 싫어 시선을 더 내리니, 오늘 차고 나온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짤깍짤깍 초침이 움직이는 모습을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 순간 10분 정도는 순식간에 지나가있다. 시간이 지나는걸 왜 자꾸 확인하려는 걸까. 어차피 보고 나면 이렇게 또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자괴감만 드는데. 그 자체가 불안한 걸까, 시간이 지나는 게. 내일이 또 오고, 이리저리 치이고 살아야 한다는 게. 피곤함은 늘어나는데 즐거움은 점점 바닥을 긁어가는 게.
멍하니 있다가, 또 무의식적으로 딱딱, 엄지손가락 손톱 옆 거스러미를 뜯었다. 여린 살이 손톱 때문에 찢기고 벗겨지다 보면, 어느 순간 따끔해진다. 그러면 보통 피가 흐르고 있더라. 빨간색을 보면 어쩐지 기분이 좀 나아지는데, 이런 식으로 색을 보는 건 분명 여럿에게 혼날 짓이겠지. 거스러미 뜯으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듣는데, 왜 이러지 나란 애는.
1분 1초가 지날수록 상처 난 부분이 점점 더 쓰라려 왔다. 하지만 피를 지혈할 생각도, 치료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프긴 한데, 분명 아픈데, 왜 이렇게 무기력해지는 건지.
... 내일은 어떻게 버틸까. 지쳐도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내일은 술을 찾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