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온전히 사랑하기 3>
교사를 그만두고 얼마나 흐른 뒤였을까? 문득 두려움에 휩싸였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나? 나 너무 아무것도 안 하는 거 아닌가? 이래도 되는 건가?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마음에는 온갖 염려가 자라나기 시작했고, 아침 일찍 시작된 생각은 점심이 되기도 전에 결국 한없이 작고 초라한 ‘나’와 ‘우울감’만을 남겨 버렸다. 그러다 문득 아니, 이럴게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어 다이어리를 펼쳤다. 차분하게 어제를 떠올리며 내가 한 일들을 적어보았다. 객관화시키고 싶었다. 내가 진짜 아무것도 안 한 게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 한 주를 돌이켜 봤다. 어땠을까? 당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가 한 일들을 되짚은 뒤 다이어리에 적은 내용은 이렇다.
[돌아보니 나쁘지 않은 한 주였는데, 마음이 좀 급해지는 것 같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작년 다이어리를 찾았는데 해당 부분을 찾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왜였을까? 저런 마음이 생긴 거면 적어도 교사를 그만두고 한 두 달 지난 뒤라는 생각에 5월부터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을 넘겨도 없어, 거꾸로 올라가 찾기 시작했다. 정말 놀랍게도 저 내용은 작년 3월 첫 주 페이지의, 3월 9일 토요일 칸에 적혀 있었다. 내가 놀란 이유는 무엇일까? 해당 주는 내가 교사를 그만둔 바로 첫 주다. 그렇다. 2024년 2월 28일 나는 공식적으로 퇴사를 했고, 딱 한 주를 생활하고는 내가 나를 괴롭힌 것이다. 그것도 당시에는 ‘나쁘지 않은 한 주’라고 표현했지만 지금 해당 페이지를 찬찬히 살펴보니 충분히 열정적으로 살았음에 의심할 부분이 없었다. 자기 계발서를 무려 두 권이나 읽었고,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기초 작업과 처음 해보는 공식적인 행정 서류를 공부해서 혼자서 모두 마무리했다. 그 와중에 고장 난 노트북도 혼자 유튜브로 공부해서 고쳐냈고, 주간 목표라고 세워둔 모든 것을 다 해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운동이나 산책을 했고, 퇴직 후 처리해야 할 경제적인 부분들도 5가지나 마무리 지었다. 당연히 일상을 살았기에 집안일이나 아이들 돌봄도 함께였다. 이렇게나 열심히 살아놓고는 나는 나를 칭찬해 주기는커녕 괴롭혀, 작디작은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학교를 다닐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나는 늘 열정을 다해 학교 생활을 하고 모든 진이 빠져 집에 왔지만, 끊임없이 집안일과 아이들 케어, 공부와 논문, 프로젝트 작성에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도 늘 잘하고 있지 못하다 생각했고, 더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았다. 그중 하나라도, 조금이라도 밀리면 나를 그토록 책망하곤 했다. 그토록 환하게 웃으며 칭찬을 남발하는 학교에서의 삶이나 타인과의 삶의 모습이, 나 스스로에게는 전혀 없었다. 내겐 내가 참으로 매정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매일의 피드백을 한 줄이라도 남긴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돼서, 보통 다음 날 아침 책상에 처음 앉아하는 일이 되었다. 전날을 정리하고 피드백을 적는다. 말이 피드백이지, 사실은 스스로를 칭찬하는 내용을 적는 시간이다. 실제로 나의 하루를 적어 보면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대단하네!라고 칭찬이 자연스레 나오곤 한다. 때로는 계획했던 일들을 대부분 하지 못한 날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나의 하루를 돌이켜보면 분명 칭찬할 일들이 많이 있다. 그래. 나도 고래처럼 춤을 추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실제로는 다른 이들의 인정이나 칭찬이 아니라, 나 스스로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며, 칭찬하고 아껴주기를 오래도록 기다리고 바랐는지 모르겠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다. 완벽해질 필요도 없고, 완벽해질 수도 없는 그냥 하루를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자꾸만 잊고 살았던 과거의 시간이다. 마흔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이 사실들을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고 자꾸 꺼내어 본다. 그리고 순간순간 말한다. 잘하고 있다고. 충분히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수고했다고. 너무 멋지다고. 대견하다고... 그리고 다이어리에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잘했는지 매일매일 한 줄이라도 적고 있다. 그렇게 나는 칭찬에 춤을 추는 고래처럼, 나를 조금씩 춤추게 하고 있다. 그렇게 나의 마흔도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