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건네주는 위로
6화. 과거에게서 위로받는 현재의 나: 기억이 건네주는 위로, 아픔도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아픔도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기억은 흘러간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아픈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잊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느끼게 된다.
기억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색을 바꿔가는 것이라는 걸.
눈물로 얼룩졌던 기억이
어느 순간 나를 다독이는 장면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창피하고 쓰라렸던 일이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무용담이 되기도 한다.
기억은 그렇게, 내 안에서 계속 말을 건넨다.
과거의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는 현재의 나
어린 시절의 나, 서툴고 부족했던 나를 이제는 다그치지 않는다. 대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수고했다고 말해준다.
모든 게 무너졌다고 느끼던 날,
우연히 꺼내본 다이어리 한 권.
거기엔 한 줄짜리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강한 사람이 되자.”
그 문장은,
내가 얼마나 많이 견뎌왔는지를 증명하는 생존기였다.
더 이상 외부의 상처에 의해 흔들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는 아무 의미 없는 낙서처럼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 한 줄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여린 마음을 가졌던 나는 누구보다 더 단단한 자아와 가치관을 가지고서 내가 처한 상황을 이겨내고자 노력해왔다.
기억은 그렇게 위로가 된다.
그 시절의 내가, 오늘의 나를 살리는 일.
그게 ‘기억의 기적’이다.
스무살의 어느 날, 좋아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아내며 울었던 일이 있다.
그날의 바람, 버스 정류장의 불빛,
주머니 속에서 손을 꼭 쥐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추억들이 흐릿해졌지만,
그날 느꼈던 감정만큼은
아직도 마음 어딘가에서 내게 말을 건다.
“그때의 나, 참 애썼구나.”
이제는 그 감정이 나를 아프게 하기보다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증거가 되어준다.
그렇게 감정은 시간 속에서 부드럽게 녹아
위로의 형태로 다시 찾아온다.
기억을 외면할수록,
그 그림자는 더 길어진다.
나를 두렵게 했던 기억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훨씬 자유로워졌다.
내가 가장 외로웠던 순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도 버텨낸 나를 알아줄 수 있게 되었을 때,
기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든 퍼즐조각’이 된다.
그 조각들을 이어 붙여보면
꽤 괜찮은 모양의 내가 보인다.
불완전하지만 단단한,
흠이 있지만 아름다운,
그런 내가.
기억은 종종 나를 괴롭히지만
그보다 더 자주 나를 살린다.
어린 날의 내가, 청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속삭이는 말들.
그 모든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나는 더 이상 ‘잊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기억을 안고 살아가려’ 한다.
그 안에는 눈물도 있고, 웃음도 있고,
무수한 ‘살아낸 날들’이 있다.
기억이 내게 말했다.
“너, 참 잘 버텼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