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

<3부. 온전히 사랑하기 2>

by 하늘꽃

마흔을 갓 넘은 나는 본격적으로 나를 사랑하겠어!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나를 사랑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건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저녁 뭐 먹을래? 우리 딸들 뭐 먹고 싶어?”

“엄마는? 엄마는 뭐 먹고 싶어?”

“우리 딸 이번 주말에 뭐 하고 싶어?”

“엄마는? 엄마는 주말에 뭐 하고 싶어?”


어느 날부터인지 부쩍 커버린 딸이 자꾸만 내 질문에 되묻기 시작했다.

“아니~ 엄마 말고. 우리 딸이 먹고 싶은 거 말이야.”

“그니까. 우리 말고, 우리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말이야. 이번에는 우리 말고,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먹자. 항상 우리가 먹고 싶은 것만 먹었잖아. 응?”

딸과의 평범해 보이는 이 대화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첫걸음마를 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밖에서도 나는 늘 그런 모습이었다. 출장지에서건, 지인과의 약속에서건 “뭐 먹을까요?”라는 질문이 나오면 내 대답은 늘 같았다.

“드시고 싶으신 거요. 저는 뭐든 잘 먹거든요.”

그럼에도 또 내게 묻는 이에겐 이렇게 말하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제가 선택장애가 있어요. 그냥 드시고 싶은 거 드셔도 돼요 진짜.”

한 번도 나는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음식을 다른 사람이 싫어하면 어쩌지?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내가 맞추는 게 마음 편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딸과 비슷한 대화가 반복되자 궁금해졌다.

“엄마는 진짜 먹고 싶은 거 없어? 좋아하는 음식 있을 거 아냐. 지금 딱 먹고 싶은 거 말해봐.”

엄마와 딸이 뒤바뀐 듯한 딸의 질문을 어느 날 곱씹어보니 진짜 그랬다. 나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고, 심지어 싫어하거나 못 먹는 음식이 있다. 그리고 나도 그때그때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해 보면 있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한 한 걸음을 떼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나?

지금 힘들진 않나?

숨 쉬는 건 잊지 않고 잘 쉬고 있나?

아픈가? 아픈데 참고, 버티고 있는 건 아닌가?

졸린가? 피곤한가? 쉬어야 하나?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내겐 노력하고 애쓰지 않으면 잘 안 되는 것들이었다. 자꾸만 주변 사람들의 상태나, 기분, 필요한 것들을 확인하고 챙기기 전에, 먼저 나를 들여다보고 내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 메뉴를 이야기해서 먹기도 했다. 맛있었다. 지치고 힘이 들면 눈앞에 보이는 집안일들도 그냥 잠시 두고 먼저 쉬었다. 처음엔 찝찝했지만, 쉬고 나니 힘이 생겨 오히려 더 좋았다. 너무 열중해서 숨 쉬는 것조차 잊고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걸 알아채면, 크게 숨을 쉬고 어깨를 펴 보았다. 아프면 모든 일을 멈추려 했고, 졸리면 최대한 빨리 잠을 자도록 노력했다. 따지고 보면 참으로 간단한 일들인데, 그동안 왜 그렇게 어렵고 안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의도적으로 생각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너무 좋다. 이제라도 내가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귀 기울인다는 것이, 소소하지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되었다. 행복하다. 순간순간이 즐겁고, 하루가 행복으로 더 채워진다. 특별한 일이 없지만 일상이 특별해지고 있다. 그렇게 나의 행복은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도 전해져 더 큰 행복이 만들어진다.

"아! 나를 사랑한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아직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런 노력을 마흔 넘어 시작한 나도 좋다. 더 늦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그렇게 내가 조금씩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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